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유도 남자 -95kg 금메달 | ||||
로베르트 판 데 발레 ( 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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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형주 ( 1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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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리우 미게우 ( 1988) |
<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하형주 河亨柱 | Ha Hyungj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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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2년 6월 3일 ([age(1962-06-03)]세) |
경상남도 진주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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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진주 하씨 (晋州 河氏)[1] |
현직 |
동아대학교 예술체육대학 체육학과 교수 국민체육진흥공단 상임감사 |
학력 |
진주천전초등학교 (졸업) 대아중학교 (졸업) 부산체육고등학교 (졸업) 동아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 / 학사) 동아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2]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스포츠심리학 / 박사)[3] |
종목 | 유도 |
체급 | -95kg |
신체 | 185cm, 95kg |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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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유도 선수이자 現 대학 교수이다.2. 선수 경력
2.1. 1981년
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 유도 사상 처음으로 무제한급 금메달을 획득했고, 대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 세계선수권에서도 세계 최고의 중량급 강호들의 사이에서 20세의 나이로 동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도 거뒀다.2.2. 1983년
5월에 열린 범태평양선수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2.3. 1984년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 기수로 활동했다.[4] 하프 헤비급[5]에서 세계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올림픽 출전을 위한 연습 도중 허리 부상을 당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8강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미하라와 경기를 가졌다. 한판을 줘도 무방했지만 절반을 두 차례 얻어내며, 4강에 진출하였다. 4강전에서는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권터 노이로이터를 상대로 초반에 효과를 내주며 힘겨운 경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종료 38초를 남기고 뒤축걸리기를 성공하며, 결승에 진출하였고, 결국 우승했다. 이 과정을 마음 졸이며 TV를 보던 국민들은 열광했으며, 경기를 시청하다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분이 3명이나 있을 정도였다.2.4. 1985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생애 처음으로 결승전까지 진출하여 일본의 강자 스가이 히토시와 맞붙었지만, 경기 막판 석연찮게 들어간 빗당겨치기로 한판 패하여 은메달에 머물렀다.2.5. 1986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결승전에서 스가이 히토시와 다시 만나 모두걸기 절반을 따내면서 우승했다.2.6. 1987년
유도 국가대표선발전을 겸한 전국 남녀 체급별 선수권 대회 95 kg 이하급 경기에 출전하여, 2회전에서 왼팔 관절부위에 큰 부상을 입었지만, 오른팔로만 남은 2 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우승하였다. 우승 후 인터뷰에서 '한 팔쪽 없어도 시합은 할 수 있으니깐, 최선을 다했다'라고 밝혔다. 세계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2.7. 1988년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김재엽, 안병근과 함께 유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1회전에서 1980 모스크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벨기에의 로베르트 판 데 발레에게 가로누르기 한판 패하여 초반 탈락했다. 금메달은 1985 고베 하계 유니버시아드 결승전에서 하형주에게 패배한 아우렐리우 미게우가 차지했다.3. 은퇴 이후
모교인 동아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쓰고 있다. 국내 스포츠 이벤트에서 종종 모습을 드러냈는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는 북한 유도 선수 계순희와 함께 성화 공동 점화자로 선정되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는 본인을 포함하여 강광배, 박세리, 서향순, 임오경, 이승엽, 진선유, 황영조와 함께 대한민국 동·하계 스포츠 레전드로 선정되어 태극기를 운반했다.2022년부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를 보면 인수위 유일한 체육인이라는데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예전에도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1995년 지방선거에 부산시의회 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된 적이 있는 이력이 있을 정도로 보수지지 성향이다.
4. 수상 기록
올림픽 | ||
금메달 | 1984 로스앤젤레스 | -95kg |
세계선수권 | ||
은메달 | 1985 서울 | -95kg |
동메달 | 1981 마스트리흐트 | -95kg |
동메달 | 1987 에센 | -95kg |
아시안 게임 | ||
금메달 | 1986 서울 | -95kg |
아시아선수권 | ||
금메달 | 1981 자카르타 | 무제한급 |
은메달 | 1981 자카르타 | -95kg |
범태평양선수권 | ||
금메달 | 1983 홍콩 | -95kg |
유니버시아드 | ||
금메달 | 1985 고베 | -95kg |
5. 기타
- 1987년 12월 14일 본인과 김재엽을 포함한 유도 선수 22명이 자신들에 대한 인격적 대우와 코칭스태프의 개편을 요구하면서 훈련 참가를 거부한 적이 있다.
- 2021년 3월 19일, 일간지에 기사화된 '국내 1호 한미 장교 부부 탄생'의 주인공 가운데 신부가 하형주 교수의 장녀 하늘[6] 대위( 육사 71기)[7]임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 발 크기가 320mm다.
[1]
양암공파(陽菴公派) 31세손.(
족보)
[2]
석사 학위 논문:
柔道選手의 運動感覺에 관한 硏究(1986. 2)
[3]
박사 학위 논문:
스포츠 指導者의 對應價値 리더쉽 檢査紙 開發과 指導類型 分析(1996)
[4]
다른 국가의 기수들은 깃대를 두손으로 공손히 들고 입장하는데 하형주는 한손으로 가뿐히 들고 다녔다.
[5]
95 kg 이하며, 현재는 한계체중이 바뀌어서 100kg 이하다.
[6]
2007년 도전 골든벨 전국고교최강전에도 출연하였다.
[7]
2025년부터 소령진급 심사대상기수다. 무난하게 진급했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