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관 항목 : 가공의 연표
1. 개요
게임 전장의 발큐리아 시리즈의 세계관 연표를 정리한 항목.전장의 발큐리아 전 시리즈의 네타와 스포일러가 있으니 게임을 플레이할 예정이라면 보지 않는게 좋다.
2. 본편 이전
연도 | 사건 |
3세기 경 |
발큐리아 인들이 파괴와 약탈을 일삼던 야만족
달크스 인을 토벌. 그들의 후손이 현 랜드그리즈의 위치에 성을 세운것이 역사의 시작 |
1차 세계대전 |
역시 대공의 탁월한 결단력과 지휘력, 그리고 국민들의 합심을 통해 국토와 국권을 지키는데에 성공. 1차 세계대전의 정확한 기간은 나오지 않지만 어느정도 유추는 가능하다. 네임리스의 펠릭스(정력 1935년 당시 21세)가 대전에서 가족을 잃고 제 7소대의 이사라(동시기 16 세)의 아버지가 전후 사망했기 때문에 적어도 21년(1914년) 이후에 전쟁이 일어났고 16년(1919년) 전에 휴전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현실의 제1차 세계 대전은 1914년에 개전하여 1918년에 종전했다. |
1차 세계대전 이후 |
전쟁 이후, 갈리아 공국 전체에 퍼진 전염병으로 인해 선대 대공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남은 후계자인
코델리아 기 랜드그리즈가 왕위를 넘겨받음 너무 어렸던 탓에 제상 마우리츠 볼그에 의한 섭정이 시작. 귀족들간에 이권다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바람에 경제고 국방이고 모든 것이 막장이 됨. 이런 상황에서 동유럽 제국연합의 재침공을 받는 바람에 사실상 국가 막장 테크를 타고 있음. |
3. 본편 시작
연도 | 사건 |
정력 1931년 |
하펜사건 발발. 갈리아 국경 근처의 마을 하펜에 제국군의 갑작스러운 포격이 떨어졌다. 총 13발의 유탄이 시가지에 떨어져 대규모 화재와 다수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제국 측은 비상사태 중의 사고로 인한 오발이었다고 밝히며, 연방으로부터의 도발 행위에 의해 오발이 발생했다며 반대로 연방을 비난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한 배경에는 전년부터 시작된 갈리아에 대한 제국의 압력과 간섭이 있었고, 라그나이트 자원이 풍부한 갈리아를 제국 속령으로 편입시키려는 위압 행위임이 명백했다. 도발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갈리아 정부의 대응은 항의에 그쳐 국내의 반감을 샀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갈리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제국적 정서가 고조되면서 무장 중립을 내건 갈리아군 대신 제국 타도를 내거는 타국의 군대에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급증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4편의 레일리는 제국을 무너뜨릴 복수를 위해 아버지의 연구를 갖고 합중국에 투신하였다. |
정력 1935년 |
유럽 대륙은 동서 두개의 대국에 의해 분단이 되며 바로 황제를 정점으로 한 전체 군사국가 동유럽 제국연합과 왕정을 폐지한 공화국 국가의 연합체 대서양 연방기구 통칭 연방이 존재했다. 광물자원 라그나이트를 차지하기위해 세력싸움을 넓히던 양국은 결국 개전. 대륙은 전쟁의 불길에 휩싸여버리고 말았고, 제2차 유럽대전이 발발되었다. |
정력 1935년 3월 |
15일 갈리아공국 국경마을 브르르 교외 제국과 국경 사이게 살던 브르르의 사람들은 전화를 두려워하여 차례차례 마을을 탈출하기 시작. |
제국은 갈리아 공국에게 전쟁을 선포하여, 그 영내로 노도와 같은 침공을 개시했다. | |
20일 동부국경을 제국군 제101 기갑사단이 돌파하여 브롤을 제압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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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력 1935년 4월 | 5일 제국군이 바젤교를 제압하는데 성공하다. |
14일 갈리아 의용군 제3중대가 갈리아의 교통의 요지 바젤교를 탈환하는데 성공하다. 덕분에 랜드그리즈는 수도 봉쇄의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다. | |
20일 갈리아 북부 방면군은 북부에서 철수를 표명했다. | |
정력 1935년 5월 | 8일 갈리아 정부가 일반시민의 의용군 동원체제를 2차 동원까지 끌어올린다고 발표했다. 이 동원 상향은 공국의회가 제국의 선전포고를 받은 3월부터 검토되어 동부 갈리아에 이어 북부 태반을 제국군에게 점령되면서 결정되었다. 제2차 동원은 30세부터 45세의 국민에서 선발되어 동원되는 것으로, 원칙상 남자만 대상으로 한다. |
