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풀 모터스포츠 감독 주식회사 호시노 임풀 대표이사 주식회사 팀 임풀 대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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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카즈키 (星野 一樹, Kazuki Hoshi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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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7년 10월 13일 |
일본 도쿄도 | |
가족 | 양친, 누나, 아내, 슬하 자녀 1명(부친 : 호시노 카즈요시) |
레이싱 데뷔 |
2000년 영국 포뮬러 포드 주니어(영국) 2002년 전일본 F3 챔피언십(일본) |
신체 정보 | 168cm, 62kg, A형 |
시즌 챔피언 |
2008, 2010 GT300 클래스 (
슈퍼 GT) 2004 클래스 3 ( 슈퍼 다이큐) |
트위터, 인스타그램 |
2008년 오토박스 슈퍼 GT GT300 시즌 챔피언 | ||||
2007 - 오오시마 카즈야 이시우라 히로아키 |
→ |
호시노 카즈키 야스다 히로노부 |
→ |
2009 - 오리도 마나부 카타오카 타츠야 |
2010년 오토박스 슈퍼 GT GT300 시즌 챔피언 | ||||
2009 - 오리도 마나부 카타오카 타츠야 |
→ |
호시노 카즈키 야나기다 마사타카 |
→ |
2011 - 타니구치 노부테루 밤바 타쿠[1] |
1. 개요
주식회사 호시노 임풀의 제2대 대표이사[2] 겸 임풀 모터스포츠의 감독, 동시에 주식회사 호시노 임풀의 계열사격 법인인 주식회사 팀 임풀의 대표이사로 1977년 10월 13일 도쿄 출신.아버지는 호시노 카즈요시로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일본 모터스포츠계의 레전드 드라이버이다. 즉, 레전드의 아들로 나카지마 카즈키, 야나기다 마사타카처럼 일본 모터스포츠계 내에서 대를 잇는 드라이버이다. 가족은 양친과 누나를 포함해 총 4인이며 후술한대로 2018년에 결혼을 해서 기혼이다.
2021년 슈퍼 GT 드라이버를 은퇴한 이후, 팀의 테크니컬 매니저 겸 감독 대행으로 활동하다가 2023년 시즌부터 슈퍼 GT와 슈퍼 포뮬러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18년에 결혼해서 현재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호시노 카즈요시는 70이 넘어서 할아버지가 되었다.
2. 레이서가 되기까지
본래는 리틀야구 내야수 출신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는 사이,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레이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를 막은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인 호시노 카즈요시였다. 이에 대해 호시노 카즈요시는 이러한 이유로 반대를 했다고 한다.프로만큼 엄격한 것은 없다는 것은 내가 가장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시노 카즈요시, 한 인터뷰에서
호시노 카즈요시, 한 인터뷰에서
실제로 이 때문에 학교에서도 카트라도 배우게 하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 사실 여기에는 다른 의미도 있는데, 호시노 카즈요시는 적어도 자식이 평범한 생활을 하기를 원했다고 한다.[3] 이는 본인이 레이싱 드라이버로 활동하면서 사고로 인해 의식을 잃고 병원에 가는 일이 있었기 때문으로 호시노 카즈요시 현역 시절의 포뮬러 카나 경주차들은 그 이후의 시대보다 안전성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4] 또한 후지 스피드웨이 항목에도 나온데로 서킷의 노후화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도 컸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친인 호시노 카즈요시 자신이 그런 경험을 해봤기에 자신의 자식이 똑같은 경험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말을 들어라. 라고 반대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가 은퇴를 선언한 이후 부친인 호시노 카즈요시도 그 말을 하면서 미안하다고 했으니 말을 다한 셈.
그렇게 테이쿄대학을 졸업한 호시노 카즈키는 20대가 되어 졸업을 1년 앞둔 시점에 부친인 호시노 카즈요시와 담판을 아래의 말을 하면서 아버지를 설복시킨다.
