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조지 1세 드 던바 George I de Dunbar |
|
생몰년도 | 1338년 ~ 1420년 | |
출생지 | 스코틀랜드 왕국 마치 백작령 | |
사망지 | 스코틀랜드 왕국 마치 백작령 | |
아버지 | 존 드 던바 | |
어머니 | 이사벨라 랜돌프 | |
아내 | 크리스티나 새튼 | |
자녀 | 조지 2세, 엘리자베스, 가빈, 콜럼바, 패트릭, 존 데이비드, 자네트 | |
직위 | 제10대 던바 및 마치 백작 |
[clearfix]
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군과 맞서다가 아치볼드 더글러스와 분쟁을 벌인 끝에 잉글랜드로 귀순해 잉글랜드의 편에서 싸웠다. 그러다가 1409년 다시 스코틀랜드로 귀환했다.2. 생애
아버지 존 드 던바는 제8대 던바 및 마치 백작 패트릭 4세 드 던바와 뷰컨 백작 알락산더르 코민의 딸인 마조리 코민의 차남으로, 돈캐스터 및 버니사이드의 영주였다. 어머니 이사벨라 랜돌프는 초대 모레이 백작 토머스 랜돌프의 딸이었다. 1369년 제9대 던바 및 마치 백작 패트릭 5세 드 던바가 사망한 뒤 그가 그 유산을 물려받고 제10대 던바 및 마치 백작이 되었다.그의 영지는 스코틀랜드 남부 및 남동부로, 잉글랜드 국경 근처에 위치했기에,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간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356년부터 스코틀랜드 남부 땅의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있든 잉글랜드군에 맞서 크고 작은 군사 작전을 펼쳤으며, 1379년 가장 중요한 국경 요새 중 하나인 록스버러 성을 공략하고 불태웠다. 1384년 에넌데일을 탈환했으며, 1388년 오터번 전투에 참전해 승리에 일조하고 잉글랜드군 사령관 헨리 '핫스퍼' 퍼시를 사로잡았다.
1395년, 조지는 자기 딸인 엘리자베스를 스코틀랜드 국왕 로버트 3세의 장남으로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자인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결혼시키기로 하고 막대한 지참금을 지불했다. 결혼을 허용하는 교황의 명령은 1395년 8월 10일에 발표되었지만, 이들의 결혼식은 교황이 명령이 도착하기 전에 거행되었다. 교황청은 이를 문제 삼고, 1397년 3월 10일 두 사람의 관계를 약혼으로 변경하고 일정 기간 별거 후 결혼을 허락한다는 교서를 발표했다. 이후 제3대 더글러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러스가 왕실에 압력을 가하자, 로버트 3세는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의 약혼을 파기하고 아치볼드 더글러스의 딸인 마조리 더글러스와 데이비드 스튜어트를 결혼시켰다.
이에 반감을 품은 조지는 1400년 스코틀랜드에 있는 자신의 재산과 로버트 3세에 대한 충성을 포기하고 온 가족을 잉글랜드로 이주시킨 뒤 잉글랜드 국왕 헨리 4세에게 충성을 서약했다. 그해 6월 28일, 헨리 4세는 서신 특허를 통해 "스코틀랜드 국경의 조지 드 던바 백작과 그의 아내 크리스티나에게" 링컨셔에 있는 소머튼의 영주권을 부여하고 군대를 이끌게 했으며, 연간 100파운드의 금액을 지불하기로 했다. 1400년 헨리 '핫스퍼 퍼시'와 함께 스코틀랜드로 진군해 더글러스 가문의 영지인 이스트 로디언의 파플 일대를 황폐화시켰다.
1403년 여름, 퍼시 가문이 헨리 4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이에 동조하지 않고 헨리 4세에게 반란 소식을 알렸고, 1403년 7월 21일 슈루즈버리 전투에서 헨리 4세 편에 서서 헨리 '핫스퍼' 퍼시를 격파하는 데 일조했다. 그 후 런던 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해 자신이 스코틀랜드 남부에 가지고 있던 모든 영지를 더글러스 가문에 의해 상실했다고 밝히면서, 잉글랜드군이 스코틀랜드를 공략할 때 자신의 영지를 복원하고 마치 백작령에 속한 모든 거주자들을 특별히 보호해달라고 청원했다. 1403년 8월 14일, 헨리 4세는 조지에게 링컨셔의 카임과 크로프츠의 영주권, 그리고 본래 우스터 백작 토머스 퍼시의 소유였다가 헨리 4세를 적대했다가 왕실에 몰수된 런던 시 비숍스게이트에 있는 집과 동산을 평생 동안 가질 권리를 부여했다.
1408년 제4대 더글러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러스와 올버니 공작 로버트 스튜어트와 화해했고, 1409년 스코틀랜드로 귀환한 뒤 애넌데일의 영주권을 아치볼드에게 양도한다는 조건으로 마치 백작령을 돌려받았다. 1411년 잉글랜드와의 휴전 협상을 위한 스코틀랜드 위원 중 한 명으로 임했으며, 1420년경 전염병에 걸려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가족
- 크리스티나 세튼: 스미르나 십자군에 참여한 스코틀랜드 기사 앨런 드 윈툰의 딸.
- 조지 2세 드 던바(1370 ~ 1457년 이후): 제11대 던바 및 마치 백작. 1435년 스코틀랜드에서 권력 분쟁에 휘말려 모든 영지를 잃고 잉글랜드로 망명했다.
- 엘리자베스 드 던바: 로스세이 공작이자 스코틀랜드 왕위 계승자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1395년에 약혼했지만 1397년에 결혼이 무효로 처리되었다.
- 가빈 드 던바: 에어셔 컴녹의 영주.
- 콜럼바 드 던바: 모레이의 주교.
- 페트릭 드 던바: 헤딩턴셔의 비엘 영주.
- 존 드 던바: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 데이비드 드 던바: 콕번의 영주. 그의 딸인 마조리 또는 마거릿 드 던바는 제4대 크로퍼드 백작 알락산더르 린지의 부인이 되었다.
- 자네트 드 던바: 윈튼 백작 존 세튼과 초혼, 아눌데일의 영주 아담 존스턴과 재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