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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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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丁夫人
(? ~ 220년 이전[1])


1. 개요

후한 말의 여성으로 조조의 첫번째 정실, 조앙의 양모.

2. 정사 삼국지

조조는 원래 정실 정부인과 측실 유부인이 있었는데, 정부인은 아이가 없었고 유부인은 조앙, 조삭, 청하공주를 낳았다. 유부인이 일찍 죽어서 정부인이 조앙을 길렀다. 비록 조앙이 시앗의 소생이긴 했어도 친자가 없었던 정부인은 일찍이 친모를 잃은 조앙을 친자처럼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조조가 장수의 항복을 받고는 장수의 숙모 추씨와 정을 통하는 바람에, 분개한 장수의 역습을 받아 아들 조앙이 죽고 말았다. 이에 정부인이 항상 조조에게 "내 아들을 죽여놓고 와서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 하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소!"라고 말하며, 절도 없이 통곡하자 조조는 그녀를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조조가 부인을 다시 데려오려고 그 친정에 찾아갔더니 정부인은 베틀에 앉아 있었는데, 조조가 싹싹 빌면서 매달리는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계속 베만 짰다. 결국 조조는 끝내 정부인에게 용서받지 못한 채, 부인이 재혼해서 잘 살길 바란다는 말만 친정 사람들 편에 전해 놓고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조조가 무서워서 아무도 감히 정부인과 결혼하려 들지 않았다.[2]

예전에 정부인이 정실(正室)이었고, 또한 조앙도 살아 있었을 때 정부인은 변씨와 그 자식들을 깔보았다.[3] 나중에 무선황후(변씨)가 정실이 되었는데 무선황후는 그때의 구박은 잊고 조조가 밖으로 나갔을 때 사람을 파견하여 물품을 정부인에게 주거나, 가끔 만나기도 했다. 정부인을 만났을 땐 정부인을 상석에 앉히고 자기는 하석에 앉았다. 조조의 정실이 되었음에도 정부인을 존중했는데, 이에 정부인은 감사해하며 "나는 이미 폐출된 몸인데, 어찌 그대는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이오?" 라고 했었다. 정부인이 죽은 후에, 무선황후는 조조에게 부탁해서 제사 지내기를 청하였고 허락을 받아 허도의 성 남쪽에 장사지냈다.

조앙이 죽고 정부인과 헤어진 일은 조조에게도 후회되는 일이었는지,[4] 나중에 조조가 병이 들어 이제는 다시 일어나기는 힘들 것을 알자, 한탄하며 "내가 예전부터 수많은 행동을 해왔지만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것은 거의 다 없는데, 만약에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라는 것이 있어서 내 아들 조앙이 나에게 '내 어머니는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라고 말했다.[5]

정부인의 여동생은 하후연의 아내라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하후연 문서로.

3. 삼국지연의

조조가 위왕이 되고 나서 본처 정부인이 아이를 못 낳았기 때문에 쫓아냈다. 역사와 비교해보면 굉장히 서러워졌다.

4. 미디어 믹스

4.1. 삼국지톡

파일:정영옥(삼국지톡).png

작가가 지은 작중 이름은 '정영옥[6]'. 서늘한 인상에 숏컷을 한 중년 여성으로, 삼국지톡 설정에 의하면 명문가 출신에 조조보다 연상이라 한다.[7] 귀가해서 진상을 부리던 조조가 아들 조앙을 보고는 '잠깐 못 본 새 많이 컸다, 그런데 야자는 어쩌고 집에 와 있느냐, 아빠가 자주 안 들어온다고 땡땡이 치는 거냐'고 농담 섞인 잔소리를 하자 위층에서 내려와 '걔는 올해 스무 살이고, 너는 밖에서 뭘 하길래 네 새끼 나이도 모르냐, 네 '여친'한테도 이 따위로 구느냐'고 차갑게 독설을 쏘아붙인다. 조조는 지은 죄가 많아서 찔리는지, 곧바로 영옥을 누님♥이라 부르며 깨갱한다.[8] 첫 등장 때 조조가 심하게 여색을 밝히는 것을 암시하는 복선이 있었는데, 정영옥의 첫 등장 컷에서 뒤에 걸려 있던 그림이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 풀밭 위의 점심식사'[9]였다. 정략혼으로 맺어진 사이인데다 조조가 안팎으로 사고를 치고 속을 썩인 탓에 본인도 부부로서의 정은 없는지, "야", "너" 하는 식으로 쏘아붙이는 투로 부른다. 종종 "조아만(씨)"이라고 부를 때도 있는데 역시 애정을 담아 아명으로 부르는 느낌이 아니라 빈정거리고 경멸하는 태도다.
그 다음 화에서 조앙이 조조를 따라 출전하겠다고 하자[10] "뼈빠지게 키워놨더니 되고 싶은 게 사람백정이냐"고 호통을 친다. 이에 조앙이 어차피 내 친어머니도 아니지 않냐고 셀프 패드립을 치자 충격을 받고,[11] 조조의 멱살을 잡으며 "넌 진짜 쓰레기지만 그래도 내가 네 개짓거리 다 참고 넘어가 줬다. 어차피 정략결혼인 데다 네가 그나마 가족한테는 살가워서 사람 취급 해준 거다"라며 화를 낸다. 결국 분을 못 이긴 영옥은 조앙에게는 그렇게 가고 싶거든 출전하라고 쏘아붙이면서도, 너한테 무슨 일 생기면 너희 아빠 용서 안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차갑고 강해 보이는 인상으로 등장했지만, 사실 남편의 불륜과 사람백정 짓에 상심이 컸던 듯하다. 조조의 불륜을 폭로하는 인터넷 기사에 애먼 본인 머리채를 잡는 댓글이 달린 걸 보고는 조앙에게 '네 아빠가 바람을 피우든 사람을 죽이든 화는 안 나고 그저 나중에 천벌 받겠거니 하는데, 그냥 좀 허탈하다. 네 아빠는 나한테 이래도 되는 줄 아나 보다. 같이 산 세월이 얼만데' 하고 술에 취한 채 하소연을 했었다. 조앙은 아버지가 적장의 숙모에게 흑심을 품어 단정하지 못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자신에게 넋두리하던 말을 떠올리며 "아버님이 부끄럽다"면서 눈물을 흘린다.

