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촉한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진밀 문서
, 진압복(약칭 진복)에 대한 내용은
방석복
문서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1537B, #006494 20%, #006494 80%, #01537B); color: #fbe673;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진덕왕조 | 중시 | 죽지 |
무열왕조 | 중시 | 문충 | 김문왕 | |
문무왕조 | 중시 | 문훈 | 진복 | 지경 | 예원 | 천광 | 춘장 | 천존 | |
신문왕조 | 중시 | 순지 | 대장 | 원사 | 선원 | |
효소왕조 | 중시 | 원선 | 당원 | 순원 | |
성덕왕조 | 중시 | 원훈 | 원문 | 신정 | 문량 | 위문 | 효정 | 사공 | 문림 | 선종 | 윤충 | |
효성왕조 | 중시 | 의충 | 신충 | |
경덕왕조 | 중시 | 유정 | 대정 | |
시중 | 대정* | 조량 | 김기 | 염상 | 김옹 | 양상 | ||
혜공왕조 | 시중 | 김은거 | 정문 | 김순 | 주원 | |
원성왕조 | 시중 | 제공 | 종기 | 준옹 | 숭빈 | 언승 | 지원 | 김삼조 | |
소성왕조 | 시중 | 충분 | |
애장왕조 | 시중 | 수승 | 김헌창 | |
현덕왕조 | 시중 | 양종 | 원흥 | 장여 | 김충공 | 영공 | |
흥덕왕조 | 시중 | 김우징 | 윤분 | 김명 | |
희강왕조 | 시중 | 이홍 | |
민애왕조 | 시중 | 헌숭 | |
문성왕조 | 시중 | 의종 | 양순 | 김여 | 위흔 | 김계명 | |
경문왕조 | 시중 | 위진 | 인흥 | |
헌강왕조 | 시중 | 예겸 | 민공 | |
정강왕조 | 시중 | 준흥 | |
효공왕조 | 시중 | 계강 | 효종 | |
경명왕조 | 시중 | 유렴 | 언옹 | |
* 경덕왕 6년 중시를 시중으로 고쳐 부름. |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1537B, #006494 20%, #006494 80%, #01537B); color: #fbe673;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철부 | 김구해 | 김거칠부 | 김세종 | |
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
수을부 | 을제 | 수품 | 비담 | |
제9대 | 제10대 | 제11대 | 제12대 | |
알천 | 금강 | 김유신 | 김군관 |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제16대 | |
진복 | 김문영 | 김개원 | 인품 |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
배부 | 김사공 | 김정종 | 김사인 | |
제21대 | 제22대 | 제23대 | 제24대 | |
신충 | 만종 | 신유 | 김양상 | |
제25대 | 제26대 | 제27대 | 제28대 | |
김경신 | 충렴 | 세강 | 김언승 | |
제29대 | 제30대 | 제31대 | 제32대 | |
김숭빈 | 김수종 | 김충공 | 김균정 | |
제33대 | 제34대 | 제35대 | 제36대 | |
김명 | 김귀 | 장보고 | 김예징 | |
제37대 | 제38대 | 제39대 | 제40대 | |
김의정 | 김안 | 김정 | 위진 | |
제41대 | 제42대 | 제43대 | 제44대 | |
김위홍 | 준흥 | 김성 | 계강 | |
제45대 | 제46대 | |||
박위응 | 김성 | |||
문헌상 기록이 확인된 인물 | ||||
김춘추, 김순정, 김옹, 김주원 | ||||
}}}}}}}}} |
신라의 상대등(上大等) |
||||
김군관 | ← | 진복 | → | 김문영 |
1. 개요
眞服 혹은 眞福신라 중대의 군인, 귀족.
2. 상세
기록상 첫 등장은 661년 제2차 고구려-당 전쟁 당시, 당나라는 신라에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진복은 북진하다가 대전광역시 인근에서 백제부흥운동군과 싸워 이겨 상을 받았고, 이후 소정방에게 군량을 지원하는 작전에도 참여했다. 668년 제3차 평양성 전투에도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이후 신문왕 치세에 김군관이 김흠돌의 난과 엮여 사실상 강등당한 뒤 그의 후임으로 상대등에 취임했다.진복이 665년 중시에 취임한 직후 신문왕이 태자로 책봉받았는데, 경덕왕대 기록을 참고할 때 태자 책봉이 중시의 주요 업적임을 알 수 있으므로 진복은 신문왕의 뜻을 따르는 신문왕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