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의 황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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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cd21><colcolor=#00386a> 和硕柔嘉公主 화석유가공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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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52년 |
사망 | 1673년(21세) |
생부 | 안화친왕 악락(追奪安和親王 岳樂) |
생모 | 계복진 납라씨(納喇氏) |
부군 | 경취충(耿聚忠) |
자녀 | 1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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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화석요여민친왕 아파태(饒餘敏郡王 阿巴泰)[1]의 4남인 안화친왕 악락(安和親王 岳樂)의 딸이고, 순치제의 5촌 조카딸이다.2. 생애
안친왕 악락의 둘째딸이다. 생모는 악락의 계복진 납라씨로 경차도위 달이호타의 딸이다. 악락은 납라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개국공신 소닌의 딸 허서리씨를 삼계복진으로 삼았다. 악락의 적복진 보르지기트씨 사이에서 태어난 첫딸이 요절했기 때문에 유가공주는 사실상 안친왕의 장녀였다.궁중에서 양육되었으며 순치제의 양녀가 되었다. 화석유가공주에 봉해진다. 강희2년(1663년) 11월 12살의 나이로 정남왕 경중명의 손자이며, 경계무의 3남 경취충에게 하가하였다.
강희 10년(1671년) 공주는 딸을 한 명 낳았고 나중에 이 딸은 납란명주의 차남 납란규서에게 출가하였다.
강희 12년(1673년) 6월 27일 미시에 강희제는 중병에 걸린 유가공주를 문병하러 공주부로 갔고, 7월 12일 화석유가공주는 22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액부 경취충은 형 경정충이 모반을 일으키긴 했으나 이에 연루되지 않았고 1687년에 자연사하였다.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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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시대를 다룬 사극에서는 빙월격격으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