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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f4952><colcolor=#fff> 이수현 李修賢|Danny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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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수현(李修賢, 간체: 李修贤) |
본명 | 이수덕(李修德) |
영문명 | Danny Lee Sau-Yin[1] |
별명 | 리써(李Sir), 아써(阿sir), 사우자이(修仔), 아사우(亞修), 수꺼(修哥)[2] |
출생 | 1952년 8월 6일[3] ([age(1952-08-06)]세) |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시 | |
국적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틀:국기| ]][[홍콩| ]][[틀:국기| ]]( 복수국적) |
직업 | 영화배우, 영화감독, 영화제작자 |
취미 | 유도[4], 수영[5] |
신체 | 175cm |
가족 | 아내, 딸 |
존경하는 사람 | 어머니, 장철, 런런쇼 |
언어 | 광동어, 북경어, 영어[6] |
데뷔 | 1971년 〈수호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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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ike a policeman when he doesn't laugh, and laughs like a police chief." 웃지 않을 땐 경찰관 같고, 웃을 때는 경찰서장 같다. |
2. 생애
2.1. 어린 시절~데뷔
보이스카우트 시절의 소년 이수현(출처: 이수현 weibo) |
1952년 상하이 출생. 1955년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해 빈민가에 거주했다. 홍콩 보이스카우트 출신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정의감이 넘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도시의 불량배들을 보고 화가 나 경찰이 되어 사회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으나, 아들의 안전을 걱정하던 어머니에게 단호하게 제지당한다. 또한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해 일찍이 꿈을 접고 중학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인명 구조원[7], 식당 종업원, 장식, 알루미늄 창문 설치[8] 등의 일을 하다 18세 때 쇼브라더스와 TVB가 공동으로 주최한 배우 양성 과정(Shaw Film Actor Training Course)[9]에 등록한다. 이 과정에는 연기, 음악, 중국어, 체력 수업 등이 포함되었다. 당시 쇼브라더스의 유명 감독이었던 장철은 우미와 함께 야간에 한 영화를 촬영중이었고, 양성 과정을 받고 있던 젊은이들이 쇼브라더스 훈련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지나가다 보게 된다. 그때 한 사람을 가리켰는데 그가 바로 이수현. 이튿날 이수현은 이들과 계악을 하게 되었는데, 장철은 이때까지도 그가 당시 18세인 것을 몰랐다고 한다.
2.2. 1970년대
첫 단독주연작 <강호행>에서의 이수현 |
1970년 데뷔 이후로 장철(張徹)의 <쌍협>, <대도왕오> 등에 출연해 얼굴을 서서히 알린 이수현은 1973년 장증택(張曾澤)[11] 감독의 <강호행>에서 첫 주연을 맡게 된다.[12] 또한 1974년 장철 감독의 <오호장>, <탕구지>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었으나 쇼브라더스와의 5년 계약이 곧 만료됨에 따라 그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대만에 갈지, 인테리어 설치 사업에 뛰어들지 고민하는 그에게 어머니는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충고하였고, 그는 어머니의 말에 따르기로 한다.
젊은 이수현은 캐스팅 될 기회를 얻기 위해 종종 쇼브라더스 제작부 근처에 남아 감독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고 한다
2.3. 1980년대
이수현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 <공복> |
1980년대는 이수현이 배우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1981년 쇼브라더스가 제작하고, 이수현이 처음으로 감독한 작품이자 모터사이클 영화인 <단정로>를 내놓는다. 이듬해 왕청(王青), 정칙사(鄭則仕)와 함께 <Friend 과타 Band>를 연출, 이는 경찰 영화의 물결을 일으킨 시초가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경영난의 문제로 쇼브라더스의 많은 직원들이 퇴직하게 되자 이수현 또한 회사를 떠나 그의 거취를 결정해야 했다.
