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모티브로 한 소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 속 등장개념에 대한 내용은 전진칠자(사조삼부곡)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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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도교의 도사들을 지칭하는 개념. 구성원 모두 실존 인물이며, 스승인 왕중양과 함께 도교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들이다.2. 특징
왕중양은 북오조(北五祖) 가운데 한 사람이며, 팔선 가운데 하나인 여동빈의 제자로 유명하다. 왕중양의 일곱 제자는 보통 도교에서는 전진칠자 외에도 북칠진(北七眞) 또는 북칠진자(北七眞子)로 통한다. 구처기가 칭기즈 칸을 만난 것이나, 왕처일 별명 '철각선'은 사실이다. 무협소설에선 무공 고수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그들은 무공보단 당대 도가 철학, 사상을 대표하는 도사들이었다. 전진칠자들을 출가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단양자(丹陽子) 마옥 - 1123년생. 1167년 전진교 입문. 손불이의 남편. 우선파. 전진교의 제 2대 조사. 1183년 사망. (60세)
- 청정산인(淸淨散人) 손불이 - 1119년생. 1167년 전진교 입문. 마옥의 아내. 청정파. 1182년 사망. (63세)
- 장진자(長真子) 담처단 - 1123년생. 1167년 전진교 입문. 남무파. 전진교의 제 3대 조사. 1185년 사망. (62세)
- 옥양자(玉陽子) 왕처일 - 1142년생. 1167년 전진교 입문. 윤산파. 1217년 사망. (75세)
- 장춘자(長春子) 구처기 - 1148년생. 1167년 전진교 입문. 용문파. 전진교의 제 5대 조사. 1227년 사망. (79세)
- 장생자(長生子) 유처현 - 1147년생. 1169년 전진교 입문. 수산파. 전진교의 제 4대 조사. 1203년 사망. (56세)
- 광녕자(廣寧子) 학대통 - 1140년생. 1175년 전진교 입문. 화산파. 화산파(華山派)의 개파 조사.[1] 1212년 사망. (72세)
전진칠자를 나이 순으로 배열하면, 손불이, 마옥, 담처단, 학대통, 왕처일, 유처현, 구처기 순이다. 특히 손불이는 남편 마옥과 함께 왕중양의 첫번째 제자가 되어 배분도 마옥과 함께 첫번째로 꼽힌다. 김용의 무협소설인 사조영웅전이나 신조협려에서는 홍일점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막내로 묘사되어 마옥보다 어리게 설정되었으나 실제로는 마옥보다 4살 연상으로 왕중양의 제자 중 최고 연장자로 다음 순이 마옥이다. 마옥은 일찍이 왕중양이 진선의 재목으로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하여 왕중양이 생전에 전진교의 비결을 전수받아 전진교의 직접적인 계승자가 되어 법을 전하였기에 다른 전진오자는 마옥을 공경하고 그의 아내이자 같은 전진칠자인 손불이를 공경하였다. 물론 민간에는 구처기가 가장 유명하여 그가 사실상 전진칠자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필두로 칭해졌다. 실재로 이후 여동빈- 왕중양의 종통은 구처기로 전해지게 된다.
특히, 나이가 손불이와 4살 연하인 남편 마옥, 역시 4살 연하인 담처단은 손불이를 누이로 대했으나 학대통은 손불이와 나이차이가 21년, 왕처일은 손불이와 나이차이가 23년, 유처현은 손불이와 나이차이가 28년, 구처기는 나이차이가 29년의 나이 차이로 어머니와 아들로 볼만한 나이 차이여서 이들은 손불이, 마옥, 담처단을 어머니, 아버지 대하듯 공경했다고 전해진다.
손불이 항목에 나온 것과 같이 전진칠자보다 아랫 배분의 제자들이 목욕재계하는 손불이를 훔쳐보다가 발각되었을 때, 손불이를 어머니 대하듯 공경하던 학대통, 왕처일, 유처현, 구처기가 분노하여 스승인 왕중양에게 이를 고해바친 일화도 있다. 분노한 왕중양이 걸린 제자들을 친히 참수했다는 결말이 현재는 물론 당대의 기준으로도 비판받을 일이긴 했지만. 여하간 전진칠자는 왕중양 생전부터 각자 다른 파벌을 대표하는 수장 격이었음에도 서로 공경하는 원만한 관계였다고 한다.
다만 전진교는 전진칠자들에 의해 용문파, 우선파, 남무파, 수산파, 윤산파, 화산파, 청정파로 나뉘어 발전하다가 쇠퇴하였는데 쇠퇴한 데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전진칠자 사후 전진교의 조사가 누가 되느냐와 교단 소유의 재산 싸움으로 안해 서로를 공격하고 헐뜯다 대중에게서 점차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옥의 우선파와 손불이의 청정파가 서로 부부였고 우선파와 청정파는 서로 혼인하는 비중이 높아 원만함을 유지했으나 이들도 전진교가 재산 싸움으로 인해 몰락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우선파와 청정파가 결합된 도관을 세우면서 전진교의 몰락이 가시화되었다. 전진교의 시조인 여동빈과 개파 조사인 왕중양과 그의 직전 제자들인 전진칠자 입장에선 안타까울 일이다.
여동빈- 왕중양- 구처기로 이어지는 내단 도가사상의 종통은 이후 내려가다가 불승이었던 류화양에게 전해지게 된다. 여동빈이 남긴 태을금화종지는 전진칠자를 거쳐 정리되었고, 이것은 지금도 참동계, 황정경 등과 함께 대표적인 도가 수행 경전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김용의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에도 등장해서 유명한데 왕중양과 그 제자들인 전진칠자들은 실제 활동시기보다 작품 상 활동시기가 수십 년 늦다. 사조영웅전은 1199년(송나라 영종 경원 5년 동짓달) 구처기와 곽소천, 양철심의 만남으로 시작되며 곽정이 1200년에 출생한다. 곽정이 20세인 1220년에 25년만에 이뤄진 2차 화산논검이라는 서술로 보아 1195년에 1차 화산논검이 벌어졌고(실존 왕중양 1112~1170), 1217년생인 양과가 성인으로 성장해서도 계속 등장하는 전진칠자들 (실존 손불이 1119~1182, 마옥 1123~1183, 담처단 1123~1185년이며 가장 늦게 죽은 구처기조차 1148~1227이다)로 봤을 때 이들을 작품에 등장시키기 위해 왕중양은 30년 정도, 전진칠자들은 4~50년 이상 늦게 태어나고 죽은 것으로 설정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