여기서부터는 제 인생이니까, 카트를 하게 해주세요.
호시노 카즈키, 아버지인 호시노 카즈요시와의 담판과정에서.[5]
호시노 카즈키, 아버지인 호시노 카즈요시와의 담판과정에서.[5]
이에 놀란 호시노 총감독도 결국은 수락, 1999년 22세의 나이로 카트를 시작, 그리고 같은 해 스즈카 레이싱 스쿨에 입교한다. 사실상 스즈카 레이싱 스쿨에 입학할 수 있는 막차를 탄 셈.
3. 선수 활동
3.1. 영국 포뮬러 활동기
1999년 카트 레이스 활동을 시작함과 동시에 스즈카 레이싱 스쿨 포뮬러 클래스에 들어갔다. 스즈카 레이싱 스쿨에 들어갈 수 있는 최고 연령이 22세인걸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막차를 탄 셈. 이후, 2000년에 영국으로 건너가 포뮬러 포드 주니어와 포뮬러 르노에 참전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가 당시에는 "영어를 하나도 몰랐다."라는 건데, 당시 그가 할 줄 아는 영어는 Hello와 How are you? 가 전부였고,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산 전자사전에 의존해서 영국으로 유학을 간 것이다.영국에서 영어를 배우면서 레이스 활동을 진행, 이때 부친인 호시노 카즈요시는 이왕 시작했으니 제대로 해라. 라 하면서 경기 중 다중 사고로 두려워하던 호시노 카즈키에게 전화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레이스 하다가 무섭지 않은 녀석은 없어.(レースやってて怖くない奴なんていないんだよ)
호시노 카즈요시, 그렇게 말하고서, 자신의 경험을 알려줬다.
호시노 카즈요시, 그렇게 말하고서, 자신의 경험을 알려줬다.
3.2. 일본 무대 활동기
2002년 귀국 후, 전일본 F3 챔피언십에 참전했고, 다음해인 2003년에는 전일본 GT 챔피언십, 슈퍼 다이큐에 출전한다. F3에서는 임팩트 있는 모습을 남기지 못했지만, 전일본 GT 선수권에서는 닛산 실비아로 참전하면서 데뷔 시즌이던 2003년부터 챔피언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그가 탄 닛산 실비아는 2003년이면 사실상 퇴역이 확정된 차였지만, 그는 그런 차로, 챔피언십 싸움을 뛰어들었고, 제5전에서는 GT300 클래스 2위를 기록하면서 커리어 처음으로 포디엄에 올랐다.커리어 첫 챔피언 획득은 2004년 슈퍼 다이큐에서 나왔는데, 그해 클래스 3에서 닛산 페어레이디 Z를 타고 클래스 챔피언에 등극한다. 이후 이 3년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2006년 포뮬러 닛폰과 슈퍼 GT GT500 클래스로 스텝업 하면서 부친인 호시노 카즈요시가 감독으로 있는 팀 임풀의 드라이버가 되지만, GT500에서 단 1승[6]만을 거두고 팀을 나와야 했다. 그러나 2006년 토카치 24시 내구 레이스에서는 클래스 우승을 거머쥐면서 닛산계 드라이버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2005년에 소속되어 있던 MOLA 팀으로 재이적하면서 GT300으로 내려간 호시노는 그해 2등 2번, 우승 1회를 더해서 야스다 히로노부와 함께 GT300 클래스 정상에 올랐고,[7] 2010년 하세미 모터스포츠로 이적해 야나기다 마사타카와 조합을 이뤄서 최종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다시 한번 GT300 클래스 챔피언에 등극했다.[8] 그러면서 동시에 닛산 GT-R GT3의 개발 드라이버로 활동하는 등 폭넓은 레이싱 활동을 전개했다.
뉘르부르크링 24시간 8회 출전, 2013년 1000km 뉘르부르크링 경기에도 참전했으며, 2013년부터는 후배 드라이버 양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한 2014년에는 아버지인 호시노 카즈요시의 회사인 호시노 임풀에 입사, 은퇴 후를 준비하게 되었다.
