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22대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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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출생 | 1735년 2월 13일 | |||
한성부 창경궁 집복헌 | ||||
즉위 |
1757년
7월 17일 (음력 1757년 6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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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 조선 왕세자 | |||
1736년 4월 25일 ~ 1757년 7월 16일 | ||||
조선 국왕 | ||||
1757년 7월 17일 ~ 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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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본관 | <colbgcolor=#ffffff,#1f2023> 전주(全州) | ||
휘 | 훤(愃) | |||
부모 | 부왕 이금, 모후 정성왕후, 생모 영빈 이씨 | |||
부친 이광숙, 모친 이씨 (이윤관) | ||||
부인 | 왕후 홍연숙 | |||
후궁 | 숙빈 임씨 | |||
자녀 |
장남 왕세자
산 장녀 청연공주 희경 차남 은언군 인 삼남 은신군 진 차녀 청선공주 민경 삼녀 청근공주 사남 상산대군 찬(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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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체역사물 사도세자는 편하게 살고 싶다의 주인공. 원 역사의 사도세자. 원래대로라면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인원왕후의 사망으로 광기가 폭발하기 시작한 1757년에 조선산신령총련맹, 즉 조총련이 역사를 바꾸고자 과거에 개입한 결과 '황극청심원'이라는 비약을 먹고 정신을 잃은 보름 동안 미래 대한민국에서 이윤관이라는 청년으로 15년을 살다가 31살이 되던 해 1757년으로 돌아왔다. 황극청심원의 효과로 광증에서 벗어나고 본의 아니게 조선의 임금이 된 지금 가족들과 함께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2. 행적
2.1. 미래
본격적으로 광증이 폭발하기 시작한 시점에, 장인 홍봉한이 수소문하여 보낸 비약 황극청심원을 먹고 육신이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렇게 혼수 상태에 빠진 보름 동안 그 넋은 미래 대한민국의 평범한 16세 고등학생 이윤관의 몸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윤관은 15년 동안 간장게장으로 이름을 떨친 사업가이자 엄한 아버지인 이광숙, 감 유통업계의 큰손 집안 출신의 자상한 어머니 이씨 밑에서 부유하지만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여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치는 등 소위 '금수저'로 살았다. 그러다가 가업을 물려받기 싫다는 이유로 행정고시를 목표로 하여 공부하다가 31살이 되는 해에 최종 합격하였는데, 바로 그 날 저녁에 급체를 하여 의식을 잃었다.2.2. 현재
이렇게 돌아오니 다시 '현재', 즉 1757년 조선으로 돌아와 있었다. 본인이 미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무렵에 발생한 초자연적인 현상이라 자신이 이윤관의 꿈을 꾼 조선국 왕세자 이훤인지 이훤의 꿈을 꾸는 행정고시 합격자 이윤관인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가, 뒤주에 갇혀 죽는 신세를 피하고자 부왕 이금(원 역사의 영조)을 찾아가 자신을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폐세자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정곡을 찔려 분기탱천한 이금은 당장이라도 폐서인하겠다 소리를 지르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실족사하는 바람에 의식을 되찾은지 사흘만에 조선의 임금이 됐다.그리고 미래에서 아들 이산이 스트레스를 술담배로 풀다가 몸을 망가뜨리게 된다는 것을 알고 왔기 때문에, 임금이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아직 서양 세력의 과학기술력도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고 조선 후기의 모순도 아직 심각한 정도는 아닌데다 아들이 한국사에 이름난 천재군주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평범한 자신이 무언가 했다가 일이 꼬이는 것보다는 아들에게 편히 다스릴 수 있는 나라를 물려주는 것이 목표.
하지만 자신이 편하고자 진행한 일들이 신하들에게는 좀 다른 의도로 받아들여져 이방원을 능가하는 철혈군주라고 오해와 두려움을 사고 있다. 신하들이 보기에는 음모를 꾸며 부왕을 살해하고, 즉위할 때는 이미 내관들의 정보망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선왕의 '탕평'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신하들을 무력화하고 왕의 명령에 따라 일하기만 하는 행정관료로 만들려 하는 무시무시한 전제군주다.
