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출생 | 1895년 5월 15일 |
경상도 상주목 장천면 신평리 (현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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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5년 4월 1일 (49세) |
중국 만주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직업 | 독립운동가 |
학력 | 유학 |
상훈 | 건국훈장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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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처음 이름은 학연(學衍), 자는 취삼(聚三), 호는 낙재(樂齋)이다.2. 생애
조태연은 1895년 5월 15일 경상도 상주목 장천면 신평리(현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에서 태어났다. 1915년 3월 서울에서 물산장려를 통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조직된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에 가입해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산직장려계 계원은 주로 교사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130여 명에 이르렀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1917년 3월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열기가 고조되면서, 그는 1919년 7월경 배승환(裵昇煥)의 권유로 만주(滿洲)의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할 목적으로 중국 봉천성 안동현에 갔다가,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가려고 했으나 도중에 병이 생겨 동년 9월 국내로 돌아왔다.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를 발기하고, 노동운동을 전개하다가 동년 9월 일경에 체포되어 5개월 고초를 치르다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