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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13:18:52

체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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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ェッカーズ(THE CHECKERS)
파일:체커.jpg
왼쪽부터
후지이 나오유키, 츠루쿠 마사하루, 오오토이 류지, 후지이 후미야, 토쿠나가 요시야, 타카모쿠 요시히코, 타케우치 토오루
1. 개요2. 역사
2.1. 예상 외로 뜨는 따끈한 신인, 체커스2.2. 일본의 비틀즈, 체커스2.3. 해산 이유
3. 체커스의 구성원4. 활동 이력5. 음반 목록
5.1. 싱글 디스코그래피5.2. 앨범 디스코그래피
6. 90년대 한국 가요와의 연관성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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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1992년까지 활동한 일본의 남성 7인조 락 보이밴드 후쿠오카 현 구루메 시에서 결성되었다.

일본에서 신인 시절부터 인기가 장난 아니여서 일본의 비틀즈로 불리기도 한다.[1]

데뷔 당시 캐치프레이즈는 '지루함 퇴치'(退屈退治).

2. 역사

2.1. 예상 외로 뜨는 따끈한 신인, 체커스

1983년에 발매한 첫 싱글 '까칠까칠한 마음의 자장가(ギザギザハートの子守唄)'는 발매 당시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다.[2] 하지만 1984년 1월에 발매한 '눈물의 리퀘스트(涙のリクエスト)'[3]가 무섭게 인기몰이를 하며 주간 오리콘 차트 2위, 동년 연간 오리콘 차트에서는 4위, TBS 더 베스트 텐에서는 무려 7주 연속 1위[4]에 연간 랭킹 2위를 기록했다.[5] 그러자 데뷔 싱글이 주간 오리콘 차트 8위, 연간 오리콘 차트 20위, 더 베스트 텐에서는 5위를 기록하는 등 역주행을 시작했다.
토시카즈, 큰일이야. 진짜 멋진 그룹이 나왔어!

당시 그들의 헤어스타일과 체크 패션을 모두가 흉내 냈다. 체커스는 사회 현상으로 불릴 정도였고 패션 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머리모양과 옷차림이 그대로 도쿄 거리에 펼쳐졌으며 팬들이 너무 몰려들어 신칸센 승차를 거부당할 정도였다고 한다.

2.2. 일본의 비틀즈, 체커스

순식간에 전세역전한 체커스는 이를 기회로 삼아 더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1984년 5월에 발매한 '슬퍼서 질투'(哀しくてジェラシー)는 주간 오리콘 차트에서 첫 주간 1위에 총 66.2만 장이 팔렸고, 동년 9월에 발매한 '별빛의 스테이지(星屑のステージ)'는 60.4만 장, 11월에 발매한 '줄리아에게 상심(ジュリアに傷心[6][7])'은 역대 최다 판매량인 70.3만 장을 기록하고 더 베스트 텐 통산 8주 1위를 기록했다. 더 베스트 텐의 경우, 1984년도에 22주[8], 1985년도에 16주[9] 1위 기록을 세웠고, 계속해서 오리콘 주간 차트 1위의 기록을 세우는 등 일본내에서 비틀즈에 맞먹는 인기를 자랑했다.

일본 남자 아이돌 시장의 절대 강자인 쟈니스 사무소가 긴장했을 정도였고, 실제로 1984년과 1985년에는 쟈니스 아이돌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제35회 NHK 홍백가합전 첫 출연 이후 해산까지 9년 연속으로 홍백에 출전했다.

2.3. 해산 이유

1986년 하반기부터 작곡가의 곡이 아닌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그룹의 노선에 변화가 생겼다. 그룹이 새롭게 자리잡고 멤버들이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아이돌에서 완전히 성숙한 밴드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물론 인기는 전성기시절 만큼 폭발적이지는 않았다. 1991년 연말부터 시작된 레코딩 중에 후미야는 체커즈를 그만두고 싶다고 멤버들에게 의사를 밝혔고, 멤버들과 프로덕션의 논의 끝에 1992년 12월 31일, 홍백가합전을 끝으로 해산하게 된다.