이 시기, 영가전영유한공사(永佳影業有限公司, Always Good Film Co., Ltd.)의 대표자인 진훈기(陳勳奇)[17]는 이수현을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며 높이 평가하며 영가전영공사에 합류시킨다. 이 회사에서 이수현은 1983년 <마등아문>을 연출했으며, 이듬해에는 본인이 감독, 각본, 주연을 맡은 영화 <공복>을 내놓게 된다.[18]
이후 <류맹공복>, <황가반> 등을 통해 경찰 영화 제작이 자신이 갈 길임을 깨닫고, 1987년 그의 두 번째 영화사 만능영업유한공사(萬能影業有限公司, Magnum Films Limited)를 설립하게 된다. 이 회사는 향후 10년 동안 20여 편 이상의 홍콩 경찰 영화를 제작하는데, 그 중에는 주성치의 데뷔작인 <벽력선봉>, 영화감독 박찬욱이 본인의 저서에서 극찬한 <중안실록0기>(국내 출시명 ‘폴리스맨2’), 배급사로 참여한 오우삼의 전설의 명작 첩혈쌍웅 등이 있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는 이수현의 대표작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앞서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첩혈쌍웅>의 이수현과 주윤발의 역할이 뒤바뀐 <용호풍운>, 경찰로서의 역할과 가족으로서의 역할 갈등을 보여준 영화 <적담정>(국내 개봉명 ‘폴리스맨’), 장철의 제자들이 총 출동해 만든 장철 감독에의 헌정 영화인 <의담군영>(국내 개봉명 ‘ 흑전사’) 등이 있다.
2.4. 1990년대
<팔산반점의 인육만두>에서의 이수현과 그의 수사 팀원들 |
1990년대에 들어 전통적인 경찰 영화가 진부한 소재가 될 것을 염려한 이수현은 경찰 영화에 변화를 추구한다. 그는 수년 동안 홍콩과 마카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여러 범죄 사건들을 파헤쳐 이를 영화화한다. 이전의 그의 영화들이 주로 ‘경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90년대의 영화들은 ‘범죄자’ 및 ‘범죄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게 큰 특징이다
다만, 팔선반점의 인육만두에서는 아역 배우를 보호하지 않고 아동 학대 가해자 수준의 행동을 했다는 것이 평생 동안 남을 PTSD를 얻은 아역 배우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흑역사가 되었다. [21] 대표적인 예시가 직접 황추생에게 "진짜로 아역에게 욕설을 하며 고함치고 때려서 아역들이 공포에 질려 연기하게 만들라."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아역 배우에게 아동 학대를 하라고 명령한 셈이다.
이 시기 그의 영화사 만능영업은 매년 수많은 범죄 영화를 개봉하며 새로운 스타들을 배출해냈다. 일명 이수현 사단이라고 불리는 ‘이가반(李家班)’에는 황백문(黃柏文), 기가발(紀家發), 주문건(周文健), 육검명(陸劍明), 임경강(林敬剛) 등이 있다. 이 배우들은 주로 이수현의 수사반 팀원 역할을 맡았는데, 상기한 영화들에 매번 얼굴을 비친다
2.5. 2000년대
2000년대에도 열정이 식지 않은 수사반장의 모습을 보여준 <탈수> |
90년대 중반까지 활발했던 그의 작품 활동은 95년을 기점으로 영화출연이 눈에 띄게 줄었으며,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으로 인해 홍콩영화의 쇠퇴기라고 할 수 있는 2000년대 초반에는 매년 두세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조연 혹은 특별출연 정도로 팬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겼다. 역시나 대부분 경찰 역할을 맡았는데, 2000년 작품 <낭만총성>은 한국과의 합작 영화로 한국 배우도 나오고 한국어도 잠깐이나마 들을 수 있다. 특이한 주제의 경찰영화로는 2002년 작 <반수수특견대>가 있다. 대출 빚으로 고통을 받는 경찰들의 모습을 그렸는데, 영화 마지막에 빚 문제로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경찰들의 기사를 보여주며 이것이 당시 큰 사회문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대 후반에는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몇몇 작품들에 얼굴을 비쳤는데, 곽부성‧진혁신 주연의 <중안리자Gun>에서는 국장이 되었고
2000년대 그의 영화 출연작은 줄었지만, 이수현은 이 시기 브라운관에 진출하게 된다. 2000년 홍콩의 세관 이야기를 다룬 TV시리즈 <뇌정제일관>에서 주연을 맡았고, 이후 홍콩의 부패방지위원회를 다룬 드라마 <염정행동2007>, 중국 드라마 <혼인지양>[23], <연지패왕>[24], <욕혈중생> 등에 출현했으며, 2018년까지 활발하게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그의 드라마 출연작은 약 20여편이다.
