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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19년 6월 21일~ 1950년 7월 6일[1]한국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군인. 6.25 전쟁 중 전사.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 추서.
2. 생애
1919년 태어났으며 본적은 경기도 개성시이다.[2] 이명 최고균. 1938년 형 최동균[3]과 함께 낙양으로 건너갔다. 1940년 10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입대하였고,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 제4단 한청반을 수료하였다.이후 박영섭, 박재화[4] 등과 중국중앙군관학교 제7분교에 입교하였고, 졸업 후 제2지대 제3구대 제3분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OSS 훈련에 참여, 정보·파괴반 훈련을 받았으며, 국내 진공 작전 본부요원으로 대기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귀국 후 박영진, 장철 등과 육군사관학교 7기 특별반을 졸업[5]하여 수도사단에 복무 중 6.25 전쟁 초반에 전사하였다.[6] 사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안장되었다.
3. 참고자료
독립유공자 공훈록독립운동사 제6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1948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는 1951년 사망으로 기록되었다. 1948년 육사 7기로 임관하였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정보 검색에는 1950년 7월 6일 전사한 것으로 되어있어 전사자 정보 검색의 내용을 기준으로 생몰년도를 기록한다.
[2]
한형석 평전에 따르면 형 최동균이
부산부 출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본적을 개성시라 하나, 본적은 조상이나 아버지의 출신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본적과 태어난 곳이 다를 수 있다.
[3]
1909 ~ 1978. 광복군 활동 시 한형석과 연극단을 조직해 반일 사상을 고취하는 연극을 공연하였다.
[4]
광복군 제2지대 출신. 6.25 전쟁 발발 시
제1보병사단 13연대 중대장으로 참전 중 전사.
[5]
광복군 경력을 반영했음에도 소위로 임관 하였다. 7기 특별반 중
이주일,
윤태일만 대위로 임관하였고 나머지는 소위부터 시작했다. 다만 경력을 인정받아 진급은 빠른 편이었다. 최철의 경우 6.25 개전 당시 계급은 소령이었다.
[6]
전사 장소가 정확하지 않으나 시기 상
한강 방어선 전투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