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한상욱(韓相旭), 한상택(韓相擇) |
자 / 호 | 송정(松汀) / 지례(知禮) |
본관 | 청주 한씨[1] |
출생 | 1909년 7월 26일[2] |
경상북도 신녕군 현내면 하일동 (현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완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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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5년 4월 21일[3] |
대구광역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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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한상택은 1909년 7월 26일 경상북도 신녕군 현내면 하일동(현 영천시 신녕면 완전리)에서 아버지 한종수(韓鍾洙)와 어머니 청주 양씨(淸州 楊氏) 양호남[4]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대구농림학교 재학 중이던 1928년 2월에 비밀결사 적우동맹(赤友同盟)에 가입하여 조직연구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적우동맹은 회원을 그룹별로 나누어 매월 1회 간부회 및 월례회(月例會)를 개최하는 한편 매주 1회 그룹회를 열면서 항일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던 중 대구고등보통학교의 동맹휴학으로 인해 1928년 4월 동맹휴학 주동자가 퇴학을 당하게 되자, 적우동맹은 이에 관계하면서 동맹휴학 대책을 강구했다.
그러나 적우동맹은 회원들이 졸업하게 되면서 2달만에 해산되었고 조직을 개편했는데, 이때 한상택은 조사부위원으로 계속 활동했다. 그러나 동맹휴학과 관련하여 적우동맹 조직이 발각되면서, 그는 1928년 11월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1930년 3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출옥하였다.
8.15 광복 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영천군지부장, 민선 신녕면장, 윤강회(倫綱會) 회장, 신녕향교 전교 등 여러 사회활동을 하다가 1985년 4월 21일에 대구직할시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한상택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