2.6. 현재
2019년의 이수현(출처: 이수현 weibo) |
2000년대 그는 주로 캐나다에 거주하였으며, 2020년 현재는 홍콩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본토 영화 <순야>에 출연하였으나 거의 은퇴 상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야우마떼에서 본인 이름을 딴 전골집과 생선 요리집을 운영하고 있다. 팬이 사진 촬영을 부탁하면 같이 찍어준다고 한다.
한국의 하지윤 작가의 시나리오 <미씽키드>가 홍콩에서 영화로 제작될 예정인데 모인그룹 정태진 대표와 함께 제작을 맡았으며, 2021년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라고 한다.[25]
2020년 11월, 홍콩의 삼수이포에서 수 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한 모습이 목격되었다.[26] <극속일초>라는 작품을 촬영 중이며 배우들은 모두 신인이라고 한다.'
2021년 6월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반표차행동(反飆車行動)에 출연하였다.[27]
3. 영화
3.1. 출연작
('★' 표시는 이수현이 경찰 역할을 맡은 영화)연도 | 제목 | 비고 |
1971 | 애정뢰풍우 | |
쌍협 | ||
1972 | 소해여구 | |
수호전 | ||
1973 | 대도왕오 | |
악패★ | ||
강호행 | ||
대로천 | ||
칠십이가방객 | ||
자마 | ||
탕구지 | ||
오호장 | ||
1974 | 재성고조 | |
양기 | ||
다저가 | ||
홍콩73 | ||
성기다루 | ||
1975 | 슈퍼 인프라맨 | |
희소노매 | ||
애심천만만 | ||
대겁안 | ||
탑착선 | ||
칠면인 | ||
1976 | 무법무천비차당 | |
이소룡여아 | ||
오일리 매니악 | ||
유성호접검 | ||
색향미 | ||
1977 | 사조영웅전 | |
응소명책★ | ||
천룡팔부 | ||
성성왕 | ||
1978 | 자왈:식색성야 | |
류맹천왕 | ||
사조영웅전속집 | ||
전도석두포 | ||
1979 | 소리비도 | |
공작왕조 | ||
전왕、권왕 | ||
대명로가 | ||
차인대료박명자★ | ||
1980 | 팔절 | |
풍류잔검혈무흔 | ||
소림영웅 | ||
금수지 | ||
1981 | 왕패대로천 | |
목무왕법 | ||
단정로 | ||
정야★ | ||
집법자★ | 비디오 출시명: 경망쌍웅/흑백쌍웅 | |
자객렬전 | ||
도왕두천왕 | ||
살수영 | ||
채선 | ||
1982 | 도왕천왕군영회 | |
신조협려 | ||
살출서영반 | ||
Friend 과타 Band★ | 비디오 출시명: 퍼니펀 | |
사보형제 | ||
수심 | ||
가인유약★ | ||
용호쌍패천 | ||
1983 | 숙질‧축질 | |
마등아문★ | ||
1984 | 상해탄십삼태보 | |
대소불량 | ||
공복★ | ||
문신적녀인 | 비디오 출시명: 타투 | |
대사왕 | ||
1985 | 길인천상 | |
화심홍행★ | ||
류맹공복★ | ||
1986 | 황가반★ | |
형제★ | ||
류맹영웅★ | ||
대객박차 | ||
1987 | 의본무언★ | |
강호정★ | ||
철혈기경★ | ||
강호정2-영웅호한★ | ||
용호풍운 | ||
영환습격 | ||
1988 | 벽력선봉★ | |
용호지다성★ | 비디오 출시명: 영웅복성 | |
적담정★ | 비디오 출시명: 폴리스맨 | |
1989 | 장지웅심★ | |
흑전사 | ||
최가박당5 | ||
첩혈쌍웅★ | ||
1990 | 풍우동로★ | |
절교지다성★ | 비디오 출시명: 도전자 | |
마등친가★ | 비디오 출시명: 전장 | |
성전풍운★ | ||
붕당★ | 비디오 출시명: 의혈남아 | |
대호출격2★ | ||
첩혈강호★ | ||
1991 | 뇌정소혈★ | |
성시연가★ | ||
1992 | 전룡재야 | 비디오 출시명: 사막의 드래곤 |
고양의생★ | ||
차신★ | ||
반아종횡 | ||
사대탐장★ | 비디오 출시명: 첩혈가두3 | |
1993 | 벽혈신검 | |
오서기밀당안★ | ||
학지연★ | ||
팔선반점의 인육만두★ | ||
1994 | 중안실록지수상장시★ | |
향항기안지둔문색마★ | 비디오 출시명: 수사반장 | |
중안실록O기★ | 비디오 출시명: 폴리스맨2 | |
초생지독★ | 비디오 출시명: 폴리스맨3 | |
중안실록지범죄천재★ | 비디오 출시명: 중안실록 | |
중안실록경천계겁안★ | ||
중안실록지취금미★ | ||