2018년 슈퍼 다이큐 후지 24시간에 닛산 GT-R Nismo GT3로 참전해 종합 우승을 거머쥐었고, 이듬해인 2019년에도 역시 종합 우승을 차지한다. 그렇게 선수 활동을 이어나가던 중, 2021년 9월 7일에 자신의 SNS를 통해 은퇴를 발표하고, 최종전의 퍼레이드 세레모니를 끝으로 19년에 걸친 슈퍼 GT 활동, 그리고 2000년부터 이어온 현역 선수 활동을 종료한다.
은퇴 소식을 다룬 슈퍼 GT 플러스 방송[9] |
위 방송에서 공개되지 않았지만 호시노 카즈요시는 오카조에 마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굵은 글씨는 은퇴 소식을 다룬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은 부분으로 시즌 후를 다룬 방송에만 나온다.
카즈키도, 음, 아마 여러가지도 본인의 본인이 생각했을거지만, 내가 어떤 말로든 브레이크를 걸은 쪽으로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레이스는 안된다고 했어요. 가정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정신력이 없이는 쭉 톱을 차지할 수 없어요. "레이스가 좋아"라는 레벨이 아니야. 그렇기에 스트레스가 많은 부분인데 "회사에 나가고 싶어"라든가 내 희망을 강하게 표현했어. "호시노 카즈요시가 되지 못했다."라는 말에 대해서는 굉장히 고통스러워.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만일 내가 조금이라도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죄송합니다. 정말로.
호시노 카즈요시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만일 내가 조금이라도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죄송합니다. 정말로.
호시노 카즈요시
4. 은퇴 후
4.1. 호시노 임풀의 임원 및 유튜버로서
은퇴 후 호시노 임풀 전개혼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운영, 또한 호시노 임풀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기획 및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10] 회사에서 튜닝한 차량을 소개하거나 다른 드라이버 및 유명인과 대담을 갖는 등 은퇴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편.또한 소속팀 드라이버들과의 대화도 유튜브에 공개하고 있다. 고정 게스트는 회사 영업 담당자인 토미나가 마사시 차장. 2023년에 영상 오프닝이 바뀌었다.
2022년 12월, 호시노 임풀의 본사와 같은 곳에 주식회사 팀 임풀을 창립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아무래도 2023년 시즌부터 슈퍼 다이큐에 나가게 되는 만큼, 호시노 레이싱보다 좀 더 많은 업무를 맡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11]
2024년 7월, 아버지인 호시노 카즈요시의 생일을 맞이해서 임풀의 SNS에 올라온 글에 호시노 카즈요시 회장이라고 적혀 있어서 승진 설이 나돌았고, 2024년 6월 이후에 올라온 영상들을 통해 호시노 카즈키가 호시노 임풀의 대표이사로 승진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4.2. 모터스포츠쪽 활동
선수 은퇴 후 모터스포츠 활동에 아예 손을 놓은 건 아니어서,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는 팀 임풀의 테크니컬 매니저로 활동을 했으나 시즌 후반에는 감독 대행으로도 활동했다. 이 때문에 2022년도 슈퍼 포뮬러 제8전 당시 팀이 1위와 2위를 차지하자 아버지인 호시노 카즈요시를 대신해서 포디엄 기자 회견에 참가해 감독 대행으로서 첫 기자회견을 진행했다.[12]은퇴문에서 발표한 대로, 즐기면서 참전할 수 있는 슈퍼 다이큐 등의 카테고리에는 앞으로도 참전 기회가 있으면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해, 평생 레이서로 있고 싶다라고 했는데, 2022년도 슈퍼 다이큐 후지 24시간에 마츠다 츠기오, 로니 퀸타렐리, 히라테 코헤이와 함께 신형 페어레이디 Z를 기반으로 한 레이싱 컨셉을 타고 ST-Q 클래스에 참가해, 차량 개발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고, 이 대회에서 5위로 주행을 완수했다.