신하들이 사도를 이렇게 보는 근거로는 살부의 경우 왕이 사고로 사망했으니 관련한 내시들이 전부 처벌받아야 하는 것을 '이건 오로지 나 한 사람의 잘못이니 너희들 책임은 없다'라고 실드를 쳐 줬는데, 이게 신하들에게 전달되면서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은유로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내관들의 정보망을 장악한 것은 즉위한 이후였다.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오해가 돌고 있었음을 알고서, 이럴 거면 여론 조작 좀 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여 이훤의 입장에서는 내관들과 '거래'를 한 것이기 때문. 완전한 충성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왕궁 내부 정보를 적당히 팔아먹고 있으므로 이훤이 알려주는 것을 외부로 퍼트리라는, 여론 조성에 한한 계약에 가까웠다. 적어도 이훤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신하들로서는 이렇듯 주종간에 특정 항목에 한한 거래 관계를 상상할 수 없어 주상이 내관들이 내보내는 정보만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받아들인 것이고, 얼마 가지 않아 내관들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가짜 역모 사건에서는 역모를 꾸미는 연락망에 직접 침투해 마구 휘저으며 신하들을 한데 모아놓고는 '재미있게 잘 놀았다' 라고 하며 가 버려서, 신하들의 사적인 연통마저 감시하고 있었다는[1] 사실을 과시하기까지 했다. 영조는 수십 년에 걸친 정치 경험이라도 있지, 즉위하자마자 신하들을 휘두르는 사왕(새로운 왕)의 능력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신하들은 이훤이 신하들을 유혈 숙청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신하들은 이훤이 언제 돌변할지 몰라 더더욱 권력의 공포에 시달리고, 이훤이 뭔가 짬처리를 시도할 때마다 함정카드를 피하겠답시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재차 이훤에게 되돌려 버린다. 그래서 몸 편하게 하려고 뭔가 술수를 꾸민 이훤이 된통 당하는 것이 작품의 주 전개 패턴. 그래도 이훤 1인칭 묘사로나 신하들에게 당하는 것이지, 잘 보면 경연도 접어버렸고 신하들이 일거리를 들고오는 것도 몇 달 간격이다. 그 사이에는 왕으로서 원래 해야 하는 기본 업무만 처리하면서, 아내와 뒹굴거리면서 귤 까먹고 만화와 패설 뒤적거리기도 하고, 가끔 손잡고 는실난실 시간도 보내는[2] 조선의 폭군다운 사치도 부리고 있다.
이른바 북벌론에도 크게 흥미가 없고 설탕 교역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설탕의 주산지인 류큐를 일본으로부터 '보호'하자는, 즉 사실상 류큐를 속국으로 만들자는 남정론이 거세지자 트집을 잡아서 무마시키려 하는 등 대외 팽창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일단 위에 언급한 것처럼 게으른 성품 탓에 굳이 힘써서 할 의지를 가지지 않고 있고, 미래 역사를 통해 식민지의 대부분이 가오만 살 뿐이지 실속이 부족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다소 두루뭉술하지만 '미래인'의 도덕 관념도 어느 정도 작용해서 '왜 굳이 남을 침략할 필요가 있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편하게 살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벌이고 그 덕분에 나라는 빠르게 발전했지만, 이익의 유언(덕담)과 볼테르의 조선 관련 저작이 유럽에 일으킨 파란에 대해 들은 뒤 빨리 세자 산이에게 양위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자신이 대리청정하면서 겪었던 고충을 아들이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반대파의 힘을 키워 소란을 일으킨 뒤 이를 핑계로 양위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해 반골 정신이 투철한 박지원에게 야당 영수 역할을 맡기며 끌어들여 물밑에서 박지원에게 조언을 주고 지원하게 된다.
