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현창희(玄昌凞) |
본관 | 연주 현씨[1] |
출생 | 1882년 6월 22일 |
평안도
가산군 남면 영미리 역 앞 (현 평안북도 운전군 운전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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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미상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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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82년 6월 22일 평안도 가산군 남면 영미리(현 평안북도 운전군 운전읍) 역 앞에서 아버지 현술근(玄述根)과 어머니 수원 백씨 백상필(白尙弼)의 딸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920년 2월 평안북도 박천군에서 대한독립단 단원으로서 단장 조맹선의 명령을 받고 국내에 잠입한 현건주를 만났다. 그는 이때 현건주의 권유로 대한독립단 결사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충청남도 지방에서 군자금을 모집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뒤 박천군을 떠나 그해 3월 12일 충청남도 천안군 성환면(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에 도착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천안경찰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에 1920년 4월 30일 소위 강도 및 정치범죄 처벌령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그해 6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심 판결이 일부 취소되고 정치범죄 처벌령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얻어냈으나, 형기는 그대로 유지되어 옥고를 치렀다. #
출옥 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봉천성 유하현(柳河縣)[2]에 거주했다는 것 이외의 행적은 알 수 없으며, 사망년도에 대해서도 자료가 미비하여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