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주천복록장에 대한 내용은 조전(주천복록장) 문서
, 후한의 헌후에 대한 내용은
조전(헌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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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趙戩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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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숙무(叔茂)로 조기의 조카. 형주 남양군 장릉현 사람.2. 생애
학문을 좋아하고 말이 조리가 있으면서 곧고 꾀가 많았으며, 시경, 서경을 좋아하고 사람을 불쌍하게 여겨서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공부에 벽소되어 상서선부랑을 지내다가 평릉령이 되었다. 초평 연간( 190년 ~ 193년)에 상서가 되었다가 동탁이 재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면서 동탁이 죽이려고 했지만 조전은 태연했으며, 동탁이 후회해 풀어줬고 평릉령을 지내다가 왕윤이 죽자 관직을 포기하고 그의 시체를 수습해 묻어줬다.삼보의 난이 일어나면서 형주로 피난을 가서 유표가 그를 후하게 대접했고 조조가 형주를 점령하면서 그를 불러 늦게 만난 것을 한탄할 정도였으며, 212년에 승상연을 지내면서 유비가 유장을 공격할 때 조전은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지 못할 것이라 했지만 부간의 말에 따라 유비는 익주를 평정했고 종요 밑에서 장사를 지내다가 사망했다.
3. 창작물에서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조비가 진군과 함께 상국부로 들어갈 때 상국장사를 지내면서 조비에게 인사했고 조비한테서 상국(종요)께서 대왕(조조)의 부름을 받고 아침 일찍 입궁한 것을 알려주며, 임치후( 조식)도 곧 이 곳으로 오고 위풍이 종요에게 기용된 것을 알려준다.소설 삼국지 마행처우역거에서는 부호를 시켜 부호의 가족을 죽게 만든 것으로 나오며, 장합이 비관이 지휘하는 군사와 싸우다가 왕평에게 죽은 소식을 듣던 중 갑자기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