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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8 09:33:15

조자기

曹子奇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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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중기의 무신.

2. 생애

분대어사를 지내다가 1010년에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면서 제2차 여요전쟁을 일으켰고, 12월 초에 통주 전투로 고려의 야전군 전력 대부분이 증발하는 대패를 당하며, 거란이 곽주, 영주, 숙주를 함락한 후 12월 10일에 사신을 보내 항복을 권유하자 서경에서 항복하는 글을 작성해 항복하려 했다.

지채문과 최창이 군사를 이끌고 서경으로 향했지만 성문이 닫혀 있어서 최창이 부르자 조자기는 거란에서 사절을 보내 노의와 유경이 항복을 권유한 사실을 알려주고 성문을 열어줬다.

1011년 8월 16일에 이택성과 함께 전중시어사에 임명되었고, 도부서의 관원이 되었다가 동여진이 청하현, 영일현, 장기현 등을 침략하자 1012년 5월 2일에 문연, 강민첨, 이인택과 함께 주군의 군사들을 독려하고 철갑선인 과선(戈船)으로 동여진을 공격해 달아나게 했다. 1016년 4월 11일에는 시어사헌에 임명되었다.

3. 대중매체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에서는 서경의 관리들은 모두 거란에게 항복을 하려는 상황에서 홀로 거란과의 항전을 주장했으며, 감기에 걸린 척 일부러 회의의 진행을 방해해서 도망가는 군사를 잡으러 나갔다가 감기에 걸렸다면서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보고하지 못했다면서 군율에 따라 적에게 항복하는 것은 당연히 사형이라 죽였다면서 하지도 않은 일을 지어내 항복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최위를 도망간 군사에 빗대어 최위를 욕했다.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바깥으로 보내 동북면의 군사가 서경성으로 빨리 오도록 재촉하며, 이협이 원종석의 명 때문에 성문을 열지 않아 칙사라고 한 최창만 들여보냈고, 조자기가 최창을 만나 서경성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협에게 가서 원종석의 명으로 성문을 열어 동북면의 군사들을 맞이하라고 해서 성문을 열게 했다.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상관의 명령에 의심없이 묵묵이 따르다가 원종석이 거란에게 빌붙기 위해 항복하려는 것을 알자 성문을 열어 동북면의 군사가 서경성에 들어오게 하는 것으로 나온다. 자세한 것은 조자기(고려 거란 전쟁) 참조. 분대어사라는 직위를 생각하면 드라마보다는 원작 소설의 묘사가 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