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color: #4A3800,#FFF; margin: -5px 0px" |
키리아데스 | 포스투무스 | 소 포스투무스 | 라엘리아누스 |
빅토리누스 | 소 빅토리누스 | 마리우스 | 잉게누우스 | |
레갈리아누스 | 아우레올루스 | 마크리아누스 | 소 마크리아누스 | |
퀴에투스 | 오다에나투스 | 헤로데스 | 마에오니우스 | |
발리스타 | 발렌스 | 대 발렌스 | 피소 | |
아이밀리아누스 | 사투르니누스 | 테트리쿠스 1세 | 테트리쿠스 2세 | |
트레벨리아누스 | 헤렌니아누스 | 티몰라우스 | 켈수스 | |
제노비아 | 빅토리아 | 티투스 | 켄소리누스 | }}}}}}}}}}}}}}} |
로마 제국의 반란자
키리아데스 Cyriades |
|
<colbgcolor=#FCE774><colcolor=#9F0807> 출생 | 미상 |
사망 | 260년? |
반란 대상 | 발레리아누스 |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의 반란자. 발레리아누스 황제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고 알려졌으나, 실존 여부는 불확실하다.2. 생애
신뢰성이 많이 떨어지는 사료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키리아데스는 같은 이름을 가진 아버지의 아들로, 방탕한 생활로 일관해 부친을 불쾌하게 했다고 한다. 그는 부친의 재산을 훔친 뒤 사산 왕조로 도망쳐서 샤푸르 1세가 로마 제국의 동방 속주를 침공하도록 자극했고, 안티오키아와 카이사레아를 점령하는 걸 도왔다고 한다. 이후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쓰고 자주색 의복을 입었으며, 짧고 잔인하며 범죄가 가득한 통치를 일삼다가 추종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한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그의 활동 시기를 발레리아누스가 사산 왕조와 전쟁을 벌이기 위해 동방으로 가던 중 일어났다고 밝혔기에, 에드워드 기번 등 학자들은 260년경에 키리아데스가 반란을 일으켰을 것으로 추정했다.3. 실존 여부
키리아데스라는 이름은 신뢰성이 많이 떨어지는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 외에는 언급되지 않으며, 고고학적 증거도 없다. 또한 당대의 다른 사료들에는 '마리아데스'라는 인물이 키리아데스와 유사한 행적을 보였던 것이 확인된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갈리에누스 재위 기간 동안 안티오키아에 대한 페르시아의 침략을 묘사할 때 "마리아데스(Mareades)가 페르시아인들을 부주의하게 불러들어 자기 백성을 멸망에 이르게 하였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디오 카시우스가 저술한 <로마 역사>에 후대의 사건을 덧붙인 익명의 저술자는 '마리아드네스(Mariadnes)'가 페르시아군을 불러들었다고 기술했다. 마리아데스와 마리아드네스는 동일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익명의 저술가는 안티오키아의 많은 무리가 마리아드네스를 추종했으며,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길 선호했다고 밝혔다. 익명의 저술가는 이 일이 아이밀리아누스 황제 이전에 벌어진 것으로 기술했는데, 이에 따르면 마리아네스 또는 마리아드네스는 250년대 초에 반란을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요안니스 말라라스는 좀더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에 따르면, 안티오키아의 사제 마리아데스는 전차 부대를 육성하기 위해 적립된 공금을 횡령했다가 추방당했다고 한다. 그는 사산 왕조로 도피한 뒤, 샤푸르 1세에게 자신의 도시 안티오키아를 바치겠다고 제안했다. 샤푸르 1세는 즉시 군대를 일으켜 야밤을 틈타 안티오키아를 공략하고 약탈하고 불태웠다. 하지만 왕중왕은 마리아데스를 조국의 배신자로 지목하고 참수했다고 한다. 말랄라스는 이때가 언제 일어났는지에 대해 명확한 기록을 하지 않았지만, 우라니우스 안토니누스가 에메사에서 샤푸르 1세의 침공을 막아내었다는 기록 바로 전에 기술한 것을 봤을 때, 우라니우스가 활동한 254년 이전의 사건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 역사학자들은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등장하는 황제 참칭자 키리아데스는 존재하지 않았고, 마리아데스가 실존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한 마리아데스의 활동시기를 250년~254년 이전으로 추정하는데, 그중 몇몇 학자는 필리푸스 아라부스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분노해 로마에 반감을 품고 있다가,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재위 시기 안티오키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사산 왕조에게 투항했을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