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0 19:41:02
라다크어 ཀར་གིལ
힌디어 कार्गील
우르두어 کارگل
영어 Kargil
인도 북부
라다크 지방의 도시. 라다크에서
레에 이은 제2의 도시이자
카슈미르 분쟁의 한복판에 자리한 지역이다. 와카 강과 합류하는 수루 강변에 위치하며,
인더스 강과의 합류지와도 가깝다. 지명은 중심 성채란 뜻으로, 현대 카슈미르 분쟁의 핵심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는 약 1만 6천명이다. 주민들의 종교 분포는 이슬람 77.5%, 힌두교 19.5%, 불교 및 시크교 2% 수준으로 무슬림이 다수이다. 따라서 파키스탄의 최우선 점령 목적지이나, 1971년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으로 인도는 더욱 북쪽으로 국경을 확장하여 카르길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16세기 무렵부터 소드 협곡에는 2개의 성채가 있었는데, 1834년 시크계 도그라 왕국이 점령할 시에 파괴되었다. 이후 조르와르 싱이 현재의 위치에 새 성채를 세우고, 카르다르 (지방관)를 배치하여 도시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1838년, 주민들이 봉기하여 카르다르를 죽이고 자립했으나 1840년 길기트 원정에 나선 도그라 군에게 진압되었다. 1842년
도그라-티베트 전쟁 후에는 도그라 재상 와지르 라크파트가 현지 라자들을 체포하고 카르길에 수비대를 배치했다. 영국 장교 알렉산더 커닝햄은 카르길 성채가 둘레 160m의 사각 형태로, 수루 강과 와카 강의 합류 지점에 있다고 기록하였다. 19세기 말엽 도그라 왕가의 잠무 카슈미르 번왕국 시절에는 카르길은 레,
스카르두와 함께 라다크 와자라트를 구성했고 그 치소는 매해 세 도시들을 오갔다. 1947-48년 1차 카슈미르 전쟁 후 라다크 와자라트 중 스카르두 테실은 파키스탄, 카르길과 레 테실은 인도령으로 남았다. 전자는 발티스탄, 후자는 라다크 주로 편성되었다. 1971년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 후 심라 협정으로 양측의 국경이 확정되었다. 1999년 파키스탄이 침공하며 카르길 전쟁이 발발했으나, 양측 도합 1천여 전사자만을 남긴 채 미국의 개입으로 현상 유지의 휴전이 이루어져 현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