결국 조앙이 완성에서 죽고 조조 혼자 생환하여 돌아오자, 내 새끼를 살려내라고 비통하게 울부짖으면서 "네가 인간이냐, 내 새끼 죽었으니!!! 조조 너도 죽었어야지!"라고 맹렬한 비난을 퍼붓는다.[12] 그러나 조조가 부하들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느라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며 친정으로 돌려보내려 하자, 실성한 표정으로 정욱을 붙들고 '내가 반평생을 저런 한심한 놈이랑 살았다'며 미친 듯이 웃는다. 이후 나온 기사에 조조의 '전' 부인으로 언급되는 걸 봐서 정사에서처럼 그대로 이혼을 한 모양이며, 조조가 뒤늦게 사과하려고 여러 번 찾아왔으나 영옥은 본인의 사무실에서 두문불출하며 내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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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창천항로

정미호(丁美湖)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변영롱이 원나잇 이후에 조조와 혼인을 했다면, 정미호는 이미 예전부터 집안끼리 미리 약혼을 한 조조의 약혼녀였던 셈. 성격은 대가집 규수답게 자존심이 강하고 드센 한편, 조조가 한 마디 던질 때마다 얼굴을 붉히는 순진한 구석도 있다. 조조의 정실 부인으로 집안을 책임지다 조조가 완성에서 장수의 숙모 추씨와 놀아나다 아들 조앙을 잃고 혼자 돌아오자, 조조 맹덕에겐 인간으로서 필요한 감정이란 것이 결여되어 있다면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토해낸 후, 집을 나가면서 이후 등장하지 않는다.

4.3. 영웅조조

배우 이령옥(李玲玉)이 연기했다.

4.4.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백만인정부인.jpg
100만인의 삼국지

100만인의 삼국지에서 등장.


[1] 정부인이 죽었을 때 변부인이 조조의 허락을 받아서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있다. 즉, 정씨가 사망할 당시 조조는 생존해 있었다. [2] 조조 아버지가 죽었다는 이유로 한 주(州)에서 두 번이나 대학살을 벌인 인간이니 무서워할 만하다. 비록 말로는 재혼해서 잘 살라고 했다지만 '그' 조조가 직접 찾아가서 싹싹 빌고 매달렸다는 것 자체가 아직 그는 정씨와의 재결합을 원한다는 증거였다. [3] 친아들은 아니라도, 친아들처럼 키운 아들이 남편의 장자이자 후계자이고 본인은 정실인데 반해, 당씨 변씨와 그 소생들은 첩 + 서자의 입장이니 당연 경쟁이 될 수가 없었다. 조조 또한 첩은 계속 들였어도 조앙의 죽음 이후에도 정부인에게 재결합을 사정사정할 정도로 그녀를 총애했던 것으로 보인다. [4] 서주에서의 두 번의 깽판도 평생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정부인과 헤어진 것만은 후회했다고 전한다. [5] 마침 또 조앙이 죽은게 자기 바람기 때문인 것과 조앙이 자신을 구하다 죽은 것을 감안해보면 조조 입장에서는 정말로 쥐구멍이라도 찾고픈 심정이었을 것이다. [6] 중문판 표기 '丁英玉'. [7] 당시 상류층 자제들이 으레 그랬듯이 조조도 일찍이 정략결혼을 했을 것이며, 후일 정부인이 조조와 별거하자 조조가 그 친정까지 찾아가서 재결합을 청하며 싹싹 빌었지만 끝내 외면 당했다는 일화가 있어서 이렇게 설정했다고 한다. [8] 지은 죄도 있고, 애초에 명문가 출신에 나이도 위인 정실부인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도 있는 듯. 이 또한 조조가 빌었지만 정부인이 외면했다는 일화를 반영한 캐릭터 설정으로 여겨진다. [9] 대놓고 부인 앞에서 바람 피는 내용의 그림이다... 조조의 행적을 잘 나타내는 그림. [10] 이때 조조는 조앙이 건내준 군복과 검을 들고 어리둥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11] 영옥은 (정사의 서술대로) 조앙의 친모는 아니지만, 조앙을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웠다. 실망스러운 남편에게 지쳐갈 때도 조앙에게는 많이 의지했기에 "엄마는 다 필요 없고 우리 아들만 있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아들이 나이 고작 스무 살에 아비 노릇도 제대로 안 해주는 아버지를 따라 종군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만류하는 자신에게는 되려 친어머니도 아니지 않냐고 못된 말을 하니 당연히 속이 많이 상했을 것. [12] 이 대사를 치면서 자식 잃은 어미의 원한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귀기 어린 눈으로 조조를 노려보고, 뺨을 여러 대 얻어 맞았는지 빨개진 볼에 멍한 얼굴로 있던 천하의 조조가 겁에 질려 버린다. 이 눈빛을 보고 서주대학살 당시 조조가 떠오른다고 평한 독자도 있었다. [13] 이에 대해 한 댓글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조조의 사과가) 진심이든 아니든 정영옥이 알 바 아니다. 이미 조조는 남편도 애 아빠도 아닌 내 새끼 죽인 놈이니까. 또 다른 댓글도 자기 병크로 자식을 죽이고 혼자 살아돌아온 조조는 더 이상 남편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언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