1995 | 공복II-세븐캅스★ | |
아시아 커넥션★ | ||
적왕★ | 비디오 출시명: 강력반장 | |
월흑풍고★ | ||
1996 | 강호대폭풍2-김방제명★ | |
1997 | 탈사★ | |
1998 | 고혹자 5-용쟁호투★ | |
1999 | 언톨드스토리 3★ | |
화골룡여천년충★ | ||
2000 | 왕각적천공3-종극변연★ | |
칠조명★ | ||
천살★ | ||
백색풍폭★ | ||
낭만총성★ | ||
흑사회닷컴★ | ||
2001 | 영웅인물★ | |
소년쟁당★ | ||
2002 | 반수수특견대★ | |
광야와저★ | ||
구룡적천공지착애마부 | ||
2003 | 실쟁72소시★ | |
호정★ | ||
구룡적천공지타락가★ | ||
2004 | 중안리자Gun★ | |
2008 | 탈수★ | |
화화형경 | ||
2009 | 붉은 강 | |
2010 | 크로싱 헤네시 | |
슈퍼 플레이어 | ||
2004 | The Reven | |
2005 | 도망자적말일 | |
2018 | 순야 | |
2021 | 반표차행동 |
3.2. 감독작
연도 | 제목 | 비고 |
1981 | 단정로 | |
1982 | Friend 과타 Band | 비디오 출시명: 퍼니펀 |
1983 | 마등아문 | |
1984 | 공복 | |
1985 | 타착차 | |
1986 | 황가반 | |
1987 | 철혈기경 | |
1991 | 용적전인 | 국내 출시명: 도성타왕 |
1992 | 고양의생 | |
1993 | 팔선반점의 인육만두 | 최근에는 아동 학대 논란을 받고 있는 영화다. |
1995 | 적왕 | 비디오 출시명: 강력반장 |
2020 | 극속일초 |
4. 이수현 사단
4.1. 그가 발굴한 배우들
‧ 주성치(周星馳): 80년대에 드라마 배우,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 등으로 활동하던 주성치를 영화계에 데뷔시킨 인물이 바로 이수현이다. 이수현 사단의 황백문이 감독한 <벽력선봉>으로 데뷔한 주성치는 이후 동 감독의 <풍우동로>, 이수현이 연출한 <도성타왕> (원제 ‘용적전인’) 등에 출연하지만 그 이후로는 각자의 길을 걷는다. 이수현은 주성치의 몸값이 올랐을 때도 예전과 같은 개런티를 주었으며, 영화의 사소한 부분까지 개입하는 주성치를 보고 ‘개 같이 일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론은 두 사람에 대한 가십 뉴스를 끊임없이 만들어 냈으며, 수십 년이 지난 현재에도 종종 이러한 기사를 볼 수 있다. 진실은 당사자들만이 아는 일. 어쨌든 주성치는 <소림축구>로 21회 홍콩 금상장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수상 소감에 이수현의 이름을 언급하며 옛 스승에게 감사를 표했다.[28]‧ 성규안(成奎安): 홍콩 영화의 4대 악인 중 한 명.[29] 인상 한 번으로 뭇사람들을 제압하는 엄청난 마스크의 소유자인 그는 실제로 암흑가의 조직원이었다고 한다. 감옥 생활 2년 후 출소하고 영화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그를 1978년 이수현이 발굴하였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성규안은 이수현을 ‘사부’라고 부르며 생전에 존경하며 잘 따랐다고 한다. 그는 1984년 <황가반>에서 처음으로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의 실수로 영화 소품으로 쓴 포르쉐를 망가뜨렸다고(...) 이 일로 이수현은 그를 몇 시간 동안이나 공개적으로 꾸짖었다고 한다
‧ 장가휘(張家輝): 실제 경찰 출신이었던 장가휘는 경찰 일을 그만두고 이수현의 영화사에서 일을 했다. 그의 데뷔작은 이수현이 제작한 1989년 <장지웅심>. 공교롭게도 경찰학교 생도 역할이다. 교관 역을 맡은 이수현은 영화에서 장가휘와 진국방(陳國邦)을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참된 스승의 역할을 맡았는데, 이후 장가휘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들은 8편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는 등 영화처럼 실제로도 두 사람의 사이가 좋은 것 같다. 그중 좋은 캐미를 보여줬던 영화는 형과 동생으로 출연한 <붕당>(국내 출시명 '의혈남아'), 경찰과 날라리(?)로 출연한 <화골룡여천년충>이 있다. 함께 한 작품 중 가장 최근작으로는 2009년의 <붉은 강>이 있다.