3. 특징
몇 번 고배를 마셨지만 어쨌든 행정고시에 합격할 정도로 공부머리는 좋은 편인데 주도적으로 일을 벌이는 것은 싫어하는 이른바 똑게 유형이다. 이윤관 시절에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는 대신 공무원이 되는 길을 선택한 이유도 기업체를 운영하기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입버릇처럼 편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치고는 연산군처럼 정말로 국정 운영을 방기하고 주색잡기에 열중할 만큼 무책임하지도 않고 미래를 경험한 입장에서 놀고 싶어도 즐길거리가 너무 없다 보니 편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 행정고시에 합격한 시점에서 기본적인 성실함은 입증된 셈이고 훤이 작중에 보이는 태도는 작금의 조선이 근본적인 변혁이 없다고 망할 나라도 아니고 괜히 능력 없는 자신이 일을 벌이면 훗날 보위를 물려받을 아들에게 부담이나 될 것이라는 나름의 판단에 기반한 것이다.분명 15년 동안 대한민국 국민 이윤관으로 살았지만 '과거로 타입슬림한 미래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미래를 경험한 과거인'이기 때문에 사고방식이나 정체성은 18세기 조선인이다. 그래서 이훤이 말하는 '현대'는 18세기 조선이며 대한민국 시절의 기억을 회상할 때는 '미래'라고 부른다.[3] 미래에서 터득한(?) 고자라니, 둠 코믹스, 날 속인거니? 등 다양한 밈을 사용할 때도 마치 경전에 나온 구절인 것처럼 인용하고 콩글리시는 영문판 이두라고 생각하는 등 '과거인으로서 미래의 지식을 활용한다'는 면모를 보인다. 예외적으로 가족관만큼은 미래에서 처음 경험한 '평범한' 가정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는지 미래인에 가깝다. 그래서 축첩이 당대 기준으로 흠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부하고 있으며, 그나마 하나 있던 후궁 임씨도 사실상 출궁시켰다.[4] 물론 집도 절도 없이 쫓아낸 건 당연히 아니고 임씨와 두 아들의 생활을 보살펴 줄 것을 약속했으며, 헤어질 때는 마음이 있지도 않으면서 그저 잠자리 상대로만 여긴 것[5]을 사과하기도 했다.
행시에 합격할 정도로 기본적인 지식과 교양은 갖추고 있지만 세자 시절에는 부왕의 학대 탓에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고 미래에서도 장교로 군복무한 것을 제외하면 딱히 사회생활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 이로 인해 신하들에게 짬처리한 업무가 갑절로 커지는 등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 된통 당하는 것이 작중 주 전개 패턴. 이런 점은 작가 까다롭스키의 데뷔작 고종, 군밤의 왕의 주인공 김귀남과 정반대다.[6] 미래 지식도 행시를 준비하면서 주입식으로 때려박은 것이 전부다. 그나마 고등학생 때 한중록을 읽어 봤다거나 셰익스피어를 인용하는 걸 보면 단순 행시 올인 수준보다는 교양이 있는 편이고, 대리청정이나 중대장 등 자신이 경험했던 지식에 대해서는 의외로 꽤 전문가다운 모습도 보여 준다. 이후 왕으로서의 경험치가 쌓이자 의외로 계략을 쓰는 면모도 보여주는데, 괴논리로 가톨릭 허통 문제를 넘기거나 영국-스페인 사절들에게 죄수의 딜레마를 적용하여 경제진흥책을 뽑아내는 모습들을 보면 사실 평범한 재주는 아니다.
똑게의 스테레오타입답게 주 관심 분야는 대체로 노는 쪽이다. 작중 그가 하는 독백을 보면 인(터넷)생이라도 살다 온 것인지 별의별 밈에 통달해 있는데다, 스타크래프트도 즐겨 했고, 리그 오브 레전드에 빠져서 행시 공부를 말아먹은 적도 한 번 있다. 조선 시대로 돌아온 이후로도 미래 사회에서 보고 온 여러 즐길거리를 만들어서 편하게 살기 위해 행동한다. 그렇다고 노는 것만 생각하는 건 아니고, 운동에는 관심이 많아서[7] 개인적으로 운동 기구를 만들어 단련하곤 하며, 작중에서는 지나가는 말로만 언급될 뿐이지만 기초적인 수세식 변기나 샤워시설 같은 편의 시설도 만들어 쓰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복잡한 편이다. 미래에서 아버지와 무척이나 닮았지만 조금은 다른 아버지를 경험해서 그런지 영종 또한 본인이 원해서 망가진 것은 아니라는 연민을 어렴풋이 느낀다.
아들인 이산(정조)에 대해선 미래를 통해 능력을 확실히 인정하고 신뢰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궁극적인 목표 자체도 '똑똑한 아들에게 왕위 자리를 잘 물려주기'에 가깝다. 다만 무작정 떠넘기려는 무책임한 성격은 아니다. 현실 역사에서 정조가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와 술담배에 찌들어 살다 죽은 것을 알고 있어서 이를 방지하고 유능한 아들이 더 편하게 일하면서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배경을 만들어 주려는 형태.
