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국군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ce5b6,#49421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81818,#e5e5e5 |
<colcolor=#373a3c> 초대 환공 |
제2대 무공 |
제3대 장공 |
제4대 소공 |
제5대 여공 |
제6대 소공 |
제7대 미 |
제8대 영 |
|
제9대 여공 |
제10대 문공 |
제11대 목공 |
제12대 영공 |
|
제13대 양공 |
제14대 도공 |
제15대 성공 |
제16대 수 |
|
제17대 희공 |
제18대 성공 |
제19대 희공 |
제20대 간공 |
|
제21대 정공 |
제22대 헌공 |
제23대 성공 |
제24대 애공 |
|
제25대 공공 |
제26대 유공 |
제27대 수공 |
제28대 강공 |
|
삼황오제 ·
하 ·
상 ·
주 ·
춘추시대 ·
전국시대 ·
진(秦) ·
한 삼국시대 · 진(晉) · 오호십육국 · 북조 · 남조 · 수 · 당 오대십국 · 송 · 서하 · 요 · 금 · 원 · 명 · 청 중화민국 국가원수 · 중화민국 총통 · 중화인민공화국 |
}}}}}}}}}}}}}}} |
정(鄭)나라 5,9대 국군[1] 여공 厲公 |
|||
성 | 희(姬) | ||
씨 | 정(鄭) | ||
휘 | 돌(突) | ||
자 | 자원(子元) | ||
아버지 | 정장공(鄭莊公) 희오생(姬寤生) | ||
어머니 | 옹길(雍佶)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673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701년 9월 ~ 기원전 697년[2] 기원전 680년 ~ 기원전 673년[3] |
[clearfix]
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정나라의 제5,9대 군주. 정장공의 차남. 정소공의 동생. 공자 미, 공자 영의 형. 정문공의 아버지.[4] 어머니는 송나라 여자 옹길이다. 주혜왕을 복위시키는 업적을 세웠다.2. 생애
3. 초기 재위 기간
정 장공 43년(기원전 701년), 제족의 도움으로 세자 홀이 대를 이었다. 그가 바로 정소공이다. 송장공(宋莊公)이 사신으로 온 제족을 위협해 공자 돌을 세우니 그가 바로 정 여공이다.정 여공 원년(기원전 700년), 정여공은 노환공과 무보에서 회맹했다.
정 여공 2년(기원전 699년) 2월, 송나라가 정나라에 과도한 공물을 요구하자 정여공은 견디지 못해 기(紀)나라, 노(魯)나라와, 제(齊)나라, 송(宋)나라, 위(衛)나라, 연나라와 맞섰고 그들을 격파했다. 같은 해 정여공은 노나라와 우호를 다졌다.
정 여공 3년(기원전 698년) 정월, 정여공은 노환공과 조(曹)나라에서 회맹했다. 여름 정여공은 자인은 노나라로 보내 노나라 중온 땅에서 우호를 다지고, 곧 조나라와 회맹했다. 12월, 송나라는 제나라, 채(蔡)나라, 위나라, 진(陳)나라와 함께 정나라를 쳐서 신정의 거문을 불사르고 동쪽 교외에서 패배했다.
정 여공 4년(기원전 697년), 정여공은 전권을 장악한 권신 채중에게 위협을 느껴, 채중을 살해하려 했으나 옹규가 채중의 딸인 그 아내에게 누설해 결국 옹규는 그 대가로 살해당했다. 가을에 정여공은 역읍으로 달아나 역읍의 대부 선백을 죽이고 그곳을 차지해 그곳에서 은거했다. 채중은 그를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정여공이 송나라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채중은 대신 정소공을 세웠다.
3.1. 폐위된 뒤에 일어난 일
그러나 정소공은 금방 사이가 나쁜 고거미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그 고거미는 공자 미를 정나라의 군주로 모셨다. 그는 달리 정자 미(鄭子亹)라고도 불린다. 공자 미는 고거미와 함께 정나라를 다스렸으나 제양공이 그들을 불러 제거해버렸다. 이에 제족은 그 아우인 공자 영을 세웠다. 그는 달리 정자 영(鄭子嬰)이라고도 불린다.공자 영 14년(기원전 680년), 정여공은 정나라의 수도를 쳐서 대부 부하를 포로로 잡고, 공자 영을 죽이겠다는 약조를 받고서 6월에 정여공은 복위에 성공했다.
3.2. 2차 재위 기간
정 여공 복위 5년(기원전 675년), 연나라와 위나라가 주 혜왕을 몰아내고 왕자 퇴를 추대해 혜왕이 온읍에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정 여공 복위 6년(기원전 674년) 봄, 주 혜왕은 정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니 정여공은 주 혜왕을 돕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왕자 퇴를 치는데 실패했다.
정 여공 복위 7년(기원전 673년), 괵나라와 함께 왕자 퇴를 죽이고, 주혜왕을 복위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해에 정여공이 죽으니 그 아들 희첩(姬踕)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정문공(鄭文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