‧ 노혜광(盧惠光): 라오스 출생이며 무에타이 챔피언인 노혜광이 홍콩의 할리우드 이스트(Holly Wood East)라는 디스코에서 일할 당시 많은 이들이 그에게 영화계에 진출하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이수현도 그 중 한명이었다고. 그 결과 1985년 영화계에 데뷔한 노혜광은, <황가반>, <철혈기경>, <벽력선봉> 등의 영화에서 경찰 역할을 맡았고, 노혜광이 이수현의 식당을 추천하는 등 최근까지도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인 것 같다.
4.2. 이수현 수사팀
주로 1990년대 이수현의 수사물 시리즈에서 수사팀원 혹은 경찰 역할으로 나왔던 배우들은 다음과 같다.‧ 육검명(陸劍明): 홍콩의 감독이자 배우, 영화제작자. 70년대부터 <금수지>, <Friend 과타 밴드>, <마등아문> 등 많은 이수현 영화에 함께 출연하였다. 수사 팀원은 아니나 <철혈기경>, <초생지독>에서 경찰 역할을 맡았다. 영화 <차신>의 감독이기도 하다.
‧ 황백문(黃柏文): 이수현과 가장 많은 작품을 함께한 사람이라면 단연 황백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TVB 출신인 그는 이수현의 영화사 ‘만능영업’에서 <벽력선봉>, <풍우동로>, <뇌정소혈> 등의 작품을 기획하고 연출했을 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약 30여 편의 영화에 이수현과 함께 출연하였다. 대부분 이수현의 동료 역할로 출연하였는데, 특이하게도 <공복>에서는 이수현과 대치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후 10년이 지나 만든 <공복2>는 원작 <공복>과는 전혀 별개의 내용이지만, 황백문이 주연을 맡았고 동료 경찰인 이수현과는 펄펄 날아다니던 라떼 시절을 회상한다.
‧ 기가발(紀家發): 주로 민소매를 입으며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형사. 90년대 이수현의 수사 시리즈에 수사 팀원으로 등장한다. <팔산반점의 인육만두>에서는 이수현의 여자들을 유혹하는(?) 플레이보이적 면모를 보였으며, 항상 이수현의 부하 직원으로 나오다가 <학지연>에서는 이수현의 상사 역할을 맡았다.
‧ 주문건(周文健): <적왕>에서 이수현의 수사팀원으로 나왔으며, 다른 수사 시리즈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아시아 커넥션>에서 이수현과 함께 동료 형사로 주연을 맡았으며, <공복2>에서는 황백문과 파트너로 수사하는 열혈 형사의 역할을 맡았다.
‧ 임경강(林敬剛): 이름을 홍콩 식으로 읽으면 람킹콩(Lam King-Kong)으로 일명 KK라고 불린다. 이수현의 수사물에서 팀원 역할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전장>에서는 이수현의 여동생의 남자친구 역할, <붕당>에서는 장가휘의 친구 역으로 등장하는 등 약 10편의 이수현 주연 영화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 관보혜(關寶慧): 이수현 수사팀의 홍일점. 혼자 여자이다 보니 남자들 틈에서 놀림을 당한다. 겁이 많아서 살인 사건 현장에서 증거물 등을 보며 놀라기도 하지만 꿋꿋이 자기 몫을 해낸다. <팔산반점의 인육만두>에서는 반장 이수현을 짝사랑하는 수사 팀원으로 나왔다.
