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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AFA00><colcolor=#DD1E1F> 응우옌 왕조 제8대 황제
함응이 황제 咸宜帝 | Hàm Ng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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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1년 8월 3일 | ||
대월 응우옌 왕조
후에
후에 황궁 (現 베트남 후에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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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3년 1월 4일 (향년 71세) | ||
프랑스령 알제리
알제 (現 알제리 알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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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 | 프랑스 누벨아키텐 샤토 드 로세 묘소 | ||
재위기간 | 제8대 황제 | ||
1884년 8월 2일 ~ 1885년 9월 1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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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AFA00><colcolor=#DD1E1F> 성씨 | 응우옌(Nguyễn, 阮/완) | |
휘 |
푹응릭(Phúc Ưng Lịch, 福膺𧰡/복응력) → 푹민(Phúc Minh, 福明/복명) |
||
부모 |
부친
순의견태왕 모친 판티난 |
||
형제자매 | 5남 7녀 중 5남 | ||
배우자 | 마르셀레 랄로에 | ||
자녀 | 1남 2녀 | ||
묘호 | 없음 | ||
시호 | 없음 | ||
제호 | 출제(出帝) | ||
연호 | 함응이(Hàm Nghi, 咸宜/함의, 1885년) |
[clearfix]
1. 소개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제8대이자, 실질적으로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다. 이후의 모든 군주들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이왕가가 그렇듯 군주라는 호칭만 달고 있을 뿐인 프랑스의 꼭두각시 군주였다.묘호와 시호는 없으며, 제호(帝號)는 출황제(出皇帝). 휘는 복명(福明), 즉위 전 이름은 완복응력(Nguyễn Phúc Ưng Lịch, 阮福膺 豆+歷)[1]이다. 소치제의 손자이자, 순의견태왕(純毅堅太王) 완복홍해(阮福洪侅)의 아들.
2. 생애
재위 초기에는 완문상(阮文祥)이 섭정을 맡았다.1884년, 건복제가 사망하자, 조정의 대신이자 실권가였던 똔텃투옛에 의하여 황제로 옹립되었다.
1885년, 똔텃투옛의 보조를 받아 항불근왕대봉기(抗佛勤皇大風潮)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궁을 나가서 반프랑스 독립 운동을 주도하였으나, 프랑스는 즉시 함의제를 폐위시키고, 함의제의 형인 동경제(同慶帝)를 즉위시켰다. 함의제는 3년 동안 정글을 돌아다니며 저항하였으나 1888년에 사로잡혀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로 유배되었다.
알제리로 유배된 함의제는 프랑스 여성과 결혼하였고 1남 2녀를 낳았으며, 1943년에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알제리에서 여생을 보내는 동안 그는 전업 화가로서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대부분 알제리 전쟁으로 소실되고 이 작품을 포함한 몇몇 작품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이 그림들은 프리미엄이라면 프리미엄일 수도 있는 게 화가의 그림실력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일국의 황제가 그린 그림이라서 상징성이 매우 강한 작품이다.
1930년에는 프랑스 아키텐 지방의 고성인 샤토 드 로세(Château de Losse)를 매입하였으며, 사망 후 이 성에 묻혔다.
3. 사후
응우옌 왕조의 후손들은 베트남에 입국할 수 없으나, 함의제의 후손들은 프랑스와 싸운 공적이 있기 때문에 베트남 입국이 허용된다고 한다. 베트남 정부는 묘소도 베트남으로 이장하라고 권했으나 후손들이 거절했다.현대 베트남에서는 성태제, 유신제와 함께 그나마 프랑스와 싸워보기라도 했고, 3년 동안 저항을 이끌었던 점을 높이 사서 응우옌 왕조의 황제들 중에선 이 사람이 명군으로 추앙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