2023년 1월 29일, 닛산의 2023년도 시즌 모터스포츠 체제 발표를 통해 부친의 뒤를 이어 팀 임풀의 감독으로 승진했음을 밝혔다. 부친인 호시노 카즈요시는 총감독으로 영전. 동시에 팀 임풀이 닛산 Z GT4 차량으로 슈퍼 다이큐에 나서게 됨에 따라 이쪽에서는 드라이버로 나서는 것으로도 모자라, 2023년 3월 1일 컬러링 공개와 함께 슈퍼 포뮬러의 감독으로도 공식적으로 참가한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5. 여담
-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서킷은 스즈카 서킷. 서킷과 유원지가 함께 있다보니 장거리 레이스 중에는 유원지에서 놀 수 있었다고.
- 영국에서 거주할 때 런던 교외에서 거주해 런던의 패션을 많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실제로 취미 중 하나가 운동화 수집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편. 또한 이로 인하여 패션 전반과 운동화에 대한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은 편이다.[14]
- GT500과 포뮬러 닛폰 모두 아버지의 팀에 소속되어 있던 만큼, 성적 면에서는 아버지가 엄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성적만 보면 일본의 탑 팀[15]에 어올리는 성적은 아니었지만, 부친인 호시노 카즈요시는 적어도 GT만큼은 실력을 갈고 닦아서 GT300에서 경험을 살렸으면 한다는 생각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GT300에서 두번이나 챔피언에 올랐다.
- 전술한대로 아버지를 설득해서 레이싱을 시작한 본인이지만,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본인 역시 은퇴 후,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면서 자녀가 레이스를 하겠다 그러면 말릴 거라고 유튜브 채널 영상을 통해 언급했다. 다만 호시노 카즈키 본인이 리틀야구 내야수 출신인 걸 생각했을때 아버지인 호시노 카즈요시 감독이 어느 정도 동의만 해줬다면, 의외로 더 좋은 성적을 남겼을 가능성도 있다.[16][17]
- 사실 호시노 카즈키 본인도 아버지와 담판을 지어서 레이스를 시작한 드라이버이다보니 어쩌면 아버지가 왜 반대했는지를 은퇴해서야 할 거 같다고 했다. 호시노 카즈요시는 아마 결정을 내리는 건 자신이 아니지만 조언은 많이 해줄 거 같다고. 특히 정신적인 면에서 부유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18]
- 눈물이 많은 드라이버이다. GT300과 500 모두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남들 시선은 생각하지 않고 울었고, 2008년 챔피언이 된 이후 아버지의 곁에서 울었고[19], 인터뷰 중에도 아버지의 이름이 나오자 울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속해 있던 게이너 팀에서 거행해 준 은퇴식에서도 결국 울었다.
- 두살 연하이자 2010년 우승 콤비인 야나기다 마사타카처럼 젊은 시절[20], 미나미 오오이에 있는 니스모의 부품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그 경험이 두 사람의 현재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듯.[21] 호시노 카즈키의 말에 의하면 거기서 경주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배웠다고 한다. #[22]
-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취미 중 하나가 경마다. 2008년 시즌 파트너였던 야스다 히로노부나 선배 드라이버인 모토야마 사토시와 함께 경마 전문 방송에 출연한 바 있고, 실제로 경주마에 대해 소액 지분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신념 중 하나가 말고기 회는 먹지 않는다. 라고.
- 애차는 닛산 페어레이디 Z 이지만 최근에는 자신이 이사로 있는 호시노 임풀에서 튜닝한 닛산 스카이라인 400R[23]을 타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고 있다. 슈퍼 GT 공식 유튜브에서도 소개하면서 피트 리포터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을 정도. 일단 2023년 현재 주력 애마는 신형 페어레이디 Z로 자신이 이사로 있는 호시노 임풀에서 튜닝한 것이다.