상순 의용군의 원군 요청에 네임리스가 응답, 7소대와 네임리스가 서로 처음 만난다. 두부대는 서로 협력하여 제국군 1개 대대를 상대로 버티는데 성공하였다. 이 전투가 네임리스에게 두고두고 악연이 될 칼라미티 레이븐과의 첫조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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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순 제국군의 공격에 의해 파우젠 공업기지가 함락당하여 갈리아 북서부 지역을 제국이 점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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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남부 클로덴 숲의 전투로 제국이 세운 보급기지를 점령한다 | |
의용군 7소대의 마스코트가 되는 날개돼지, 한스가 7소대에 들어오게 되다 | |
네임리스가 쿠르트 아빙을 비롯한 자경대와 함께 리디아의 거대전차 에드히나를 격퇴하여 유엘시를 해방시킨다 | |
정력 1935년 6월 | 중순 네임리스가 비밀리에 제국 영토의 보급기지를 파괴하여 제국이 보급에 차질을 빚게 만들다. |
10일 바리어스 사막에 주둔하던 일부 제국군대를 갈리아 의용군이 격퇴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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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이후 웰킨, 팔디오, 알리시아 일행이 맥시밀리안 황태자, 셀베리아 일행을 유적지에서 조우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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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력 1935년 7월 |
상순 갈리아 중부 방면군이 바리어스 사막에서 맥시밀리안의 기갑부대와 거대전차 겔빌을 격퇴하는데 성공하다. |
중순 네임리스가 기를란다이오 요새에 막시밀리안 황태자가 방어병력이 거의 없는 상태로 머물고 있다는 정보에 입각하여 막시밀리안 암살작전을 결행. 그러나 하필이면 셀베리아가 있어서 작전이 실패해버리고 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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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순~하순 네임리스 대원 구스르그가 신형 포탄 실험 작전에 네임리스를 동원한다는데 의문을 품고 포탄을 조사. 독가스 병기라는걸 알게되자 크게 실망하고 주포를 부수고 탈영해버린다. 이로인해 갈리아 정규군의 북부 탈환은 실패로 돌아갔다. 동시에 조약에 금지한 독가스 포탄 사용에 대해 상층부가 크게 당황하고, 길버트 갓세날은 상층부를 질타하면서 동시에 배반자의 존재에 의심을 품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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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순 동부의 제국군이 바리어스 사막 북쪽으로 후퇴하여 부대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이로인해 제국의 남부로의 침공이 정지되어 갈리아 남부지역의 안전이 확보되었다. 하지만 북서부의 전선은 여전히 제국이 유리한채 유지되어 갈리아군은 전황을 타개하지 못하고 있었다. 구스르그 대신 칼리사 콘첸이 네임리스로 들어오다. 갈리아군이 사막에 병력을 구원하라는 거짓 지령을 내린 뒤에 네임리스를 숙청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리엘라가 각오하고 발큐리아로 각성하여 갈리아군과 전투하여, 네임리스는 포위망을 뚫는데 성공했다. 제국군이 진로상의 다리를 파괴하여 갈 길을 잃은 레인저 E소대가 갈리아 파견을 맡게 된다. 균터의 7소대와 합동훈련을 하다 제국군과 싸운다.-전장의 발큐리아4 dlc 단편'7소대와의 공동전선'. 여기서 타운셴트는 E소대에게 출세를 약속하며 어떠한 밀명을 내리려했지만 클로드는 최전선에서 제국과 싸우기 위해 정중하게 거절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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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연방의 타운젠트 대사관이 새벽에 코델리아 공주를 납치하려다가 실패한 7월 사건이 발발. 코델리아 공주는 의용군 7소대에 의해 무사히 구출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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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력 1935년 8월 |