해산 이후 10년만인 2003년 타카모쿠 요시히코가 쓴 동명의 폭로책이 발간되었는데 후지이 후미야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데뷔 후 멤버들이 자작곡을 쓰기 전까지 곡을 제공해온 세리자와 히로아키도 '후미야가 돈을 위해 오리지널 곡을 썼다'며 후미야를 비난했다.

이런 상황 속 2004년 8월 17일 토쿠나가 요시야가 설암으로 사망하는데 임종을 지킨 후지이 형제와 타케우치, 오오토이, WILD-G의 쿠마 토미타로가 주축이 되어 '토쿠나가 요시야를 보내는 모임'을 열었다. 타카모쿠와 츠루쿠는 토쿠나가와 교류가 끊겨 참석만 허락됐다. 해산 당시 타카모쿠와 츠루쿠는 기존 소속사에 남은 멤버였고 나머지 다섯명은 나간 멤버였기 때문에 해산을 계기로 사이가 틀어졌고, 팬덤도 2인과 5인으로 완전히 갈라졌었다. 두 사람은 전 멤버가 발기인이 되지 못한데 대해 항의했고, 특히 타카모쿠는 후미야가 "엉터리뿐인 내용이니 읽지 않는 게 좋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읽지도 않았으면서 엉터리라고 말하다니 뭐냐?"고 반발해 소송도 검토하겠다고 격노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다만 당시 타카모쿠와 같은 편에 섰던 츠루쿠가 2021년 방송에 출연해서 직접 밝히기를, 해산의 이유는 멤버간 불화가 절대 아니었으며 후미야와 타카모쿠의 사이도 그룹 시절 본인이 보기에는 무척 좋았다고 한다. 오히려 두 사람은 그룹 내 특히 친한 사이였고, 적어도 해산 무대 직전까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고 약 30년만에 그 시절을 회고했다.

그러나 2003년 타카모쿠의 자서전에 의하면, 후미야가 체커스를 그만두고 싶다고 밝힌 뒤부터 타카모쿠는 심적으로 후미야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미묘하고 기묘한 상태에서 1992년 투어 첫날을 맞이하기 진적 사건이 벌어졌다. 미팅 중 후미야가 단점을 지적하며 기획한 것들을 다시 고치려고 하자 타카모쿠는 "이미 다 정해놓은 걸 지금 고칠 순 없다, 그러면 여기 있는 스태프들 모두가 지금부터 밤새도록 수정해야 되는 거야, 지금까지 몇 번이나 너의 제멋대로의 행동을 들어줬지만, 이미 해산이라는 최대의 제멋대로를 들어줬으니까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겠어, 네가 지금 하는 짓은 먹던 라면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집어던지는 격이야"라며 후미야에게 항의했다. 그 순간 후미야의 얼굴은 완전히 분노로 끓어올랐고 미팅하던 테이블을 힘껏 걷어찼다. 순간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던 와인과 잔들이 우당탕하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깨졌고 사방이 와인 얼룩으로 흥건해졌다. "그렇게 화가 나면 당당하게 나한테 덤벼라. 상대해 줄 테니까"라며 타카모쿠가 고함을 치자 후미야는 겁을 먹었는지 곧바로 미안하다면서 사과했다고(...)

후미야는 1997년 Q&A에서 연예인이 되고 가장 화났을 때가 언제였냐는 질문에 체커스 시절 투어 첫날밤, 미팅을 했을 때 화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걷어차 와인과 유리잔이 깨졌을 때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해산 직전까지 둘 사이에 불화가 있었던 건 사실인 셈.

3. 체커스의 구성원

4. 활동 이력

히트곡 <涙のリクエスト(눈물의 리퀘스트)>
체커스의 이름을 알렸고 대히트를 친 곡이다. 이 곡의 인기에 힘입어 전년에 발매 한 데뷔 싱글 '까칠까칠 하트의 자장가'까지 덩달아 역주행 했다. 5월에 출시한 3rd 싱글 '슬퍼서 질투'와 함께 3곡이 오리콘 차트와 음악 순위 프로그램 더 베스트 텐에서 동시에 랭크인 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기 절정 시기의 체커스 <ジュリアに傷心(줄리아에게 상심)>
이 당시 인기의 상징 브로마이드의 연간 매출 실적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1986년 자작곡과 컨셉 변화의 시도 <NANA>
1986년 'NANA' 이후부터는 거의 모든 곡이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이루어졌다. 참고로 뮤직 스테이션의 첫 방송(1986.10.24) 첫 무대가 체커스의 'NANA'이다.

