<colbgcolor=#000><colcolor=#fff> 히토미 겐키 人見元基 |
|
|
|
본명 |
히토미 노리아키 人見典明 |
출생 | 1957년 10월 1일 ([age(1957-10-01)]세) |
일본 도쿄도 | |
국적 | 일본 |
직업 | 가수, 영어교사 |
장르 | 하드 록, 헤비 메탈 |
소속 | VOW WOW (1984 - 1990) |
학력 | 도쿄외국어대학 영문학과 |
활동 | 1983년 - 1990년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영어교사이자 전직 록 보컬리스트.2. 상세
일본의 록밴드 VOW WOW의 보컬리스트로, VOW WOW 활동 전에는 다수의 세션 활동을 하였다.활동 기간이 짧은 탓에 일본 내에서도 인지도는 매우 낮지만, 일본의 헤비 메탈 팬들에게는 일본 음악계 사상 최고의 메탈 가수 중 한 명이라고 칭송받는다. 현재는 음악 활동을 아예 접고 치바현의 마츠도 무츠미 공립 고등학교의 영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3. 생애
도쿄외국어대학 재학 당시 TUFS[1]라는 학교 스쿨 밴드로 출발해 출중한 노래실력으로 여러 팀들의 구애를 받았고, 이듬해 noiz에 가입 1983년 앨범을 내고 탈퇴한다. 그 후 VOW WOW에 가입. 그의 VOW WOW 가입은 우연으로, 솔로 데뷔 제의가 들어와 VOW WOW의 소속사로 갔다가 VOW WOW의 기타리스트인 야마모토 쿄지와 술을 마시다 잠에서 깨니 VOW WOW의 멤버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이후 영국에 진출하여 VOW WOW의 보컬로 활약했지만 늘 도쿄에 있는 가족과 연인을 잊지 못했고 언제 식을지 모르는 인기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결국 음악계의 과도한 상업성에 대한 환멸과 밴드의 미국 진출 실패등 악재가 겹쳐져 밴드내의 내분도 일어나자 결국 1990년 돌연 VOW WOW를 탈퇴한다. 무도관에서 열린 마지막 앨범 공연 영상이 남아있다.
현재는 음악과 결별하고 평범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가끔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치면서 팝송 명곡들을 부르거나 1년에 몇 차례 작은 클럽 등에서 라이브 활동을 하며, 친분이 있는 뮤지션의 앨범에도 가끔 참가한다고 한다. 참가할 때의 이름은 그의 이름의 영문자 표기인 GENKI로 한다고. 역시 예술을 하던 사람들은 평생 예술을 떠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2010년부터 VOW WOW 기간한정 재결성으로 다시 밴드에서 간간이 노래하는듯.
4. 음악적 역량
|
VOW WOW의 대표곡 ‘Rock Me Now’ 라이브 |
도저히 일본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능수능란한 영어 발음과 블루지한 필링, 특유의 진폭이 크고 정확한 바이브레이션, 타 가수들을 코러스처럼 묻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성량, 굵직한 듯 하면서도 배음이 잘 이루어져 입체감이 드는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 2옥타브 후반~3옥타브 초반의 파사지오 구간으로 도배되어 있고 3옥타브 중반~4옥타브에 육박하는 최고음까지 나오는 살인적인 난이도의 곡들조차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발성 스킬, 실수가 거의 없는 안정적인 라이브 능력, 뛰어난 퍼포먼스와 무대매너까지 갖춘 세계적인 수준의 록 보컬리스트였다.
업계와 평단에서는 다른거 다 제치고 가창력만 놓고 본다면 히토미 겐키야말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불세출의 헤비 메탈 보컬로 평가하고 있다.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자면 그 어떤 일본 록 보컬리스트도 히토미 겐키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이야기나, 로니 제임스 디오와 화이트스네이크의 데이비드 커버데일을 섞어놓은거 같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 추억보정이라며 믿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미 현역 당시에도 보컬 능력만큼은 지명도만 낮을 뿐이지 이미 일본 사상 최고의 보컬리스트라고 불려졌다.
