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F471E><colcolor=#fff> 타카타 주식회사 タカタ株式会社 | Takata Corpor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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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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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일 | 1933년 |
해체일 | 2018년 |
업종명 | 자동차 부품 제조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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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어백, 안전벨트, 카시트 등 자동차 안전 부품을 생산했던 일본의 대기업. 에어백 결함 사태로 2017년 6월 부채 총액 1조엔을 넘어 일본 제조업 사상 전후 최대의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1]2. 역사
타카타는 1933년 창업자 타카다 다케조가 일본 시가현에서 낙하산 구명줄과 섬유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타카타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에 낙하산을 제작, 공급하는 군수업체로서 급성장하게 된다.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 부터 타카타사는 일본 자동차 업체들에 안전벨트를 제작, 공급하는 회사로 업종을 전환하고, 본격적인 에어백 개발에 나서게 된다. 군수품 제조공장을 민수용으로 전환하면서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안전벨트를 테스트하기 위한 충격시험시설을 설치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미국과 한국에도 현지공장을 세우는 등 승승장구 하게된다. 1973년 일본 업체로는 처음으로 미국 교통안전국(NHTSA)의 충격시험에서 합격해 에어백의 해외 수출에도 성공하는 등 이후 타카타는 에어백[2]과 안전벨트[3], 카시트[4] 시장에서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특히 에어백 부문에서 세계 3대 메이커 중 하나로 꼽히며, 20% 이상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차지한 바 있다. 파산 보호 신청 직전 매출 상위 4개사의 순서는 혼다[5], 토요타, 포드, 닛산 순이었다.
3. 에어백 결함 사태
자세한 내용은 타카타 에어백 결함 사태 문서 참고하십시오.4. 하청 업체에 대금 부당 감액
위의 에어백 폭발 사태와는 별개로 타카타에서 2017년 2월 까지 약 1년 동안 하청 업체 총 64개사에 대해 본래 지불해야 하는 금액에서 총액 약 2억 5,000만엔을 부당하게 감액하고 있었던 것이 밝혀져, 일본 공정거래위원회가 타카타에 대해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권고를 실시하기도 했다.[6]5. 여담
1997년 타카다 2세(주이치로)가 미국 워싱턴주의 실험실에서 기술자들과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와사비를 재배했는데, 모양은 아름다웠지만 향기가 나지 않았다. 와사비는 야생의 상태에서 자라야 한다.” 라고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리곤 과학자들을 보면서 주이치로는 “당신들이 와사비야. 당신들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왔어. 당신들은 강해져야 해.”라고 말했다고. 출처하지만 남에게 어려운 지시만 할 줄 알았던 그는 전문기술자들의 경고를 전혀 듣지 않고 폭발성 에어백을 생산하도록 고집을 피웠고, 결국 아버지가 물려준 회사를 말아먹은 것은 물론, 본인의 아들에게는 파산 보호 신청이라는 최악의 유산만을 떠넘기고는 2011년 세상을 떠났다. 무능한 재벌 2세가 회사를 어떻게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는지 가장 잘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참고로 한국에도 타카타 현지법인이 있다.[7] 한국타카타 홈페이지엔, "80년 역사의 장인정신, 생명을 지키는 no.1 기업, Our Mission, Your Safety" 라고 쓰여 있다. 이후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사실상 거짓말이 되었다.
6. 관련 문서
[1]
기존의 기록은 4480억 엔의 부채로 파산 보호 신청한
엘피다 메모리.
[2]
2014년 기준으로 에어백이 회사 최대의 매출 비중을 차지한다.
[3]
안전 벨트는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약 20%를 차지했었다. (2011년 3분기 기준)
[4]
카시트는 자동차의 순정품에도 채용되고 있었다.
[5]
참고로 혼다는 타카타의
지분 또한 일부 보유하고 있었다.
[6]
NHK 뉴스 2017년 7월 18일 보도
[7]
지금은 Joyson Safety Korea 조이슨 세이프티 코리아로 회사이름이 바뀌었으며 이전과 같이 자동차용 안전벨트, 에어백 등 안전장비를 생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