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6.25 전쟁 당시 수도사단 26연대 1대대 1중대 2소대였고 북한에 포로로 잡혀 50년간 일하다가 2000년에 한국으로 귀환했다.2. 상세
1932년에 태어나 국민학교 졸업 후 정미소에서 일하다가 갓 스무 살이 되던 때인 1952년에 징집돼 강원도 금화군의 최전선에서 싸웠는데 1953년 7월 4일 정전 협상을 3주 앞두고 최전방 봉수리에서 중공군에게 붙잡혀 북한으로 넘겨졌다.1954년 북한 함경북도 경흥군의 아오지 탄광은 두만강만 건너면 중국 땅인 이곳은 1월 평균 기온이 -10도인 한반도의 최북단 지역이었고 국군포로로 잡혔던 그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수용 생활을 했다.
포로로서 잡혀 온 국군들은 그야말로 탄광에서의 생활은 지옥이었다고 한다. 제일 낮은 막장에서는 기온이 영상 40도까지 올라가 숨쉬기도 힘겹고 땀은 비 오듯이 흘렀으며 한참 일을 오랫동안 계속 하다 보면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였으며 눈만 반들반들 빛났다. 지압이 제일 센 밑바닥에서 탄을 캐다 보니 발파도 할 수 없고 레일을 놓지 못해 밀차도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이지만 작업 총화 때 실적이 없으면 무척 심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하루 실적은 기본 8톤을 날라야 했고 8시간 내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 질통에 담아서 다 날라야 겨우 작업량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지하에서 땀을 뻘뻘 흘리다가 밖으로 겨우 나오게 되면 순간적으로 모든 게 얼어붙었고 온종일 발싸개도 없이 신발을 신고 다니다 보니 신발을 벗을 수 없었으며 그걸 힘으로 억지로 벗기게 되면 살 껍질이 벌겋게 묻어났고 나중에는 피가 나왔다고 한다.
아오지, 신창, 무산 등 북한 각지 탄광에서 광부로 동원됐던 대부분의 국군포로들에게는 호흡기 질환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상흔이었고 그도 이들 중 하나였는데 포로로 북한에서 50년간 최하위 빈민계층으로 살다가 2000년에 간신히 탈북해 한국으로 겨우 살아서 귀환했고 전라남도 구례군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에 정착해 조용히 살면서 탈북 직후부터 꾸준히 원고를 써 왔다. 당시 출판사 '원북스'를 운영하던 황인철은 납북자 가족, 국군포로 관련 모임에 나갔다가 한 국군포로 어르신이 책을 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는데 몇 다리 건너 허씨와 접촉해 원고를 받았고 최소한의 편집으로 문체를 살린 체험수기록을 단행본으로 펴냈다. 책이 나온 후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도희윤 대표는 "어르신의 출판 의지가 굉장히 강하셨다"며 "우리 같은 시민단체는 가족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 판단이 전제되지 않으면 먼저 출판하자고 권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남한에서 수기가 발간되고 1~2년 후인 2010년 북한에 남겨 두고 온 아들이 고문당하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한 사실의 확인은 어려웠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허재석이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전해졌다. 그의 책의 추천사를 쓴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는 "아들이 고문을 받아 사망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며 "어르신이 수기를 쓰실 때도 이런 문제 때문에 대단히 큰 각오를 하고 결단을 내리셨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2021년 11월 2일 폐암으로 인해 향년 89세로 사망했다.
3. 저서
- 내 이름은 똥간나새끼였다 (탈북 국군 포로 출신 두번째 회고록) - 2008.4.17 / 원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