전술했듯이 영어 발음이 매우 좋은데, 일본인치고는 좋은 편이 아니라 그냥 원어민 수준이다. 일본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도 어렸을 때부터 영미권에서 생활한 가수들을 제외하면 히토미 겐만큼 영어 발음이 좋은 가수는 흔치않다. VOW WOW의 음악을 처음 들은 영국인들이 밴드 사진에 있는 닐 머레이를 보컬리스트로 착각하여 “역시 서양인이 보컬을 해야지!” 라고 생각하다가 공연에서는 동양인이 노래 부르는 것보고 깜짝 놀랐다는 일화와, 영국에서 VOW WOW가 처음 데뷔했을 때, 보컬이 영어권 태생인줄 알고 기뻐서 밀어줬는데 알고보니 일본인이어서 놀랐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성량과 파워에 대해서는, 무대에서 노래를 마치고 내려왔는데 쥐가 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이쯤 되면 도시전설에 가깝다. 그 외에도 스피커나 앰프가 터졌다거나, 마이크가 망가졌다는 이야기도 다수.[2] 이 영상에서 히토미 겐키의 성량을 느낄 수 있다. 다른 가수들도 록 보컬인데 히토미 겐에게 완전히 묻혀 버린다.
라이브 기복 또한 거의 없는 편이다. 겐키는 커리어 초창기 이후에 점점 더 블루지한 스타일로 부르면서 발성이 상당히 안정적으로 변해갔는데, 이로 인해 전성기 때는 물론이고, 은퇴한지 30년이 넘어 60세가 훌쩍 넘은 노인이 되어서도 2옥타브 후반~3옥타브 초반 정도는 안정적이고 파워풀하게 소화한다.
심지어 60대의 나이에도 레드 제플린의 히트곡인 Communication Breakdown, Heartbreaker, Rock and Roll 등의 곡들을 무려 원키로 부르고[3], 현역 시절의 라이브에선 3옥타브 솔의 샤우팅 구간을 낮춰 불렀던 Shock wave도 원키로 소화하는 등(...) 노익장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현역으로 활동해 온 동년배 록 보컬리스트들과 비교해도 손꼽힐만한 라이브 실력을 보여준다.
본인이 영향을 받은 보컬리스트로 로버트 플랜트, 톰 존스, 레이 찰스, 데이비드 커버데일 등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로버트 플랜트를 좋아하여 레드 제플린의 여러 곡들을 커버하였다. 1집 시절의 로버트 플랜트에게서 영향을 받아 아시아에서 로버트 플랜트를 가장 잘 커버하는 가수로 거론될 정도.
5. 여담
- VOW WOW 활동 중단 이후에도 세션 보컬로서 간간히 활동 하기도 했다.
- NHK의 뭐든지 Q라는 어린이 퀴즈 프로그램에서 CM들로 나오는 노래들을 잠시 부른적이 있었다. 그만 둔 이유는 "광고나 TV의 세계에서는 노래하고 싶지 않다." 라고. 그 때의 노래들
- 은퇴한지 20년이 넘었는데도, BURRN!지에서 실시하는 보컬 순위 1위를 데뷔 이래로 놓친 적이 한 번도 없다. SABER TIGER의 시모야마 타케노리와 공동 1등을 한적은 있다.
- 본인은 헤비메탈 씬에서 활약하는 상황에 불만은 없었지만, 정작 본인이 헤비메탈 보컬로만 불리는 것은 매우 싫어했다고. 또한 헤비메탈 업계에 대한 불만이 꽤 컸으며, 사석에서는 그 주제로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재즈나 팝 등 다양한 음악 장르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많이 듣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음악을 하고 싶어했다. 또한 많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일화를 살펴보면 음악적인 실력이나 관심보다 상하서열을 우선시하는 일본 예술계에서의 코드 자체가 맞지 않았다는 것 같다.