1일 갈리아군은 중부 갈리아 전선을 북으로 밀어올리는데 성공. 스메이크, 아이든을 탈환하고 중부의 중요한 보급로를 차단한다. 이로인해 제국군 중부와 북부의 중계가 분단되어 수비가 굳건한 파우젠을 공략할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
5일 7소대가 자카의 도움을 받아 베르홀트 그레골 장군이 탄 장갑열차를 부수고 파우젠을 해방하는데 성공. 그러나 제국군은 도망가면서 수용소에 불을 질러서 많은 다룩스인들이 사망하게 된다. 이후 자카는 의용군 7소대에 입소한다. 네임리스가 멜베어시에서 탈출하여 앤트홀트 항구에 도착하여 물자를 보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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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절 1편과 3편의 러브 이벤트. 정령절은 연인끼리 선물을 서로 교환하는 명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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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절 이후 네임리스가 파우젠 해방을 도움을 주기 위해 파우젠 근처의 광산을 해방하면서 의용군의 파우젠 해방 소식을 듣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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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북부 갈리아 최후의 제국군 진지인 멀베리 방어진지를 의용군 3중대가 탈환하는데 성공. 이사라가 만든 연막탄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이사라가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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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절 이후~9월 하순 나지아르 사막에 제국군과 갈리아군 집결 전 시점 수도 랜드그리즈를 노리고 칼라미티 레이븐이 습격하여 네임리스가 이를 격퇴. 그러나 이건 나지아르 사막에 집결할 갈리아군의 일부를 후방에 배치하게 만들려는 다하우의 책략이었다. 여기에서 네임리스가 수도를 구한 공이 워낙 커서, 네임리스에 부정적인 정규군 부대조차 네임리스의 반역 혐의에 의문을 품게 되었고, 칼 소령조차 네임리스 추격을 시도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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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력 1935년 9월 |
15일 팔디오가 랜드그리즈 대학의 고고학 연구동에서 고대 발큐리아의 창과 방패 유물을 훔친다. 비슷한 시기에 의용대가 브롤 마을 탈환에 성공하다. |
17일 갈리아 정부가 국가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시험을 순차정지한다고 발표했다. 제국과의 전쟁으로 국내정세가 불안정하게 되었다는게 사유. 총 6항목으로 그 중에는 제빵 기술자 자격도 포함되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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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나지아르 전쟁 발발. 셀베리아 블레스가 나타나면서 갈리아군 기갑부대의 3할을 패주하게 만든다. 네임리스도 전투에 참여하여 칼라미티 레이븐과 싸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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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갈리아 정부가 나지아르 전쟁에서 이겼다고 발표. 이 시기에 알리시아가 발큐리아로 각성하여 셀베리아와 싸워 제국군을 패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제국군이 물러나기 전에 이미 셀베리아가 갈리아 정규군에 막대한 피해를 준건 변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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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순 팔디오 란차트 소위가 아군 사격으로 체포되다. 막시밀리안 황태자가 칼라미티 레이븐에게 요새로 퇴각하는 제국군을 위해 추격을 하는 갈리아 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하라고 명령하다. 네임리스의 리엘라가 제국군으로부터 도주하는 갈리아군을 위해 발큐리아의 힘을 써서 구하다. 여기에서 구한 갈리아군에 쿠르트의 동기가 있었으며, 동기에게서 쿠르트는 사과를 받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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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력 1935년 10월 |