===# 홍백가합전 출전 경력 #===
파일:NHK 홍백가합전 로고.png
연도 출장 횟수 곡명 출연 순서 상대 비고
1984년 涙のリクエスト
눈물의 리퀘스트
10/21 코이즈미 쿄코
1985년 2 ジュリアに傷心
줄리아에게 상심
04/20 코이즈미 쿄코(2)
1986년 3 Song for U.S.A. 15/20 스이젠지 키요코 레코드 대상 수상식으로 처음에는 등장하지 않음
1987년 4 I Love you, SAYONARA 04/20 나카모리 아키나
1988년 5 素直にI'm Sorry
고분고분히 I'm Sorry
05/21 코이즈미 쿄코
1989년 6 Friends and Dream 05/20 오기노메 요코
1990년 7 夜明けのブレス
새벽의 호흡
4/29 쿠도 시즈카
1991년 8 ミセス・マーメイド
미세스 머메이드
09/28 나가이 마리코
1992년 9 페어월 메들리
까칠까칠 마음의 자장가 - 눈물의 리퀘스트 - 별빛의 스테이지 - I Love you, SAYONARA - Present for You
21/28 쿠도 시즈카(2) '92년 홍백전을 끝으로 해산

5. 음반 목록

5.1. 싱글 디스코그래피

<rowcolor=white>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1983.9.21 <colbgcolor=#e1f5f7> ギザギザハートの子守唄 (까칠까칠 마음의 자장가) 8위 396.000장
1984.1.21 涙のリクエスト (눈물의 리퀘스트) 2위 672.000장
1984.5.1 哀しくてジェラシー (슬퍼서 질투) 1위 662.000장
1984.8.23 星屑のステージ (별들의 스테이지) 1위 600,400장
1984.11.21 ジュリアに傷心 (줄리아에게 상심)[12] 1위 703,000장[13]
1985.3.21 あの娘とスキャンダル (그녀와 스캔들) 1위 516,000장
1985.7.5 俺たちのロカビリーナイト (우리들의 로카빌리 나이트) 1위 447,000장
1985.9.21 HEART OF RAINBOW 〜愛の虹を渡って〜 / ブルー・パシフィック
(HEART OF RAINBOW 〜사랑의 무지개를 건너〜 / 블루 퍼시픽)
1위 295,000장
1985.11.1 神様ヘルプ! (하느님 헬프!) 1위 352,000장
1986.2.21 OH!! POPSTAR 2위 354,000장
1986.6.5 Song for U.S.A 1위 326,000장
1986.10.15 NANA[14] 2위 243,000장
1987.3.5 I Love you,SAYONARA 2위 258,000장
1987.7.8 WANDERER[15] 1위 205,000장
1987.11.6 Blue Rain 2위 149,000장
1988.3.21 ONE NIGHT GIGOLO 3위 154,000장
1988.6.29 Jim & Janeの伝説 (Jim & Jane의 전설)[16] 4위 144,000장
1988.10.21 素直にI’m Sorry (솔직히I’m Sorry) 2위 193,000장
1989.3.21 Room 3위 221,000장
1989.7.5 Cherie 5위 150,000장
1989.12.6 Friends and Dream 2위 166,000장
1990.3.21 運命 (SADAME) (운명 (SADAME)) 2위 135,000장
1990.6.21 夜明けのブレス (새벽의 호흡) 2위 285,000장
1990.11.21 さよならをもう一度 (이별을 다시 한번) 7위 143,000장
1991.3.21 Love '91 3위 151,000장
1991.9.4 ミセス マーメイド (미세스 머메이드) 4위 211,000장
1991.12.4 ふれてごらん 〜please touch your heart〜
(만져봐 〜please touch your heart〜)
5위 141,000장
1992.3.21 今夜の涙は最高 (오늘밤의 눈물은 최고) 5위 138,000장
1992.5.21 Blue Moon Stone 7위 294,000장
1992.11.20 Present for You 4위 360,000장

