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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9 19:39:24

조용필/다른 뮤지션들과의 관계



1. 개요

조용필 선배님은 그냥 꿈, Dream이죠.
윤민수

가수 조용필과 다른 뮤지션들과의 관계를 서술한 문서다. 국내 가요계에서 '가왕' 이라는 별명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위상을 가진 가수인만큼, 당연히 많은 가수들의 로망이자 존경의 대상이다.

2. 관계

2.1. 이승철

결론부터 말하면 둘이 선후배로 친하다. 조용필이 한 인터뷰에서 포스트 조용필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때 "그래도 승철이가 느낌을 좀 살리지 아마?" 라고 답했다.[1] 이승철 역시 조용필을 깍듯이 대하고 있으며, 용필이형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곤 한다.[2] 본인한테 가왕 소리하는 사람이 있으면 십중팔구 '가왕은 용필이형이구요' 라고 답할 정도. 대신 본인은 콘서트에서 '보컬의 신가신'이라고 칭하고 다니는건 함정.

2013년에는 비슷한 시기에 컴백해서 맞붙기도(?) 했는데, 이승철은 먼저 발매된 조용필의 19집 앨범 전곡을 듣고 앨범 전체를 재녹음했을 정도로 막바지 작업에 열성이었다고 한다. #


힐링캠프에서 이승철이 설명한 조용필과의 관계.

2.2. 신해철

지금은 사망한 이른바 마왕 신해철이 깍듯이 대했던 선배 중 1명이다. 사실 신해철과는 데뷔 때부터 오랜 인연이 있는데, 바로 신해철이 < 그대에게> 로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던 1988 대학가요제의 심사위원이 조용필이었다. 이와 연관된 일화로, 조용필은 오래 진행된 대회 시간 때문에 막판에는 살짝 졸고(...) 있었는데 그대에게의 인트로 부분을 듣고 번뜩 잠이 달아났다는 얘기도 있다. 조용필은 한 토크쇼에서 락커, 마왕 소리 듣던 신해철을 귀여운 후배라고 언급해서 팬들에게 웃긴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신해철이 진행하던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조용필의 노래를 종종 리믹스해서 틀곤 했는데, 신해철은 항상 조용필이 공연이 끝나고 곯아떨어져 있을 시간 때만 골라서 조용필의 노래를 틀었다. 이유는 조용필이 방송분을 듣고 혼낼까봐(...) 였다고. 그만큼 신해철이 조용필에게 가진 존경심과, 조용필이 가요계에서 가진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증거다. 두 사람은 생전 음악적인 교류를 꾸준히 이어왔는데, 함께 합동콘서트를 연 적도 있고 신해철이 조용필의 공연에 게스트로 나간 적도 있다.

2014년 10월 27일,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사망하자 조용필은 화환을 보내고 제일 먼저 빈소에 조문했다. 그가 남긴 조의는 "훌륭한 뮤지션을 잃어서 안타깝다." 였다.

2.3. 유재하

저와 유재하 군이 처음 만난 것은 키보드 연주자로 위대한 탄생에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가 작곡한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남긴 음악들은 두고 두고 우리 가슴 속에 남을 것입니다. 조용필이었습니다.
유재하 추모 앨범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의 '재하를 그리워하며'에 수록된 조용필의 육성 #
유재하는 한양대 재학 시절 학교 몰래[3] 위대한 탄생 키보디스트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다만 일정 문제로 2개월만에 밴드를 탈퇴했기 때문에 조용필과 특별한 개인적 인연이 있진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조용필에게 불후의 명곡 중 하나인 사랑하기 때문에를 작곡해줬다. 이때 유재하가 곡을 준 스토리에 대해선 각각의 설들이 있는데, 유재하 항목 참조. 어찌됐든 조용필은 <사랑하기 때문에>를 자신의 7집 앨범에 수록했다.[4] 다만 타이틀곡은 아니기도 해서 이땐 크게 히트하진 못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곡은 1987년 지금도 회자되는 레전드 앨범 유재하 1집에 수록되고 난 뒤에 비로소 빛을 보게 된다.

이렇게 유재하와도 연이 있던 조용필이었지만, 후배 유재하는 1987년 11월 1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사랑하기 때문에가 유명해지고, 조용필은 90년대까지도 자신의 콘서트에서 종종 <사랑하기 때문에>를 라이브로 부르곤 했다. 실제 90년대 조용필 Best Vol.2와 조용필 30주년 기념 음반 Part. 1에서 다시 부른 곡은 이전과 또 정서와 창법이 좀 달라졌다.

2.4. 김경호

의외라면 의외로 조용필이 아낀 후배 가수 중 하나로, 1990년대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나가수에서 밝히길, 어느 날 조용필이 연이 없던 자신을 초대해 대선배님이라 긴장하면서 식사 자리에 갔는데, 선배님이 파자마를 입고(...) 나오는 것을 직접 봤다고 한다. 조용필의 파자마 입은 모습을 본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신나게 자랑한 건 덤. 조용필도 가수 입장에서 저정도 고음이 되는 락커 후배가 한국 가요계에 나타난 것에 나름 신기함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

2003년 1월 조용필이 부인상을 당했을 때, 김경호는 장례기간 내내 빈소를 지키며 궃은 일을 전부 도맡아 이를 계기로 더 가까워졌다고 밝힌 적도 있었다. 또 김경호가 2004년 무렵 성대결절로 세간의 혹평을 받고 알콜의존증까지 앓으며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조용필이 조언과 위로를 해주며 힘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나가수 특집 당시에도 김경호가 부른 못 찾겠다 꾀꼬리를 크게 호평했으며, 조용필의 혜안대로 김경호는 해당 경연에서 1위를 차지했다.
[1] 여담으로 이승철은 전에 민경훈이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위치에 있지 않을까 하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민경훈이 그정도로 롱런하진 못했지만, 예능 택시에선 친구이자 발라드의 황제로 이미 입지를 굳힌 신승훈을 포스트 이승철로 디스지목하는 등 비슷한 류의 발언은 여기저기서 제법 하긴 했다. 하나만 맞아라? 참고로 조용필도 신승훈을 참 노래 잘해서 좋아하는 후배 가수라며 90년대 신승훈 곡으로 듀엣을 한 적도 있었다. [2] 한 인터뷰에서 제일 무서운 선배로 꼽기도 한다. 물론 조용필의 성격 자체가 무섭다는 건 아니고, 음악적인 면에서 프로페셔널하다는 뜻이다. [3] 당시 한양 음대 클래식 작곡과는 학생들이 대중음악하면 퇴학 조치한다던 무시무시한 시절이었다. [4] 다만 유재하는 조용필 버전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듣고는 본인이 생각한 곡의 정서와는 약간 맞지 않아 아쉬워했다고 한다. 실제로 조용필 버전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 물론 조용필의 보컬 실력이 유재하보다 훨씬 뛰어나기야 하지만 조용필의 창법에서 고전 트로트풍을 연상케 하는 약간의 뽕삘 때문에 유재하 버전과 비교해보면 이 곡 특유의 순수한 정서는 덜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용필 자신도 이 곡을 콕 집어 말한건 아니지만 과거의 창법에 대해 "소리 속에서 눈물을 발견해야 하는데, 예전에는 일부러 눈물을 짜내려고 했다"며, "그 시대의 정서나 유행 때문에 슬픔을 소리로 나타냈다"고 표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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