게으른 성품 탓도 있고 딱히 피를 좋아하는 냉혹한 기질을 가진 건 아니어서 유혈 숙청을 전혀 펼치지 않는다. 김한채가 요령을 피우며 깐족대도 비꼬는 독설은 할지언정 처벌은 행하지 않고, 가짜 역모 사건이 터지자 관련 인사들을 한데 몰아놓고도 '한바탕 잘 놀았다'라고 툭 던질 뿐, 전혀 처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에 대해 신하들은 오히려 더욱 공포에 떤다.
왕이 된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대리청정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있다. 내색은 안했지만 세자 시절 영조에게 당한 상처가 상당히 크기는 컸을 듯. 평양 여행을 앞두고 아들 이산에게 대리청정을 명하려 할 때도 이 트라우마 탓에 힘들어 했다.
얼빠 기질이 다분해 아내 혜경궁 홍씨를 아름답다고 언급할 때가 많고 광증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자색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얼빠 기질은 자식들에게 확실하게 유전되어(...) 세자 이산과 청연공주 모두 얼굴 보고 혼인했다.
안정적인 양위를 위해 저지른 분탕이 원체 스케일이 커져서 거한 착각을 부르고 있는데, 대내적으로는 기이한 술수로 사대부들을 휘두르고 권력을 거머쥔 절대군주로, 유럽에서는 계몽주의자들과 혁명을 막후에서 조종하는 적그리스도이자 리바이어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4. 기타
- 훤이 미래에서 사용한 윤관(允寬)이라는 이름은 사도세자가 생전에 사용한 자(字)다.
- 전생에는 공무원 시험때문에 바빴다던 사람이 노조 비기라던가 선동과 날조와 관련해 지나치게 잘 알아서 사실 시험 공부때 시험공부 말고 딴짓한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있다.
[1]
사실은 그 많은 연통들을 언제 다 읽느냐며, 대충 자신 욕을 하고 있을테니 적당히 그에 어울리게 은유적으로 쓴 연통을 연락망에 끼워넣어 알아서 그럴싸하게 해석하도록 한 것이었다. 절대 바보가 아니다
[2]
그리고 당시 기준으로는 이게 음행이다.
[3]
주인공과 독자가 생각하는 현대가 다르지만 어떤 점에서는 같다는 것을 이용한 해학적인 서술이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물질주의에 경도되어 부동산 불패를 숭상하는 현대인'이 있다.
[4]
실제 역사에서 사도세자의 후궁은 숙빈 임씨 (이 시점에선 양제) 임유혜 외에도
경빈 박씨 (생전에는 수칙) 박빙애를 비롯해 2명이 더 있었다. 그러나 작중 이 시점에서는 임씨 외 다른 후궁들은 들이기 전이어서 임씨가 유일한 후궁이었다.
[5]
실제로 본 역사의 사도세자는 임씨에게 냉담했을 뿐 아니라, 부왕에게 꾸중들을 것이 두려운 나머지 임신 사실을 알자 낙태를 시키려고까지 했었다. 임씨가 자신의 아들을 둘이나 낳은 뒤에도 세 모자 모두에게 냉담하고 무심했으며, 영조와 영빈 이씨도 이들에게 차갑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찌나 심하게 박대를 당했는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혜경궁 홍씨가 임씨를 딱하게 여겨 챙겨 줬을 정도라고. (한중록에도 혜경궁이 '임씨가 하도 홀대를 당하니 투기는커녕 동정심이 생길 지경'이었다고 기록했다) 한 마디로 본 역사의 사도세자는 임씨에게 다시 없을 똥차였다(...)
[6]
김귀남은 '스펙'만 보면 소학교도 마치지 못한 팔순 노인에 불과하지만 성인에 가까운 성품과 특유의 통찰력을 가지고 있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대단히 능숙해서 신하들이 어어? 하다가 귀남의 뜻대로 움직이는 일이 잦다.
[7]
원래 사도세자는 무예에 관심이 많았다. 이윤관으로 살 적에도 행시 준비를 하면서 꾸준히 운동도 했었기에, 이훤으로 돌아오고 나서 근육 대신 살이 붙자 좌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