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최경하(崔景河) |
본관 | 강릉 최씨 |
생몰 | 1894년 7월 24일 ~ 1989년 1월 26일 |
출생지 | 함경남도 문천군 도초면 주교리[1]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최경하는 1894년 7월 24일 함경남도 문천군 도초면 주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당시 서울 종로에 거주하면서 경성의학전문학교서 학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었을 때, 그는 학우 4명과 함께 시내 각 전문학교 학생대표들과 함께 태극기와 격문 등을 제작하여 이날 모인 군중들에게 배부하여 시위행진을 벌였다. 그러다가 3월 5일 일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7월형을 언도받았고, 다음 해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89년 1월 26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최경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