- 성적 면에서 보면 좀 재미있는게, GT-R로는 포디엄에 간 이력이 많지 않은데[24], 페어레이디 Z로는 시리즈 챔피언을 차지했다. 실제로 시즌 챔피언을 획득할 당시 탄 차량들이 전부 페어레이디 Z. 이때문에 야나기다 마사타카와 그의 부친인 야나기다 하루히토처럼 'Z의 호시노'라는 별명을 붙여야 하는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고 본인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전술한 슈퍼 다이큐에 처음 출전했을 때 탔던 차도 페어레이디 Z.
- 영화 그란 투리스모의 실제 주인공인 잔 마든보로가 일본 무대에 처음 뛰었을 때의 파트너였다. 마든보로가 GT300 클래스에서 활동할 당시 호시노 카즈키는 사실상 베테랑 드라이버의 위치에 있던 셈. 그리고 2023년 9월 24일 잔 마든보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영어 실력을 공개했는데, 일본인인것과 질문지를 보고 인터뷰하는 것을 감안해도 의외로 유창한 영어발음을 보여줬다! 영국에 처음 갔을 때 전자사전에 의지해 간 걸 생각하면, 상당히 좋은 발음이다.
- 2024년 호시노 임풀 전개혼 첫 영상으로는 아버지인 호시노 카즈요시의 닛산 스카이라인 니스모를 시승했다. 무려 양산 1호차인 차량을 시승하고 영상을 찍어버린 것! #
- 카고 아이와는 가족끼리 모임을 갖고 있는 편. 그리고 카고 아이 역시 호시노 임풀 전개혼 유투브의 시청자 중 1명이라고. 그래서 아예 카고 아이의 유튜브 채널과 호시노 임풀 전개혼이 콜라보를 하기도 했고 호시노 임풀에서 튜닝한 닛산 킥스를 카고 아이가 구매하기도 했다. 카고 채널에서 호시노 임풀을 찾아간 영상/ 닛산 킥스 인수 영상
[1]
2010년
슈퍼레이스 슈퍼 6000 클래스 우승자인 그 밤바 타쿠가 맞다.
[2]
초대 대표는 당연히 아버지인 호시노 카즈요시.
[3]
사실 호시노 카즈요시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게, 아들이라고는 호시노 카즈키 하나 뿐이니, 만일 아들인 카즈키가 사고를 당하면 최악의 경우 집안의 대가 끊기는 셈이다.
[4]
참고로 일본에서 머리와 목을 보호하는 한스가 처음 들어온 것이 2004년이다. 이것도 당시 미치가미 료가 2002년 포뮬러 닛폰에서 사고를 당한 이후 처음으로 들여온 것으로 그 이후 13년이 지나서야 JAF 차원에서 의무화 시킨거다.
[5]
이 말은 아래에 나오는
영상 부분에 나온다.
[6]
2006년도 스즈카 1000km 우승이 유일한 우승이다.
[7]
여담이지만, 당시 MOLA팀의 감독이었던 하가 미사토(2023년 현재 요기보 레이싱 감독)는 일본 모터스포츠 톱 클래스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여성 감독이 되었고 14년 뒤인 2022년에는 GT 월드 챌린지 아시아에서 팀 드라이버인 요코미조 나오키가 실버컵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같이 맛봤다.
[8]
이 우승은 하세미 모터스포츠가 슈퍼 GT에서 거둔 마지막 우승으로 하세미 모터스포츠는 2010년을 끝으로 슈퍼 GT에서 철수했다.
[9]
아버지인 호시노 카즈요시가 가졌던 고뇌, 그리고 드라이버가 되고 싶었던 아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다.
[10]
사실 이게 가능했던게, 선수 데뷔전, 그러니까, 학창시절에 호시노 임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이력이 있다! 그러니 운영 및 상품 기획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배운 게 있는 셈.