- 락 음악만이 아닌 스펙트럼 넓은 보컬이었다. 전성기에 다양한 장르로 활동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 은퇴 후 영어선생을 하며 중노년이 되어서는 타 장르 곡을 종종 부르고 있다. 2016년 59세에 부른 Cry Me A River 2007년 50세에 부른 Fly Me To the Moon 2014년 56세에 부른 All by my self 락밴드 시절처럼 고음곡이 아니지만 저음에서도 달달한 음색과 곡 해석, 감정 전달도 뛰어나다.
- 전설적인 키보디스트인 돈 에어리의 솔로 앨범에 참여한적이 있다. 본디 돈 에어리는 자신의 곡을 부를 보컬로 이안 길런을 낙점했었는데, 이안 길런이 터무니 없는 페이를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이 되었다.[4]그러던 중 VOW WOW에 가입했던 닐 머레이가 우리 팀에 히토미 겐키라는 보컬이 있는데 속는 셈 치고 한번만 써보세여! 라고 추천해줘서 반신 반의하는 느낌으로 대타로 레코딩을 시켰는데 히토미!!을 외쳤다고(...) 히토미가 부른 그 곡은 숨겨진 프로그래시브 명반으로 손꼽히는 돈 에어리의 솔로 앨범 K2 - Death Zone/White Out이다. 이 노래에서 첫 소절에 무려 3옥타브 라 샵(...) 샤우팅을 한다.
-
영국의 유명한 레딩 페스티벌에서 VOW WOW가 마지막으로 소개되자 초반의 야유와 욕설 세례를 노래 한방으로 잠재워버리고 관중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고.
맨 마지막에 보면 알겠지만 쓰레기를 던지던 사람들이 박수를친다
- 겐키가 이름이고 히토미가 성이다. 일본에서도 히토미(人見) 겐키(元基)로 읽는다. 본명도 히토미(人見) 노리아키(典明)이다. 어째서인지 한국에서는 서양식인 겐키 히토미로 훨씬 많이 알려져 있다. 이걸 예를 들면 일본에서 한국 가수 보고 경호 김, 재범 임, 완규 박이라고 부르는 격이다(...) 이 문서가 처음 생성되었을 때도 겐키 히토미로 생성되어 있었다.
6. 그의 노래
VOW WOW 시절의 영상은 VOW WOW 항목을 참고.Don Airey - Death Zone: Whiteout
영국의 전설적인 키보디스트 돈 에어리의 솔로 앨범에 보컬 세션으로 참여하여 부른 곡. 프로그래시브 록의 숨겨진 명반으로 꼽힌다. 히토미 겐키 외에도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 등 화려한 멤버가 참여하였다. 첫 음부터 3옥타브 라 샵의 초고음 샤우팅을 한다.
1999년 세가에서 발매한 레이싱 게임 페라리 F355 챌린지의 주제가인 Scarlatto와 Crave For Ride을 불렀다.
전성기 VOW WOW 시절을 느낄 수 있는 1990년 무도관 라이브
2017년 말의 라이브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전성기 시절에 비해 크게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준다.
VOW WOW에 가입하기 전 활동했던 밴드인 NOIZ에서 활동했던 시절 1983년 발매한 앨범
[1]
Tokyo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의 약자를 밴드명으로 사용
[2]
타고난 성량을 가지고 활동하는 인디 보컬들은 흔히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인디 시절에는 작은 클럽에서 공연을 하지만 공연 장비들이 보컬의 성량을 커버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1960~70년대에는 공연 장비의 한계로 인해 이런 일들이 간간히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로버트 플랜트.
[3]
이 곡들은 각각 최고음이 3옥타브 솔, 3옥타브 도, 3옥타브 미인 살인적인 난이도의 곡이다. 특히나 이 곡들은 전성기 시절엔 더 어렵게 불렀던 Heartbreaker을 제외하면 원곡 보컬인
로버트 플랜트에게도 어려운 곡이기에, 컨디션이 좋았던 몇 번을 제외하면 보통 라이브에선 일부 구간을 낮추어 불렀을 정도이다.
[4]
훗날 돈 에어리는 이안 길런이 있는
딥 퍼플에 가입을해서 현재까지 호흡을 맞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