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데라우두 벨리니의 수상 이력
|
||
{{{#!folding ▼ |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
||
|
||
이름 |
이우데라우두 벨리니 Hilderaldo Bellini |
|
본명 |
이우데라우두 루이스 벨리니 Hilderaldo Luiz Bellini |
|
출생 |
1930년
6월 7일 브라질 상파울루주 이타피라 |
|
사망 | 2014년 3월 20일 (향년 83세)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5cm | |
직업 | 축구선수 ( 센터백 / 은퇴) | |
소속 | 선수 |
CR 바스쿠 다 가마 (1952~1961) 상파울루 FC (1962~1967)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 (1968~1969) |
국가대표 | 51경기 ( 브라질 / 1957~1966) |
[clearfix]
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선수.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이었으며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에서 브라질 대표팀의 주장으로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2. 선수 경력
1946년 고향 팀인 이타피렌세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1952년 CR 바스쿠 다 가마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바스쿠 다 가마에서 활약하며 실력을 인정받아 브라질 대표팀에 뽑혔고 1957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페루에서 준우승한다. 이후 브라질 대표팀의 주장이 되어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에 참가하여 단단한 수비로 브라질의 첫 우승에 공헌했다. 대회 후 1958 월드컵 올스타 팀에 선정되었다. 이후 1959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아르헨티나에서도 준우승한다.쥘 리메 컵을 들고 있는 벨리니와 브라질 선수단.
1962 FIFA 월드컵 칠레에도 참가했는데 이때는 마우루 하무스에게 주장 자리를 넘겨 줬고 여전히 뛰어난 실력으로 연속 우승을 달성한다.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에서 다시 주장으로 참가하지만 이때는 펠레가 심한 부상에 시달리는 등 브라질 대표팀 자체가 부진했기 때문에 조별리그 탈락을 막지 못했다. 이후 1969년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에서 은퇴하여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
3. 플레이 스타일
현란한 개인기는 없었지만 뛰어난 체력과 속도, 축구 지능을 가졌으며 단단한 피지컬로 수비의 중심을 이루었다.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우승할 때도 그의 든든한 수비력과 지원을 받아 브라질의 공격진들이 화력을 뿜어내어 득점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또한 대표팀 주장을 역임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리더십도 뛰어났는데 수비진을 잘 지휘했던 것은 물론이고 17세의 어린 나이에 대표팀에 승선한 펠레를 주장으로서 착실히 지도해줬고 펠레는 벨리니의 지도를 받아 대표팀에서 적응하고 재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었다고 한다.[1]
4. 사망
1996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2014년 3월 20일 상파울루에서 심장마비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상파울루 FC의 메인 홀에 안장되어 고향인 이타피라에 묻혔다.5. 기록
5.1. 대회 기록
- CR 바스쿠 다 가마 (1952~1961)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1952, 1956, 1958
- 토르네이우 옥투구나우 리바다비아 쿠레아 메이어: 1953
- 토르네이우 리우-상파울루: 1958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1958, 1962
5.2. 개인
-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1958
6. 여담
- 주장으로서 브라질의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끈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마라카낭 경기장 입구에 벨리니의 동상을 건설했다.
- 대회 우승 후 트로피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리는 세레머니를 시작한 선수이다. 벨리니 본인은 사진작가들이 트로피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이라고 했으며 사진이 전 세계에 게시되면서 이후 많은 팀들이 대회 우승 시 벨리니를 따라서 트로피를 높이 들어올리게 되었다.
[1]
펠레는 벨리니에 대해 '벨리니는 나의 영원한 캡틴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