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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胡慧中( 표준 중국어: 후후이중), Sibelle Hu대만의 前 여배우. 홍콩-대만-중국 삼중국적자이다. 2023년 기준으로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복성고조의 조연인 여형사 패왕화로 한국팬들에게 알려져 있다.
2. 생애
1958년 5월 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강소성 출신인 외성인 부모에게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학 교수였다.1976년 메리 메이치 화학공업 유한공사(瑪利美琪化工股份有限公司, 1948년 설립)의 비누 브랜드인 '완완 비누(彎彎浴皂)'의 광고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고 1978년 영화 <환안>으로 연기자로서 데뷔했다. 데뷔 이후 청초하면서도 건강미 넘치는 이미지로 어필하면서 여러 대만 영화에 출연하여 경력을 쌓았고, 1981년 <황천후토>로 대만 금마장 주연배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이 시기 호혜중은 이미 당시 이전까지 대만의 탑 여배우였던 임청하의 인기를 위협하는 대만의 인기 여배우가 되어있었다.
70년대 말~80년대 초 호혜중은 이미 탑레벨이었던 임청하와 함께 대만 4대 여배우로 불렸다. 다른 두 명으로는 호인몽(胡茵梦), 주단미(周丹薇)가 있는데, 이 둘은 홍콩영화계에 진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청하나 호혜중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981년 대만의 서울대라고 할 수 있는 국립타이완대학 역사학과(야간)를 졸업했다.
1983년, <비오는 와중에 지는 꽃>(飘零的雨中花)라는 멜로 영화로 홍콩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1984년에는 영화 프로듀서로 활약하여 <늘그막의 봄날>(老莫的第二个春天)이라는 영화의 제작을 맡기도 했다.
1985년에는 다시 홍콩 영화계로 복귀하여 성룡, 홍금보과 함께 < 복성고조>와 <하일복성>에 출연하여 여형사 패왕화로 분해 액션 배우로 전향했다. 이때 보이시한 액션 연기를 펼쳐서 한국에서도 팬이 좀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양자경을 시작으로 홍콩 영화계에서 여성 액션스타 붐이 일었는데 그녀도 복성고조에서의 활약을 시작으로 중화권 여자 액션스타로 군림했다. 이 시기 양자경-양리칭-이세봉과 함께 홍콩 4대 여무타성(女武打星) [1] 이라 불렸다. 호혜중은 당대 여배우들답지 않게 스턴트나 대역을 거부하고 본인이 직접 격투신이나 스턴트신을 촬영하기를 고집했으며 양자경이 1988년 결혼으로 잠정은퇴하자, 잠시 중화권 여성 액션스타의 여왕 자리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1988년에는 성룡이 제작한 복성고조 스핀오프인 <패왕화> (한국제목 땡큐마담)에 주연으로 나와 뛰어난 액션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1989년에 공포 액션물인 <엽마군영>에 출연했다가, 폭발 장면에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서 함께 출연한 이새봉, 여량위와 함께 전신에 큰 화상을 입었다. 현재도 팔에 큰 흉터가 남아서 반팔을 잘 입지 않는다.
사고 이후에 1년간 요양을 하였고[2], 이후 다시 영화계에 복귀하여 1993년까지 여러 액션물에 출연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홍콩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였던 아류작 남발 때문에[3] 계속 같은 캐릭터로 영화에 나오다보니 액션 스타의 이미지로서 너무 소모되었고 이를 호혜중도 알고 있어서 일반 영화 출연을 모색했으나, 액션 배우로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일반 영화에 출연하기 어려웠다. 이 와중에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판타지물 출연을 결심, <狐仙>(호선, 다른제목으로는 聊斋之鬼狐 (요재지귀호) 1992)이라는 천녀유혼 아류작에서 호혜중은 데뷔 후 처음으로 베드신을 찍었는데, 후에 이는 감독에게 속아서 찍은 것이라고 회고했다. #, 호혜중은 이 작품 이후 에로영화 출연제의를 여럿 받지만 모두 거절하고 그 이후 영화계를 은퇴한다.
한편, 사고 이후 호혜중은 1990년에 가창 앨범을 발표하여 가수로도 데뷔했으며, 대체로 홍콩에서 쓰이는 광동어가 아니라 대만과 대륙에서 쓰이는 표준 중국어로 앨범을 냈다. 1993년부터는 몰락한 홍콩 연예계 대신 주로 대륙에서 가수로 활동하면서 가끔씩 홍콩 영화에 출연했다. 마지막으로 출연한 메인스트림 작품은 1992년 < 방세옥>에 출연하여 방세옥( 이연걸)의 아내인 이가흔의 어머니 역을 맡은 것이다. 방세옥 어머니 역할은 소방방이며 호혜중은 장모역할을 맡았다.
1994년 호혜중이 연예계 데뷔전인 12세부터 사귀었던 첫사랑 당중생이라는 조폭이 "나는 너를 그때부터 지금까지 죽 기다렸다"는 고백을 했고 호혜중이 이런 그에게 감동하여 두 사람은 비밀리에 결혼을 했는데, 부모의 반대로 2년후 이혼했다. 이후 당중생은 조폭간의 세력다툼에 휘말려 총에 맞아 사망했다.
1997년에 안과의사 출신 홍콩 내무부 장관이었던 하지평과 재혼했고 이후 연예계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2003년부터 중국에서 정계입문을 하여 2020년대까지 강소성의 정협위원 (한국으로 치면 도의원)을 하고 있다. # 일부 한국의 중화권 엔터팬들이 양안관계를 남북관계로 대입해서 보기 때문에 이런 행보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조상이 대륙 출신인 대만 외성인들은 하나의 중국을 긍정하는 사람이 많다. 나무위키에서 매우 부정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구양나나 및 다른 대만 연예인들의 정치적 행보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정치적 행보는 양안관계를 잘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며, 대만 언론에서도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언급하기를 꺼리는 형편이다.[4] 그런데 이를 잘모르는 한국의 엔터팬들이 혐중 감정 때문에 오히려 더 흥분하는 경우가 많다.
3. 여담
- 호혜중의 남편 하지평은 정계은퇴 후 중국 석유회사에서 일했는데 아프리카에서 로비를 하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인 2018년 "해외부패방지법"으로 체포되어 3년간 옥살이를 했다. 호혜중은 이때문에 남편의 벌금을 내기 위해 홍콩 자택을 팔았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하지평은 중국의 이익을 위해서 아프리카 정계에 뇌물을 뿌렸고, 그를 체포한 것은 중국-아프리카 관계를 견제하려던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였다고 하며, 그렇기 때문에 풀려나서 귀국해서도 홍콩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딸(이름 하감선, 2000년생)이 있는데, 어릴때는 엄마를 닮았지만 커가면서 비만체형인 아버지를 닮아가 2023년 현재 체중이 87.5kg (175근)에 육박, 중화권에서는 "엄마를 닮지 않고 아빠를 닮다니"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