‧ 번소황(樊少皇): 1960년대부터 다양한 고전극과 현대극에 출연했던 번매생(樊梅生)의 아들로 이수현의 몇몇 수사시리즈에 수사 팀원으로 활약했으나 비중은 미미했다. 그러나 <초생지독>(국내 출시명 ‘폴리스맨3’)에서는 주연으로서 신입 경찰관을 열연했다. 일본 성인 만화를 홍콩에서 영화로 만든 리키오의 주인공을 맡았으며 견자단의 엽문 시리즈에서 금산조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다.
5. 기타
5.1. 경찰 전문 배우
데뷔 이래 총 70여 편의 영화에 경찰 역으로 출현하여 많은 홍콩영화 팬들에게 ‘이수현=경찰 전문 배우’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그의 경찰로서의 역할은 홍콩 영화의 단골 역할인 형사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새내기 경찰, 교통 경찰, 사복 경찰, 열혈 형사, 수사 반장, 상급 경찰관(총경, 국장 등), 경찰학교 교관 등 다양한 계급을 소화해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그는 규칙과 규정을 고수하지 않는 유연한 모습그의 경찰에 대한 애정은 'Lee Sir(이 경관님)‘이라는 별명으로 일상생활에도 이어진다. 실제로 홍콩 경찰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며, 순직한 경찰 가족들에게 기부 활동을 하는 등 스크린 밖에서도 홍콩 경찰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홍콩 경찰에서는 그의 노고를 치하하며 여러 상을 주었다고
5.2. 장르적 다양성
이수현을 <첩혈쌍웅>의 열혈 형사로만 기억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수현이 중화권 최초의 슈퍼히어로였으며, 심지어 이소룡의 역할을 맡은 적도 있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신선할 것이다. ‘이수현’ 하면 경찰 전문배우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경찰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맡았으며 그가 출연한 영화적 장르의 다양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액션·경찰 영화: 그의 필모의 약 절반 이상이 경찰 영화이다.
‧ 무협 영화: 장철의 무협 장르로 대비한 그는 70년대 초 다양한 무협물에 출연하였다. 초반에는 단역에 불과했지만, <대도왕오>, <탕구지>, <오호장> 등에서는 꽤나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1976년에는 초원의 대작 <유성호접검>에서 조연을 맡았다. CG가 가미된 무협 영화 <천룡팔부>에서는 주연을 맡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주로 경찰 영화에 출연하면서 무협의 비중이 줄었지만 80년대 초에 <목무왕법>과 <신조협려>[31] 출연하였으며, 1993년에는 <벽혈신검>에서 열연하였다.[32]
‧ 도박 영화: 1970년대 이수현은 <악패>, <대로천>, <류맹천왕> 등의 도박 장르 영화에 출연하였다. <류맹천왕>에서는 나름 프로겜블러였으나 1990년대 왕정의 <절교지다성>(국내 출시명 '도전자')에서는 도알못의 극치를 보여준다. 또한 <왕패대로천>, <도왕두천왕>, <도왕천왕군영회> 등의 80년대 도박 영화에서도 조연으로 출연하였다.
‧ 슈퍼 히어로 영화: 앞서 언급한 <슈퍼 인프라맨>에서 20대의 젊은 이수현은 지구를 지켰다. 다만 이 영화는 일본식 특촬물에 큰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 멜로·애정 영화: <애심천만만>, <이소룡여아> 등이 있다. 이수현의 필모를 잘 살펴보면, 멜로 장르가 아니더라도 데뷔 초인 70년대는 키스신 같은 애정신이 왕왕 있었으나 80년대 이후에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 모터사이클 영화: 이수현의 감독 데뷔작이자 청년들의 레이싱 대결을 그린 <단정로>, 폭주족들의 모습을 그린 <무법무천비차당>, 임달화가 레이싱의 신으로 나온 <차신>, 폭주족들을 교통 경찰들이 추격하는 <철혈기경> 등이 있다. 이수현은 레이싱을 좋아하는지 <벽력선봉>, <첩혈쌍웅> 등에서도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33]
‧ 괴수 영화: <오일리매니악>, <성성왕>, <대사왕> 등이 있다.
