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d500><colbgcolor=#6699FF> 초대 우크라이나 국가위원회 의장 파울로 샨드루크 Павло́ Шандру́к | Pavlo Shandruk |
|
|
|
이름 |
파울로 페오파노비치 샨드루크 (
우크라이나어) Павло́ Феофа́нович Шандру́к |
파브워 샨드루크 (
폴란드어) Pawło Szandruk |
|
출생 | 1889년 2월 28일[구력] |
러시아 제국 볼린현 보르수키 | |
사망 | 1979년 2월 15일 (향년 89세) |
미국 뉴저지주 트렌턴 | |
학력 | 알렉세예프 군사학교 |
직업 | 군인 |
최종 계급 | 상장 |
경력 | 우크라이나 국가위원회 의장 |
1945년 3월 12일 ~ 5월 | |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소비에트-우크라이나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
[clearfix]
1. 개요
우크라이나의 군인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우크라이나 국가위원회 의장을 지냈다.2. 생애
1889년 볼린현에서 태어났다.1909년 경찰로 일하기 시작했으나 직속 상사와의 거듭된 갈등 끝에 누명을 쓰고 해고되었다. 이후 1915년 알렉세예프 군사학교에 입교해 약 4개월간 교육을 받은뒤 준사관으로 러시아 제국 육군 제232예비보병연대에 배치되었다.
1918년 러시아군에서 동원해제되어 우크라이나 인민군에 입대해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소비에트-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 소비에트 러시아에 의해 멸망하자 여단 병력을 이끌고 폴란드로 망명해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망명정부의 간행물을 출판하는 업무를 맡으며 우크라이나 인민군 소장으로 진급했다.
1926년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5월 쿠데타 이후 폴란드군에 입대해 1938년 바르샤바 참모대학교에 들어갔으며 폴란드 침공 당시에는 자모시치-흐루비에시프 방어선에서 크라스노브로드를 방어했다. 방어전 첫날 부상을 입고 생포되었으나 1940년 석방되어 독일 육군 제11군 사령부에서 통역을 맡았다.
전쟁 중 제14무장척탄병사단에 들어갔다. 1945년 3월 12일 우크라이나 국가위원회의 의장에 선출되었고 사흘뒤 중장으로 진급했다. 그러나 5월 오스트리아에서 소련군에 의해 패배해 잔존 병력을 이끌고 영국군에 항복했다. 타 SS 외인부대의 대부분은 소련으로 송환되었으나 제14무장척탄병사단은 샨드루크를 알았던 브와디스와프 안데르스 폴란드 제2군단장의 요청으로 이탈리아의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1946년 석방되어 독일에 정착했다.
1949년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망명정부에 의해 상장으로 진급했다. 저술활동을 하며 말년을 보냈다.
3. 참고문헌
[구력]
1889년 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