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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5-27 18:41:49

전희정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외교관. 김정일 시기에 주로 활동했다.

2. 생애

통일부에선 처음에 1930년 3월 5일 출생으로 파악하고 있었으나, 1935년생으로 나중에 자료잡혔다. 사후 북한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35년 3월 18일 출생이다. 평양외국어대학 졸업 이후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1968년 캄보디아에 임시 대사대리로 부임, 1973년 앙골라와 자이르의 대사대리로 부임했다. 1982년, 김일성의 중국 방문 당시에 외사국장 직함으로 등장하였다. 1984년 김일성의 소련 방문도 수행하여 콘스탄틴 체르넨코와의 회담에 배석하였다. 1982년, 1986년, 1990년 3차례에 걸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되었다. 1992년 4월 1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김일성훈장을 수훈받았다. 1988년 즈음에 김정일 연회에 늦어 과속하다가 북한을 방문한 소련 레닌 군사정치아카데미 총장을 태운 차를 들이박고도 뺑소니를 쳐버렸다고 한다. 10분 후에 보위국에서 와서 새 승용차를 주면서 입단속을 시켰다고.

2000년 6월, 김정일의 의전서기로 임명,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의 전용기에 탑승하여 김대중을 맞이하였으며 한달 후 블라디미르 푸틴의 방북, 2001년 5월, 스웨덴 페르손 총리의 방북 때도 영접하였다. 2001년 10월, 이집트 대사로 발령받았으나 2004년 10월에 장명선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귀국하였고 2007년 국방위원회 외사국장에 임명되어 김정일의 외교의전을 담당하였다.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을 영접했다.

2010년 5월과 8월, 김정일의 방중 시에 또 수행했으며 2011년 5월의 중국 방문, 2011년 8월의 러시아 방문 때도 수행했다.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재선되었으며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자 국가장의위원에 위촉되었다. 하지만 이미 고령이라 2012년 2월 김정일훈장을 받은 것을 마지막으로 정치 일선에서 은퇴했다. 아마도 2012년 4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에서 소환되었거나 예우상 중앙위원회에 이름만 남겨놓았다가 2016년 5월의 7차 당대회에서 소환된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20년 9월 20일에 사망했으며 다음날 김정은이 애도를 표하며 화환을 보내주었다. 조선중앙통신은 "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대외사업부문의 유능한 일군으로 성장한 전희정동지는 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헌신성을 지니고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의 대외정책을 실현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라고 전희정을 칭송하였다. 그리고 애국렬사릉에도 외무성 부상의 직함으로 안치되었는데 이를 볼때 1998년 이후 외무성 부상을 지냈으나 남한에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