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중도정당 | ||||
(창당) | → | 제3세대당 | → | (해산) |
민주한국당 (개별 합류) |
→ |
신민주공화당 (개별 합류) |
||
→ |
평화민주당 (개별 합류) |
제3세대당 | |
공식명칭 | <colbgcolor=#fff,#1F2023>제3세대당 |
창당 | 1987년 3월 2일 |
해산 | 1988년 4월 29일 |
해산 전 대표 | 공창덕 |
당 색 |
적색 (#C84030)
|
정치적 스펙트럼 | 중도 ~ 중도좌파 |
중앙당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2길 5 (여의도동, 신태진빌딩) (해산 직전) |
[clearfix]
1. 개요
1987년 3월 2일부터 1988년 4월 29일까지 존속하였던 제3지대 정당이다.2. 역사
2.1. 창당
1987년 창당하였다.[1] 민주한국당 정책심의회 의장을 지낸 한영수가 운영하는 경제사회연구회를 중심으로 '제3세대 정치그룹'을 구성하여 진보적인 정치의식을 가진 젊은 세대를 흡수할 계획을 세우며 정치 신인을 규합하였고, 그 결과물이 제3세대당이었다.제3세대당은 1986년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을 알렸지만, 창당대회는 1987년에서야 열게되었다. 이 당시 23개의 지구당을 창당하였으며, 창당준비위원장이었던 한영수를 총재로 선출하였다. 창당대회에서는 민족자주, 자유민주, 민족통일을 담은 강령과 정강을 채택하였다.
4.13 호헌조치 발표 이후 한영수와 23개의 지구당 위원장은 '4.13 호헌 조치 철폐'와 '민주개헌 관철'을 촉구하며 96시간 시한부 단식농성을 벌였다. 또한, 6월 민주항쟁 이후 경제5단체의 개헌 반발에 대해 비판하였으며, 7월에는 '모든 민주인사와 정치인의 사면복권 단행'을 촉구하였다. 또한, 같은해 11월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단일화를 촉구하며 대통령 후보를 내지 않았다.
2.2. 13대 국회의원 선거
제3세대당은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9명의 후보를 내었지만, 한명도 당선시키지 못하여 등록취소 되었다.[2]3. 역대 선거결과
연도 | 선거 종류 | 지역구 | 비례대표 | 정원 | 득표율 | 비고 |
1988년 | 제13대 총선 | 0/299 | 0/4 | 0/299 | 0.1% |
4. 기타
- 여담으로 창당 시기에 김호일과 조일현이 각각 대변인과 전당대회 부의장으로 인선되었다. 재밌는 사실은 두사람 모두 13대 총선을 앞두고 제3세대당을 탈당하여 신민주공화당의 후보로 출마하였다.
- 제3세대라고 명명한 이유는 해방~4.19세대를 1세대로, 4.19~1987년 당시 세대를 2세대로, 1987년 당시 새로운 세대를 제3세대로 구분했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