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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5:44:42

쿠라타 아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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倉田厚 / Kurata Atsushi

1. 개요2. 작중 행보3.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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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카루의 바둑의 등장인물. KBS 한국어 더빙판 애니메이션에서는 구창호로 로컬라이징 되었다.

성우는 파일:일본 국기.svg 이와타 미츠오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임채헌(KBS), 최준영(투니버스)

일본기원 소속의 프로 바둑 기사로 단수는 결말부 기준 七단.[1] 중학교 시절에는 경마에 심취해 있었지만,[2] 바둑에 큰 흥미를 느끼고 본격적으로 입문하면서 경마는 그만뒀다. 그 후 단 2년 만에 프로 입단에 성공했고, 입단 후에는 젊은사자전[3]에서 우승하는 등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작중 중반부 기준 주요 기전 본선 리그에서 맹활약 중이다.

2. 작중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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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라타 아츠시에 대한 언급은 신도우 히카루가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었던 작중 초반부터 꾸준히 있었지만,[4] 직접적인 등장은 중반 이후로[5] 꽤 늦은 편이다.

이즈음 쿠라타는 한 아마추어 바둑 이벤트에 강의를 하러 나왔는데, 함께 참가한 프로 기사 고키소 七단이 한 바둑용품 판매업자와 짜고 '평범한 바둑판'을 '혼인보 슈사쿠가 생전에 직접 사용하고 서명까지 남긴 바둑판'으로 위조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600만엔)에 팔아먹는 비열한 짓을 벌이고 있었다.[6] 마침 심심풀이로 구경을 나온 히카루와 후지와라노 사이가 이걸 목격하게 되었고, 과거에 슈사쿠의 몸에 깃들어 활동한 적이 있는 사이는 단번에 가짜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가짜 서명으로 슈사쿠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며 격노했다. 게다가 아마추어를 상대로 지도기를 빙자한 양학을 하고 있었던 고키소 七단의 막장 행각에[7] 다시 한번 격노한 사이는 히카루를 통해 고키소 七단과 대국을 벌이게 되었다. 처음부터 둔 게 아니라 양학당하고 있었던 아마추어가 포기한 대국을 대신 맡아서 계속 둔 것이었는데, 고키소 七단보다 실력이 더 뛰어난 프로가 아니고서는 역전시키기 어려운 상황이였지만 분노한 사이는 어렵지 않게 역전시켰고,[8][9] 한 참가자로부터 이 소식을 우연히 듣고 찾아와 관심을 나타냈다.[10] 다만 이 때까지만 해도 쿠라타는 히카루를 『슈사쿠 필적 감정사』 정도로만 기억했을 뿐이었다.[11]
며칠 뒤, 신초단 단증 수여식을 겸한 일본기원 주최 시상식에서 히카루와 다시 만난 쿠라타는 히카루에게 "내 사인을 갖고 싶어도 이미 늦었다"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그 후[12] 한 소바 가게에서 히카루와 우연히 다시 만났고, 그의 부탁을 받고 대국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친분을 쌓게 되었다.[13] 이때 쿠라타는 흰색돌 하나로만 두는 일색바둑으로 두자고 제안했는데, 히카루의 만만치 않은 맹공에 수세에 몰렸다가 그의 수읽기 실수를 캐치해 역전하며 내심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가 이제 막 입단 대회를 통과한 햇병아리, 그것도 일색바둑이 처음인 아이의 실수를 잡아 겨우 우세를 점하게 된 자신을 깨닫고 경악하다 자기가 둔 수마저 기억하지 못하게 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황해서 아무렇게나 둔 수에 히카루가 즉각 패배를 선언하면서 간신히 체면을 지킬수 있었고, 토우야 아키라 외에도 밑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는 실력 있는 신인이 1명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끝에 히카루를 눈여겨 보게 된다. 이후로는 마주칠 때마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선배 프로 기사로서 많은 조언 및 도움을 줬다.

그 후 토우야 명인이 일본 바둑계에서 은퇴를 선언하자 "아직 토우야 명인에게서 타이틀을 빼앗지도 못했는데 너무 빨리 은퇴한다"고 안타까워 하면서도 안부 인사를 드리기 위해 명인의 자택에 직접 찾아갔다. 명인을 만나고 나오던 중, 토우야 아키라가 쿠라타에게 "쿠라타 프로와 오가타 프로를 목표로 노력하겠다."고 말하자 "너도 위만 보는구나? 네 바로 뒤에도 신도우 히카루라는 무서운 존재가 있다."고 충고해 줬는데, 이때 아키라는 쿠라타마저 히카루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북두배 에피소드에서는 일본 대표팀 단장을 맡았다.[14] 이때 한국 대표팀 단장인 '안태선'에게 묘한 경쟁의식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국제 기전에서 여러번 붙어본 사이라서 그런듯.[15] 한국에서 자신이 '일본의 안태선'이라고 불리는 것을 못마땅해하고 북두배 전야제 때 안태선이 뻐기는 모습은 보기 싫다고 소리치다 중국 대표팀 단장 양하이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3. 특징