‧ 코미디 영화: 왕청(王青) 등과 공연한 <길인천상>·<Friend 괴타 Band>·<마등아문>, 죄수 역으로 출연한 <최가박당5>, 도박 영화이자 코미디 영화인 왕정 감독의 <절교지다성> 등이 있다.
5.3. 영화에 대한 그의 생각
"많은 돈을 벌고 싶지 않고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이수현은 영화 제작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의 영화사인 만능영업에서 제작한 작품들 중 메이저급 작품들이 거의 없는 것도 이와 관계있다. 이수현을 제외한 배우들은 대부분 마이너 배우들이라 개런티를 많이 주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손해를 본 적도 거의 없고, 그만큼 번 돈도 많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늘 새로운 영화를 시도하고, 신인 감독을 육성하며, 신인 배우를 지원해왔다. 황추생은 < 팔선반점의 인육만두>로 금상장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성규안은 국민 악역 배우가 되었다. 장가휘 또한 지금도 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2009년에는 금마장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가 데뷔시킨 배우 중 가장 성공한 배우는 단연 청출어람 주성치. 다만 전술한 대로 현재는 그 둘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5.4. 애연가
이수현이 출연한 현대극 대부분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실내 흡연이 허용되었던 8~90년대 영화에서는 경찰서, 식당 안에서 흡연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일상생활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자주 노출되었다. 몇 년 전에는 파파라치에 의해 아내와 맞담을 하는 모습이 찍혔다. 최근에는 시가를 즐겨 피우는 듯하며, 본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시가를 피우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5.5. 여담
‧ 홍콩 연예계에서 인정받는 효자이자 영화에서의 모습처럼 의리가 넘친다고 한다. 장철에게 발탁되었으나, 적룡‧강대위 등에 밀려 큰 역할을 맡지는 못했지만 항상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2002년 장철 감독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강대위와 함께 장례식을 책임지며 스승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제자로서의 존경을 표현했다. 또한 후배인 성규안의 임종을 지키며 후배와 동료 배우로서의 의리를 지켰다고 한다. 홍콩 영화계에서 이런 그를 ‘수꺼(修哥, 수 형님)’라고 부른다.‧ 많은 작품에서 성우가 그의 광동어 더빙을 하였다. 그 이유로 그의 대표작인 <공복>, <황가반>, <벽력선봉>, <첩혈쌍웅> 등에서는 그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다만 <성전풍운>이나 <아시안 커넥션>, 그리고 90년대의 중안실록 시리즈 등에서는 이수현 본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1]
데뷔 초에는 영문명을 사용하지 않고 크레딧 영문 이름은 Li Hsiu Hsien으로 표기되었다. 1984년 <대사왕>에는 Li Hsiu Hsien으로, 1985년 <류맹공복>에는 Lee Siu Yin으로, 그리고 1986년 <대객박차>에는 Danny Lee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그가 ‘Danny'라는 영문명을 사용한 것은 1980년대 중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2]
나이가 들고는 후배들에게 수꺼(수 형님)라고 불린다.
[3]
사자자리이며, 그래서인지 웨이보 계정의 프로필사진도 사자이다.
[4]
10대 때 검은띠를 취득했다. 소년 시절 그는 보이스카우트 단원이었는데, 이곳에서 유도를 무료로 배웠다는 썰이 있다.
[5]
단독 첫 주연작 〈강호행〉에서는 바다에 뛰어들어 여주인공을 구해주었고, 장철 감독의 <탕구지>에서는 수영 실력을 자랑하는 Chang Shun 역할을 맡았다.
[6]
임영동 감독의 작품 〈성전풍운〉에서 영어 대사를 매끄럽게 소화해냈다.
[7]
인명구조원 자격증이 있다고 한다.
[8]
쇼브라더스와 계약하기 전까지 계속 이 일을 했다.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알루미늄 창문 디자인, 만들기 등을 배우고 어린 작업자들을 이끌고 창문 설치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가 일하던 알루미늄 공장은 뉴기니섬과 거래를 하고 있어 야간근무조도 있었는데 주간 근무자들의 일급은 17HKD, 야간 근로자들은 34HKD여서 쇼브라더스 양성과정에 합류하고 나서는 오히려 월급(750HKD)이 줄었다고 한다.
[9]
오토바이 사고로 20대에 세상을 떠난 부성(傅聲) 그의 동기라고 한다.
