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사의 삼만 | ||
우남 이승만 | 검은 정순만 | 우성 박용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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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3년 3월 3일 |
충청도 청주목 서강외이하면 덕촌리 (현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덕촌리)[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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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11년 6월 21일 (향년 37세)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 |
부모 | 정석종, 밀양 박씨 |
호 | 검은(儉隱) |
이명 | 왕창동(王昌東, 또는 王昌道), 왕일초(王一初), 왕한(王韓) |
본관 | 하동 정씨[2] |
서훈 |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198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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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충청북도에서 정석종과 밀양 박씨 사이 외아들로 태어났다. 1896년 의병 참여를 하였고 자신의 고향에서 덕신학교를 세웠으며 상동청년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이후 북간도로 망명한 후 1907년 헤이그 특사를 도왔으며 1908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안중근의 의거를 도왔다.
1910년 독립운동을 하던 중 정순만이 양성춘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일이 발생하였다. 물론 정순만이 고의로 쏜것은 아니었지만 이 사건 때문에 정순만은 옥고를 치렀고 1911년 2월 석방되었지만 1911년 6월 21일 가족을 죽인것에 복수심을 품고 있던 양성춘의 형인 양덕춘과 양성춘의 아내 전소사에게 도끼로 살해당하였다.
사후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