5.2. 앨범 디스코그래피

<rowcolor=white>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1984.7.21 <colbgcolor=#e1f5f7> 絶対チェッカーズ!! (절대 체커즈!!)[17] 1위 838,000장
1984.12.5 もっと!チェッカーズ (좀더! 체커즈) 1위 741,000장
1985.8.21 毎日!!チェッカーズ (매일!! 체커즈) 1위 579,000장
1986.3.30 FLOWER 1위 439,000장
1987.5.2 GO 1위 263,000장
1988.7.21 SCREW 4위 169,000장
1989.7.19 Seven Heaven 1위 263,000장
1990.8.8 OOPS! 1위 205,000장
1991.6.21 I HAVE A DREAM 2위 207,000장
1992.6.19 BLUE MOON STONE 2위 250,000장

6. 90년대 한국 가요와의 연관성

김부용의 원 히트 원더가 될뻔한 풍요속의 빈곤이 본 밴드의 노래 Jim&Jane의 전설(Jim&Janeの伝説)을 표절했다고 한다. 이후 줄리아에게 상심(ジュリアに傷心)이라는 노래는 컨츄리꼬꼬 Oh, My Julia라는 제목으로 정식 번안하기도 했다.


[1] 이게 어느 정도 였냐면 오리콘 1위 여러번 찍은 건 기본에 체커스 멤버들을 주연으로 한 영화도 몆 편 나왔을 뿐더러 아이돌 최초로 도쿄돔 공연까지 했을 정도다. 1992년 해산할 때까지 꾸준한 인기를 얻었고 해산 후 리더였던 후지이 후미야는 솔로 데뷔해서 여러 히트곡들을(싱글곡들 중 'TRUE LOVE'는 더블 밀리언이다.) 냈다. 그리고 체커스가 워낙 잘나가서인지 일본 굴지의 남자아이돌 기획사인 쟈니스는 위기 의식까지 느꼈었고 체커스 해산 후 쟈니스는 타 소속사 남자 아이돌 그룹이 뮤직 스테이션 등 음악 프로에 출연하는 걸 견제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 훗날 진나이 토모노리의 원맨쇼 개그에서 등장하게 된다. [3] 이때 작가진이 나카모리 아키나 少女A의 작가진이다!! [4] 당시 더 베스트 텐이 가진 파급력은 웬만한 음악 프로그램 이상이었기 때문에 베스트 텐 1위는 곧 정상에 올랐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5] 더 베스트 텐 연간 랭킹은 빌보드처럼 순위에 진입한 모든 곡의 통산 득점을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히트한 노래보다 엔카처럼 오랜 기간 순위권에 있는 곡들에게 유리했는데, 연간 2위라는 건 그만큼 오랜 시간 사랑 받았다는 의미. [6] 여기서 傷心은 영어 Heartbreak로 읽는다. [7] 이 곡을 컨츄리꼬꼬가 개사해 Oh, My Julia로 발매했다. [8] 3월 5주~5월 2주(7주 연속), 5월 5주~6월 4주(5주 연속), 9월 3주~11월 1주(7주 연속), 12월 1주, 12월 3주~4주(2주 연속). [9] 1월 2주~2월 1주(5주 연속), 4월 3주~5월 4주(6주 연속), 7월 4주~8월 3주(4주 연속), 11월 4주. [10] 지금은 후미야 부분만 가타카나로 바꿔 활동중이다. [11] 한국에서는 성수전대 긴가맨의 아오야마 하루히코 역으로 익숙하다. [12] 1985년 연간 오리콘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는 컨츄리 꼬꼬Oh, My Julia로 알려진 곡이다. [13] 싱글 커리어 최고 판매량 [14] '젖어줘', '하자' 등의 가사가 성행위를 연상시킨다고 NHK에서 방송 금지가 되었다. [15] 이 곡의 작곡가이자 멤버인 츠루쿠 마사하루는 이 곡이 1위를 하지 않으면 펀치 파마를 하겠다고 콘서트 중에 선언했다. 다행히 펀치 파마를 면하였다. [16] 김부용이 표절한 풍요속의 빈곤의 원곡이다. [17] 오리콘 LP 차트(1989년 폐지)에서 주간 최다 판매량 기록을 수립 (1984년 7월 30일자) 이 기록은 오리콘 LP 차트의 폐지까지 깨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