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책 휘하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진단(후한) 문서 참고하십시오.
秦旦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삼국시대의 손오의 문관이다.2. 행적
233년 중사의 직위로 손권이 동연의 공손연을 회유하기 위해 보낸 사신 중 한 명으로 출발했다가 현도군에 유폐되어 민가에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했다고 하며, 이때 진단이 같이 유폐된 황강, 두덕, 장군 등과 논의해우리는 멀리 와서 국명을 욕되게 하고 이곳에 버려졌으니 이미 죽은 것과 다를 바 있겠소? 이제 이
군을 보니 세력이 심히 미약하오. 만약 우리가 어느 날 마음을 합해 성곽을 불태우고 그 장리들을 죽여 나라를 위해 설욕한다면 그 연후에 비록 죽음을 당하더라도 족히 여한이 없을 것이오. 구차하게 살아남아 오래도록 죄수가 되는 것과 비교해 어떠하오?
라며 거사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장송[1]이라는 자에게 이 사실이 알려져
왕찬이 군사를 이끌고 오자 모두 도망치다가 중간에 장군이 악성 종양 때문에 가지 못하게 되어
두덕이 홀로 남아 장군을 지키자 진단은 황강과 함께 산골짜기 6, 7백 리를 지나
고구려에 도착한다. 여기서 진단은 원래 고구려에게 예물을 가져오려고 했으나 공손연에게 모두 뺏겼다고 말하자
동천왕이 매우 기뻐하며 장군, 두덕 등을 구하게 한 다음에 이들을
오나라로 돌려보낸다.돌아와 손권을 만난 진단 등은 모두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고 하며, 손권이 이들을 의롭게 여겨 모두 교위에 봉했다고 한다. 몇 년후에 손권은 진단 사신단을 구조한 고구려에 호위 등 사신을 보내어 대위동맹을 구축하려 하였지만 다시 고구려에 보낸 손권의 사절단은 모두 살해된다.
3. 창작물에서의 진단
삼국전투기에서는 검은 머리의 인물로 등장. 기반 패러디는 불명.비류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공손연에게 선물을 보내는 사신으로 파견했다가 도망쳤는데, 동천왕에게 가서 고구려에게 줄 선물을 공손연이 빼앗아갔다고[2] 알렸고 이에 동천왕이 선물은 받은 것으로 치고 답례품과 함께 칭신을 맹세하는 표문을 주었기에 그것을 받아서 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