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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7 01:04:16

장인식(1900)

성명 장인식(張仁植)
일본식 성명 張本榮
이명 장만석(張萬石)
생몰 1900년 11월 11일 ~ 1966년 11월 4일
출생지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인천리
사망지 충청남도 논산군
추서 대통령표창

장인식은 1900년 11월 11일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 인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11월 25일 서울 관철동에서 이약한(李約翰)의 권유로 대한민국혈복단(血復團)에 가입, 서무부(庶務部) 서무원에 임명되었다. 그는 의친왕 이강 명의의 논고문(論告文) 3통과 선언서(宣言書), <경고 이천만동포(警告二千萬同胞)> 20매, 혈복단 행정조직선포문(行政組織宣布文), 서약서(誓約書), 경고서(警告書) 등의 문서를 교부받고 이를 충남 논산, 공주, 강경 등지에 배포하기로 했다. 그는 공주로 내려가서 영명학교 교사 이활란(李活蘭), 같은 학교 학생 유준석(柳俊錫)[1]·강윤(姜沇) 등에게 위의 문서들을 제시하며 독립만세 시위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0년 4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6년 11월 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장인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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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유준석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