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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40:46

전형규



파일:Screenshot_2016-09-17-16-34-58-1.png
2000 남북정상회담을 보도하는 전형규의 모습

1934년 8월 28일 ~ 2006년 9월 7일 (향년 72세)

1. 개요2. 일생3. 울지 않아서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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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전직 아나운서(방송원). 리춘히와 함께 북한의 가장 대표적인 아나운서로 꼽히며, 1994년 김일성의 사망을 보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전형규의 김일성 사망 발표. (1994)

2. 일생

1934년 8월 28일 강원도 안변군 안도면 오계리[1]에서 가난한 농민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1950년 원산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에 평양사범대학을 통신으로 졸업하였다.

6.25 전쟁시기인 1951년 4월부터 함흥철도관리국 철길복구대에서 전시철도수송임무를 맡았고 1954년 3월부터 함흥철도관리국 지도원, 1955년 3월 철도국 지도원으로 일하다가, 1956년 5월 1일부터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방송원으로 활동하였는데 1963년에 조선중앙TV가 개국하자마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고전적 명작과 조선로동당, 북한 정부의 중요 문건과 성명, 호소문, 정치보도, 북한의 정치적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 방송원으로써 왕성한 활동을 이어 나갔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보도와 1995년 오진우 사망보도, 2000 남북정상회담 보도도 담당했다.

1980년 11월 1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최성원과 함께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당과 혁명에 끝없는 충성심을 높이 발휘하여 오랫동안 방송부문에서 사업하면서 우리 인민의 사상감정과 우리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방송화술을 세련시키며 형상수준을 끊임없이 높여 방송을 성과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우리 당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다그치며 우리 혁명의 국제적 련대성을 더욱 강화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한' 방송원으로 선정되어 인민방송원 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으며 1995년에는 로력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보도 영상(2000년 6월 13일 MBC 뉴스데스크 방송 내용 중에서, 이 방송 내용에는 리춘히 방송원의 보도도 나온다.)

임수경 방북 사건도 보도했다. 영상의 0:41~0:48에 전형규의 목소리가 나온다.
2006년 9월 8일에야 국내 언론에서 김정일이 전형규의 영전에 헌화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사망이 확인되었다. 2007년 8월 1일, 애국렬사릉에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방송원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울지 않아서 처벌?

채널A 이만갑에서 윤아영 씨의 증언에 의하면 전형규 방송원은 1994년 김일성의 사망보도 당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고 하는데, 실제로 당시 김일성 사망 보도를 자세히 보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다만 기사가 저게 전부여서 상세한 상황은 알 수 없다. 물론 그 다음에도 방송활동을 멀쩡히 한것을 보면 가벼운 혁명화 처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김정일 사망 당시 울면서 방송한 리춘히는 승승장구하였다.
[1] 대한민국 이북5도 기준 함경남도 안변군 안도면 오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