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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42:55

천홍태

파일:천홍태.jpg
성명 천홍태(千洪泰)
이명 천세홍(千世鴻), 천영래(千永來)
생몰 1903년 12월 6일 ~ 1927년 6월 18일
출생지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모도리
사망지 목포형무소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천홍태는 1903년 12월 6일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모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3년 9월 모도리의 대모도 서부락에서 1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배달청년회(倍達靑年會)를 조직하여 교양부 위원이 되었다. 청년회의 목적은 마을의 개량서당을 후원하는 것이었고, 그는 서당의 교사를 맡았다. 그러나 회원들 사이에서 민족독립사상이 점차 고취되자, 그들은 회의를 열 때마다 혁명가를 합창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서당 생도들에게 애국가를 가르치며 "조선독립만세"를 삼창하기도 했다. 또한 회원들은 1925년 1월의 월례회의에서 "우리는 절대 일본인 및 친일인에게 동정하지 말고 그들과의 교제를 단절할 것"을 결의했으며, 그해 4월의 월례회의에서는 “경찰당국 및 일본인을 파괴할 것”과 “우리는 절대로 대한(大韓)을 위해 활동할 것”을 결의했다.

이 일이 경찰에 발각되면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된 그는 1926년 10월 4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927년 6월 18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천홍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