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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8 15:19:21

찬다를르 할릴 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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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 대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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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재상이 되기까지3. 무라드 2세 시대4. 메메드 2세 시대5. 최후6. 사후

1. 개요

? ~ 1453.07.10.

Çandarlı Halil Paşa. 1439년부터 1453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재상을 지낸 인물. 할아버지가 되는 찬다를르 카라 할릴 하이렛딘 파샤에 대비하여 소(小) 찬다를르 할릴 파샤라고도 불린다. 오스만의 역대 재상들 가운데 처음으로 처형된 인물이기도 하다.

2. 재상이 되기까지

당대의 명문 귀족 집안이었던 찬다를르 가문에서 태어났다. 찬다를르 가문은 할릴 파샤의 할아버지인 찬다를르 카라 할릴 하이렛딘 파샤(재임: 1364~1387)를 시작으로 삼촌인 찬다를르 알리 파샤(1387~1406), 아버지인 대(大) 찬다를르 이브라힘 파샤 (1421~1429) 등의 재상을 이미 배출했으며, 수십 년 동안 재상을 배출하며 막대한 부를 쌓아[1] 오스만 황가보다도 부유하리라는 추측도 있을 정도였다.

명문 귀족 출신임에도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1436년에 대법원장 겸 법무장관에 해당하는 카자스케르(Kazasker)에 임명된 것을 추적할 수 있으며, 무라드 2세 시대였던 1439년에 재상에 올랐다.

3. 무라드 2세 시대

무라드 2세 시대에 가장 두드러지는 행적은 1444년에 무라드 2세가 퇴위하고 당시에 아직 13세 소년이었던 메메드 2세가 즉위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당시 무라드는 신성 로마 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알바니아, 헝가리 왕국, 세르비아, 카라만 공국 등의 침공을 받아 이미 정복했던 세르비아 공국을 재건하고 헝가리와 폴란드 등에 영토를 대거 할양하며 발칸 반도에서 향후 10년간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등 이때까지의 오스만 역사상 가장 불리한 조약을 체결해야 했다. 그리고 무라드는 이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묻는다는 이유로 퇴위하고는 마니사로 은퇴했으며, 할릴 파샤는 사실상의 통치자로서 어린 메메드를 보좌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폴란드와 헝가리 등은 술탄이 어린애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흘려듣지 않았으며, 교황인 유게니우스 4세도 이교도와 맺은 약속은 깨뜨려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오스만을 공격할 것을 부추겼다. 결국 헝가리-폴란드 연합군은 오스만 국경을 넘었으며, 오스만의 군부와 관료들은 무라드가 복위하여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메메드는 무라드에게 군대를 지휘해 달라고 요청해야 했으며[2], 무라드 2세는 바르나 전투에서 연합군을 격파하고 복위했다.

4. 메메드 2세 시대

1451년, 무라드 2세가 승하하고 마니사 총독으로 내려가 있던 메메드 2세가 복위했다. 할릴 파샤는 재상으로서 메메드의 복위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여했으며, 메메드는 그 보상으로 할릴 파샤를 재상으로 유임시켰다.

하지만 선제 무라드의 총애를 받았던 것과 달리, 새 황제 메메드와 할릴 파샤의 관계는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무라드 2세는 찬다를르 가문처럼 유력한 투르크계 가문들의 대표자 노릇을 하는 것에 큰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던 반면, 메메드 2세는 명실상부한 전제군주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또한 메메드는 할릴 파샤가 주도하여 무라드가 복위하게 됨에 따라 자신이 폐위되었던 것을 원한으로 기억하고 있었고, 찬다를르 가문이 오스만 황실보다도 부유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다는 것도 위협으로 느꼈다.

1453년, 오스만군은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다. 이는 전제군주로 군림하기 위해 위업을 쌓으려는 메메드의 야망과 비잔틴 제국의 영토가 사이에 끼어 있어 국토가 사실상 둘로 쪼개져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으며, 콘스탄티노플에 기독교 측의 십자군이 느닷없이 등장하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다[3]. 할릴 파샤는 처음부터 비잔틴 제국을 공격하는 일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었기에 공격이 준비될 시점에서부터 전쟁을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공방전이 벌어지는 도중에도 포위를 풀고 철수할 것을 주장했지만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잔틴 측에게서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되었다.

5. 최후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 제국의 새로운 수도가 된다. 그리고 메메드 2세는 사흘 뒤인 6월 1일에 찬다를르 할릴 파샤를 재상직에서 해임할 뿐 아니라 투옥할 것을 명령했으며, 7월 10일에 처형할 것을 명했다. 메메드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역사가들 사이에 다양한 설이 있는데, 비잔틴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심 때문이었다고도 하고 황제에게 불손하게 대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찬다를르 할릴 파샤의 시신은 이전까지의 다른 찬다를르 가문 재상들의 시신과 마찬가지로 가문의 연고지인 이즈니크에 장사지내졌으나, 영묘를 따로 짓지 못하고 지붕이 없는 야외형 관에 안치되었다.

6. 사후

할릴 파샤의 처형은 1364년에 할아버지인 찬다를르 카라 할릴 하이렛딘 파샤가 재상으로 임명된 이래 반세기 넘게 계속되었던 찬다를르 가문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비록 메메드가 처형한 것은 할릴 파샤 뿐이었고 삼족을 멸하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찬다를르 가문 자체는 이후로도 유지되었으나, 더는 중앙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지 못하고 이즈니크에 본거지를 둔 지방 유지 정도로만 남게 되었다.

또한 할릴 파샤의 처형은 투르크계 가문들이 제국을 좌지우지하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메메드 2세는 할릴 파샤의 뒤를 이어 데브시르메 징집자 출신으로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자아노스 파샤를 재상으로 임명했으며, 이후 투르크계가 재상에까지 오르는 경우는 보기 힘들어지고 세르비아나 알바니아, 그리스 등 동남부 유럽 출신들이 재상직을 차지하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또한 이로써 오스만 황제는 전제군주로 우뚝 서게 되며, 이는 예니체리들이 황제들을 밥먹듯 갈아치우던 시절에도 이론상으로는 변함없이 유지되었다가 1876년에 헌법이 제정될 때에 이르러서야 변하게 된다.

[1] 미래의 일이지만 할릴 파샤의 아들인 소(小) 찬다를르 이브라힘 파샤도 재상이 된다. 재임 기간은 1498~1499년. [2] 표면상 메메드가 요청한 것이고, 할릴 파샤 등이 주도했다. [3] 더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