[11]
이는 주 사업내용을 보면 확인이 가능한데, 호시노 레이싱이 경기 참전 및 매니지먼트, 차량 관리가 주된 업무인데 반해, 팀 임풀의 경우 국내외 자동차경주의 기획이나 개최, 알선 및 자동차용 관련 굿즈 제작에도 나서는 것으로 적혀있다. 어쩌면 팀 임풀의 개념 자체는 호시노 임풀과 호시노 레이싱의 시스템을 통합하는 구조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12]
이 당시 첫 마디가 '우선 호시노 카즈요시 감독이 아니라 죄송합니다.(まず初めに、星野一義監督ではなくて、すいません)'였다.
[13]
그런데 이게 국내만의 생각도 아닌건지, 해외에서는
소식을 전하면서 Line of succession이라 표기했다.
[14]
실제로 호시노 임풀의 온라인 샵에 들어가면, 이색적인 굿즈가 많고
푸마와 콜라보 한 것도 있다. 형, 그러니까, SF쪽 셔츠 같은 것도 팔라니까요??
[15]
실제로 임풀은 드라이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팀 1호라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자부심도 강한 셈.
[16]
의외로 어릴 때 야구 같은 운동을 한 드라이버들이 운동신경이 좋은 편인데, 현재는 고인이 된 윤세진 선수도 본래
오산고 시절 야구부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었다는 기사가 있었고 한국 모터스포츠에 데뷔한 이후 한 해에 GT와 포뮬러를 모두 우승한 이력을 감안한다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나쁘지 않은 운동신경 및 본인의 드라이빙 스타일으로 좋은 성적을 남기고 현역 활동을 더 하거나 GT500에서 조금 더 길게 활동했을 확률이 높다.
[17]
역시 같은 닛산 출신 드라이버인 야나기다 하루히토를 아버지로 두었고 호시노 카즈키와 2010년 GT300 우승 당시 콤비였던 야나기다 마사타카의 경우 2023년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2024년에는 감독 겸 니스모의 고문, 그리고 니스모 드라이빙 아카데미 교장으로 있으니 말 다한 셈.
[18]
호시노 카즈요시 본인 항목에도 나오지만 이분은 현역 시절에 긴장감으로 인해서 습진이 생겼던 분이니 그럴만도 하다.
[19]
참고로 영상의 경기인 2008년 슈퍼 GT 최종전에서 호시노 카즈요시까지 사실상 운 이유는, 이 경기에서 GT500의 우승 팀이 바로 자신이 전년까지 뛰었던 호시노 임풀이었기 때문. 즉 아버지인 호시노 카즈요시가 이끈 팀이 이해 2승을 거뒀고 아들 자신은 시즌 챔피언이 되었다. 여기에 당시 감독인 하가 미사토는 일본 모터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톱 대회 챔피언 팀을 이끈 여성 감독이 되었다.
[20]
전일본 F3에 참전한 시점으로부터 2년간.
[21]
야나기다의 경우 슈퍼 다이큐 시리즈의 오피셜 타이어로 한국타이어가 선정되자 그걸 공급하는 일에 나서고 있으며 역시 아버지의 가게인 센트럴20을 홍보하는 일이 있다.
[22]
영상에 같이 출연한 야나기다 마사타카의 말에 의하면 호시노 카즈요시 총감독도 그랬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을 끝으로 제도가 없어졌다고 한다.
[23]
호시노 임풀의 에어로 파츠 및 전용 엔진 컴퓨터, 머플러를 교체 해 최고출력 519마력을 낸다.
[24]
실제로 호시노 카즈키의 데뷔시기인 2003년이면 전일본 GT 챔피언십에서 스카이라인 GT-R R34의 마지막 시즌이고, GT500에 참가한 시기에 닛산은 페어레이디 Z를 사용했다. 여기에 GT-R GT3가 등장한 시기가 호시노 카즈키의 커리어 후반기라는 점도 한 몫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