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제1성씨에 대한 내용은 응우옌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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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 가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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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 {{{#DD1E1F Nhà Nguyễn | 阮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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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AFA00><colcolor=#DD1E1F> 건립일 | 1558년 11월 | ||
창립자 | 응우옌호앙 | ||
現 수장 | 응우옌푹바오안[1] | ||
국가 |
광남국 대월국 월남국 대남국 베트남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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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응우옌( 쯔꾸옥응으: Nhà Nguyễn, 쯔놈: 阮朝)은 1802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을 다스렸던 황실 가문이다. 베트남 역사상 마지막 왕조이기도 하다.2. 역사
자세한 내용은 응우옌 왕조 문서 참고하십시오.응우옌 가문은 16세기 이래 베트남 북부의 탄호아 지방을 다스리는 유력 가문이었다. 응우옌 가문은 옛날부터 베트남 일대에서 꽤나 힘을 쓴다고 널리 알려져 있던 대귀족 가문이었는데, 965년에는 딘 왕조 아래에서 재상직을 맡기도 했고 레 왕조 시기인 1442년과 1453년 사이 동안에는 섭정직을 맡아 어린 황제 대신 베트남을 대신 통치할 정도로 그 권세가 높았다.
그러나 응우옌씨 정권에서 과도한 징세와 수탈에 반발하여 1774년 떠이선 농민 운동이 일어난다. 농민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서 엄청난 국력을 쏟아부어야 했던 응우옌씨 정권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응우옌 가문은 완벽히 몰락한다.
그런데 이 살육에서 살아남은 응우옌 가문의 후계자가 단 한 명 있었으니, 그가 바로 13세의 어린 응우옌푹아인(Nguyễn Phúc Ánh, 阮福暎), 즉 응우옌 왕조의 창업군주인 자롱 황제였다. 이후 베트남을 통일한 응우옌푹아인은 1802년 6월 1일 연호를 가륭(Gia Long, 嘉隆)이라고 짓고 황제에 즉위하니, 이를 자롱 황제라고 부르며 베트남 최후의 왕조인 응우옌 왕조를 개창하게 된다.
이후 민망 황제가 응우옌 왕조의 전성기를 이끌어 갔으나, 그가 죽은 이후 민망 황제를 이어 황위에 오른 장남 티에우찌 황제는 전대에 비하여 유약한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티에우찌 황제의 6년간의 재위기 동안 베트남의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1800년대 중후반에 걸쳐서 끊임없는 서구 열강들의 간섭에 시달렸다. 이어서 1883년 제1차 후에 조약(계미 조약, 아르망 조약)으로 베트남은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결국 응우옌 왕조는 허수아비일 뿐 실질적인 권력은 전혀 없는 괴뢰 정권 수준으로 격이 낮아졌으며, 이후 1945년 8월 25일 바오다이 황제가 퇴위했다. 이로써 143년에 걸친 응우옌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