[1] 히카루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시절에 四단→히카루가 원생이 되기로 마음 먹었을 즈음에 五단→입단 대회 에피소드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즈음에 六단 승단→각종 기전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거둔게 인정되어 결말부 즈음 七단 승단. [2]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말/기수/경기장 상태 등을 세밀하게 분석해 순위를 맞추는 재미로만 했다. 어른들에게 부탁해 돈을 건 적은 있었지만 용돈만 탕진하고 잡생각에 승률도 떨어진다며 두어 번 정도 하고 관뒀다. 그동안의 승률 자료, 말의 목 두께, 기수의 경력 등을 통해 승률을 예측했지만 이때부터 승부 감각도 남달라 자신의 계산상 1위가 확실한 말도 승부사의 감이 안 좋은 예감이 든다고 했고 실제로 기수가 채찍을 놓쳐 1등을 못하기도 했다. 한편 쿠라타 아츠시가 다니던 학교의 영어 선생도 경마 도박을 즐기는 자로 우연히 쿠라타를 알아보고 경마장에서 쿠라타가 1등을 계속해서 맞추자 쿠라타를 따라다니며 경마에 돈을 걸어 따는 맛에 들어버린다. 이후 쿠라타는 돈을 벌어다주는 존재라며 사채까지 끌어다써 경마장에 갔으나 하필 동시기에 쿠라타가 바둑에 빠지면서 더이상 경마장에 안나타나게 된다. 수년 후 이 교사는 꾀죄죄한 몰꼴이 되어 라멘을 먹다가 히카루랑 만나게 되는데 쿠라타가 만약 바둑에 빠지질 않았다면 자신은 지금쯤 백만장자가 되었을 것이라며 화를 내는 것을 보면 아직 정신 못 차린듯 싶다. [3] 작중에 존재하는 20세 이하 기사들만 참가 가능한 제한 기전이다. [4] 토우야 명인 연구회에서 쿠라타의 젊은사자전 우승 경력이 언급되었고, 히카루가 원생 입문 면접을 볼 때 담당을 맡은 시노다 원생 사범이 히카루에 대해서 "쿠라타가 연상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구나."라며 감탄하기도 했다. 또 작중에서 주간바둑의 기자들이 국제대회에서 일본 기사들의 부진한 성적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쿠라타가 한일전에서 맹활약한 사실과 함께 쿠라타를 뒤잇는 젊은 인재들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5] 히카루와 토우야 명인의 신초단 시리즈가 갓 끝났을 무렵. [6] 그뿐만 아니라 값이 싼 가문비나무 바둑판을 최고급 비자나무 바둑판이라고 속이기도 했다. [7] 쿠라타의 언급에 따르면 고키소 七단이 주식에 실패해 막대한 손해를 봤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데, 아마도 여기서 쌓인 스트레스를 아무에게나 푼 것으로 보인다. 지도기를 받는 아마추어들의 실력을 감안해 적절히 상대해주고 복기 때 친절히 알려줘야 하는게 프로 기사로서 당연한 행동인 걸 생각하면 매우 잘못된 부분. [8] 이때 사이는 "히카루에게는 힘든 상대겠지만, 나는 (역전이) 가능하다."며 큰소리치기도 했다. [9] 여담으로 훗날 고키소 七단은 사이가 성불한 후 각성한 히카루와 공식전에서 대결했지만, 사이에 이어 히카루에게도 무참히 패했다. [10] 다만 고키소 七단이 형편없는 바둑을 뒀다며 바둑돌을 황급히 거둬버린 바람에 대국 내용을 보지는 못했다. [11] 히카루가 갓 입단한 프로라는건 히카루에게 직접 들어서 쿠라타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 때만 해도 히카루의 실력을 몰랐기 때문에 그 이상의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12] 토우야 명인과 오가타 세이지의 십단전 제5국 다음날. 참고로 그 전주(前週)에는 히카루의 주선으로 토우야 명인과 사이가 인터넷에서 진검승부를 벌였다. [13] 본래 히카루는 쿠라타를 이상한 아저씨 정도로만 여겼지만, 후에 와야 요시타카를 통해 각종 기전에서 맹활약 중인 엄청난 실력자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쿠라타를 상대로 자신이 어디까지 둘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는 마음을 먹은 것. [14] 북두배 일본 대표로 선발된 신도우 히카루, 토우야 아키라, 야시로 키요하루가 아키라의 집에 모여 북두배를 대비해 연습 대국을 할 때 찾아와서 지도해 주기도 했다. [15] 작중 삼성화재배에 출전한 쿠라타가 안태선에게 패배하고 일본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화풀이 폭식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 장면을 본 한 일본 기자가 "국제 기전도 결국 한국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실제로 히카루의 바둑이 한창 연재되던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은 이창호를 앞세운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반면 일본 바둑은 이 시기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변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6] 라멘 두 그릇을 해치우는 수준이다. 입맛도 까다로운지 본인이 먹을 초밥을 3인분을 시키는데 특은 싫다며 일반으로 시켰다. [17] 중학생 시절 경마를 할 때도 단순히 확률이 아닌 자신의 감에 걸어본 덕분에 영어 선생이 큰 돈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자신의 바둑에서도 최후의 결정타는 승부감이라 생각하고 돌을 두기도 한다. [18] 작중에서 팬들의 싸인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고, 농담 따먹기까지 해주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히카루와 일색대국을 둘 때도 주변 관중들의 말을 받아주는 등 팬서비스가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