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6-06 10:55:23

청주 운천동 신라사적비

파일:청주 운천동 신라사적비.jpg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

1. 개요

淸州 雲泉洞 新羅事蹟碑. 신라 신문왕 6년인 686년에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지역에 있던 어느 사찰에서 제작한 사적비.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83년 11월 30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1982년 3월에 청주시 운천동의 속칭 산직말이라는 곳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비석으로, 당시 주민들이 공동 우물에서 빨래를 올려놓고 방망이로 때리거나 문질러 씻을 때 사용하던 중이었는데 글씨를 알아본 주민의 신고로 충북대학교와 충청북도가 처음 확인하였다. 이 비석은 한반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적비(寺蹟碑)로, 빨랫돌로 발견되기 이전부터 도살용 깔판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도끼자국 등에 의해 패인 곳이 많다.

비석에 ‘수공이년세차병술(壽拱二年歲次丙戌)’이라는 구절이 있어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수공(垂拱) 2년인 신문왕(神文王) 6년, 즉 68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비문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신문왕 5년(685) 신라 9주 5소경의 하나인 서원소경(西原小京)이 설치된 이후의 사정을 대변하는 것으로, 불법(佛法)을 찬양하고, 당시 왕이었던 신문왕의 덕과 전쟁의 참화가 끝나고 삼국 통일된 것에 대해 칭송하고, 영토의 확장과 국태안민(國泰安民)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통설과는 달리 사적비가 9~10세기경에 건립된 것이란 주장도 있다. #

이 불교 비석의 내용에 유교 불교의 양측의 교리가 혼합되어 있어 신라 중대 한국의 종교가 불교를 중심으로 유교를 포용하는 상황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다만 이 사적비를 제작한 청주 운천동 사찰의 정확한 이름은 확인할 수 없으며, 현재는 터만 황폐하게 남아 있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에 청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신라의 사적비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적비라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1983년 11월 30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으며, 같은 절터에서 발견된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이 대한민국 보물 제1167호로 지정된 상태다.

3. 외부 링크

4.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4호

사적비란 어떠한 사건에 관련된 사실이나 자취를 기록한 것으로, 이 비는 청주지방에 있던 어느 사찰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92㎝, 너비 91㎝로, 네모난 형태이다. 1982년 발견되기까지 산직마을의 공동우물터에서 빨래돌로 사용되었는데, 그 탓에 글자가 많이 닳아 있다. 비문은 북조풍의 해서체로 새겼으며, 비의 크기에 비해 글자가 크다. 비문의 내용은 알아보기 어려운데, 대체로 불법을 찬양하고 임금의 덕을 칭송하며 삼국통일의 위업을 기리는 호국불교의 내용을 담으면서, 절의 창건에 관련된 내용을 많이 적었다.

비에 ‘수공 2년’의 중국 연호가 있어 통일신라시대 신문왕 6년(686)에 이 비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당시 청주지역이 행정, 군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이였음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