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존 서터 주니어 John Sutter J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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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존 어거스터스 서터 주니어 John Augustus Sutter Jr. |
출생 | 1826년 10월 25일 |
신성 로마 제국 베른주 부르크도르프 | |
사망 | 1897년 9월 21일 (향년 70세) |
멕시코 게레로주 아카풀코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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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외교관 |
자녀 | 11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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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외교관, 개척자2. 생애
스위스 베른주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아버지 존 서터가 빚쟁이들을 피해 야반도주로 미국으로 건너가자 이후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으며, 1848년 남은 가족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며 스물 두살의 나이로 아버지와 재회했다.아버지 서터는 아들들에게 땅을 물려줬고 셔터 주니어는 현재의 새크라멘토 인근의 땅을 받았다. 골드 러시 당시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의 땅이 황폐화되어 파산되는 동안 새크라멘토는 전혀 피해를 받지 않았고 이를 바탕으로 땅을 개발해 '서터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원주민, 개척자들을 받아들이며 세를 늘렸다. 이후 새크라멘토라는 이름으로 변경했고 캘리포니아 주의 주도가 된다. 병에 걸려 도시 경영이 힘들어지자 기자이자 기업인인 샘 브레넌에게 새크라멘토의 전권을 매각했다. 그러나 그 막대한 돈은 아버지의 법정투쟁에 대부분을 소진해버렸다.
셔터 주니어는 다시 한번 이주를 택했다. 그는 멕시코 게레로주에 있는 아카풀코로 이주해 소규모 잡화점을 열었다. 인종을 넘나드는 친화력[1]과 본인의 상업 수완이 뛰어나 명성을 떨쳤고, 이에 미국에선 아예 아카풀코에 영사 자리를 마련해줬다.
그러나 마지막은 불운했다. 멕시코 혁명이 발발해 그의 가게를 포함한 미국인 거주지 전체가 파괴되었으며, 셔터 주니어는 혁명 후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결국 실패해 멕시코에 남았다. 1897년 사망했다.
[1]
아버지도 친화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원주민을 학대하는 거대한 가오가 있었다. 반면 서터 주니어는 그런 행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