상순 칼 아이슬러 소장이 체포되어 군법재판에 회부된다. 동시에 네임리스의 누명도 벗겨졌다. 다만 당장 군계통에 들어가게 된건 아니었다. 이무카가 네임리스에서 빠져나와 셀베리아와 결투를 시행. 그러나 패배하였고, 셀베리아는 크루트에게 이무카를 맡기고, 패배를 짊어지고 살라고 전언을 남긴다. 지크발 전쟁에서 승리한 연방군이 제국의 수도를 향해 북상한다. |
8일 기를란다이오 요새를 함락하는데 성공. 그러나 셀베리아가 갈리아군에 잡히면서 최후의 불꽃을 발동하였기 때문에 갈리아 정규군 대부분을 비롯한 사령관 다몬까지 폭발에 휘말려 사망한다. 동시에 제국군 거대 육상전함 마모트가 수도 랜드그리즈로 침공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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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갈리아 의용군이 예거 장군과 싸워 승리하여 바젤교를 돌파하자 막시밀리안은 마모트를 돌려 의용군을 영격한다. 이때 알리시아의 공격으로 마모트가 입은 크게 타격을 입게 된다. 이는 전장의 발큐리아 1편 최종결전 당시 보병들이 마모트 위로 올라가는 발판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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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거대 육상전함 마모트가 수도 랜드그리즈로 침공. 그러나 균터와 7소대가 마모트를 박살내고 막시밀리안은 팔디오의 희생으로 사망한다. 최종전투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재상 불그는 갈리아를 바로 파는 배반자를 못믿는다는 이유로 제국군에게 처형되었다. 네임리스는 마침내 정규군으로 돌아왔지만, 마모트의 진격 소식을 듣고 이를 막기위해 수도로 전진한다. 동시에 추기경 보르지아가 칼 아이슬러와 막시밀리안 모두를 죽이기 위해 랜드그리즈를 폭발하라는 명령을 다하우에게 내린다. 다하우는 이를 거절했지만 구스르그는 대의를 위해 본인이 대신 전차 에히드나의 동력원을 폭주시켜서 랜드그리즈를 폭발시키려했으나 네임리스에 의해 저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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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칼 아이슬러를 결국 죽이지 못하자 보르지아는 유그드 교에서 쫓겨났다. 다하우는 보르지아를 구해주는 척 하면서 보르지아가 지녔던 발큐리아의 철퇴 를 작동시키는 열쇠를 훔치고 보르지아를 죽인다. 다하우를 포함한 이들은 발큐리아의 철퇴를 이용해 달크스 인들의 국가를 세우려하고, 이를 막기위해 네임리스는 국적을 버리고 제국령의 유적으로 잠입. 다하우를 포함한 모든 칼라미티 레이븐을 죽이고, 발큐리아의 힘으로 철퇴를 하늘로 보내서 폭발시킨다. 이후 엔딩은 선택지에 의해 나뉘고 어느쪽이든 네임리스는 해산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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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갈리아 방면군 총사령관 막시밀리안의 전사를 계기로 제국은 갈리아 공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은 종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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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력 1936년 10월 | 코델리아 기 랜드그리즈의 달크스인 고백과 달크스 차별 폐지 정책을 내놓자 이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을 중심으로 갈리아 혁명군이 선포되어 갈리아 내전이 발발하게 되다. |
정력 1937년 12월 |
21일 발드렌 갓세날의 죽음을 계기로 갈리아 혁명군의 잔당이 모두 항복하여 갈리아 공국의 내전이 종결되었다. |
4. 시기 불명
- 이후 오랜 기간 발큐리아 인들이 이 곳을 통치하였으며 라그나이트 광석이 유달리 풍부하여 이곳에 많은 건축물과 사원을 세우며 부흥한 시기
- 갑작스럽게 어느 시기부터 현 랜드그리즈 왕가를 제외한 발큐리아 인들이 모두 사라진 시기
- 발큐리아 인들이 세운 문명은 유적지로서 잊혀져가기 시작한 시기
- 이후 수많은 세월을 국토를 지키기 위해 방어전을 치른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