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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31 16:04:53

트라우고트 오버러

스위스의 前 축구선수
파일:Raimundo Infante.jpg
<colbgcolor=#d80028> 이름 트라우고트 오버러
Traugott Oberer
출생 1924년 11월 30일
스위스 바젤
사망 1974년 11월 30일 (50세)
스위스 바셀
국적
[[스위스|]][[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소속팀 FC 몽트뢰스포르 (1943-1944)
FC 바젤 (1944-1948)
캉토날 뇌샤텔 (1949-1950)
FC 키아소 (1950-1952)
캉토날 뇌샤텔 (1952-1953)
FC 키아소 (1953-1956)
캉토날 뇌샤텔 (1956-1957)
국가대표 파일: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경기 2골 ( 스위스 / 1949~1950)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
3. 수상
3.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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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위스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오버러는 FC 바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지만 공식적인 데뷔는 하부 리그의 FC 몽트뢰스포르에서 했다. 1944년에 오버러는 다시 바젤에 복귀했지만 그 시즌에 팀은 나티오날리가 A에서 14개 팀 중 13위로 강등당했다.

바젤의 다음 시즌 목표는 즉각적인 승격이었다. 오버러는 20골을 넣어 27골을 넣은 르네 바더와 함께 팀의 재승격을 이뤄냈다. 1946-47 시즌에 바젤은 스위스컵 우승을 차지했고 오버러는 리그에서 2번의 해트 트릭을 포함해 그 시즌에 13골을 넣었다.

1948년까지 바젤에 머물렀던 오버러는 잠시 커리어 중단을 겪고 1949년에 캉토날 뇌샤텔로 복귀했다. 그 이후로 오버러는 캉토날 뇌샤텔과 FC 키아소를 오가며 1957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2.1.2. 국가대표

오버러는 나티에서 총 3번의 출전 기회를 얻었다.

1949년 9월 18일, 룩셈부르크와의 1950년 월드컵 지역 예선 2차전이 오버러의 나티 데뷔 경기였고 오버러는 1골을 넣어 스위스의 3:2 승리에 공헌했다.

1950년 월드컵 본선 전까지 오버러는 2경기를 더 뛰었지만 그의 이름은 브라질에 가는 최종 엔트리에 없었다.

3. 수상

3.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