[10]
이수현에게 큰 역할을 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는지, 장철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이수현이 인기를 얻은 건 내 덕이 아니다. 나는 단지 그를 영화계로 데려왔을 뿐이다."
[11]
장증택은 <강호행> 촬영 때 이수현 때문에 한동안 휠체어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수현은 격투신 리허설을 하다 뒤에 있던 감독의 무릎을 차서, 이틀 뒤 장증택은 휠체어를 타고 촬영장에 나타났다고 한다. 마음이 안 좋아서 감독에게 여러 번 사과를 했지만 감독은 계속 이수현에게 야단을 쳤다고. 당시 성격이 고약했던 이수현은 옷을 찢고(...) 이제 영화를 안 찍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12]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은 당시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던 쇼브라더스의 간판 스타 하리리(何莉莉)인데, 영화는 한국에서 따로 개봉은 하지 않았다.
[13]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나, 최초로 대형 애드벌룬을 띄워 홍보하는 등 쇼브라더스에서 많이 밀어줬다고 한다.
[14]
이소룡 닮은 사람 찾기 대회에 출전해서 1위를 한 덕분에 정패가 직접 스카웃해왔다고 하는데, 도통 안 닮았다.
[15]
추후 인터뷰
#에 따르면 원해서 출연한 것은 아니었고 선택권이 없었다고 한다. 사후 5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도 그렇지만 1970년대 당시도 이소룡은 엄청난 스타였기 때문에 이는 당시 거의 신인 수준인 이수현에게도 부담스러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16]
이 두 영화와 앞서 언급한 <슈퍼 인프라맨>은 컬트적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인스타그램을 보면 DVD는 물론 인프라맨과 등장 괴수들의 피규어까지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17]
이수현은 1982년 진훈기가 감독· 주연한 영화 <가인유약>의 마지막 장면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18]
<공복>이 이수현의 커리어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1970년대에도 <악패>, <응소명책> 등에서, 80년대 초에는 <집법자>, <마등아문> 등에서 경찰 역을 맡았지만 ‘경찰=이수현’의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1980년대, 특히 <공복> 이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대본을 9개월간 수정하였으며, 경찰에 대한 그의 지식과 열망, 그리고 기대를 이 영화에 쏟아부었다. 덕분에 그는 <공복>으로 21회 금마장, 4회 금상장의 2관왕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과장되었다고 말했으나, 홍콩 경찰들은 영화의 묘사가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 영화를 매우 좋아하였으며, 이 때부터 오랫동안 이수현은 Lee Sir(이 경관님)이라고 불리며 홍콩 경찰의 아이돌이 되었다. 또한 이 영화의 총격전에 사용된 일부는 오우삼(吳宇森)이 <영웅본색>에서 사용했으며, 이 영화의 다큐멘터리적인 모습은 황지강(黃志強)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19]
우리나라에는 <도둑들>로 잘 알려진 임달화와 <무간도> 황국장 역할을 맡은 황추생은 90년대 이수현의 다양한 수사시리즈에서 ‘범죄자’의 역할을 맡았다. 현재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지만 두 배우 다 연기력이 나무랄 데 없어서 그들의 색다른 이미지는 충격 그 자체.
[20]
수사반장으로 등장한다. 살인마가 자신이 죽인 사람의 고기로 만든 만두를 수사반원들에게 수고한다고 줄 때, 그 혼자만 만두는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해서 안 먹어서 그 수사반에서 유일하게 인육 시식을 피했다. 나중에 증거를 잡아 그 범인을 잡고 심문해 뼈만 남은 시체들의 살은 어떻게 처리했냐고 묻던 형사들에게 살인마가 당신들에게 준 만두에 그 고기가 있다고 밝히자 그 만두를 맛있게 먹었던 형사들은 당연히 구토... 그리고 그걸 먹지 않았던 이수현은 홀로 찡그리며 기분 나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안 먹길 잘 했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
[21]
실제로 네 명의 아역배우 중 두 명은 배우 활동을 중단했으며 나머지는 영화에 출연하되 호러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22]
관련기사
#에 의하면 이수현은 영화 속의 강아지와 함께 먹고 생활하는 등 자신의 강아지처럼 키웠다고 하며, 실제로도 이 강아지와 친밀해졌다고 한다. 또한 이수현의 웨이보에서는 Bruce와 Paddy라는 강아지의 사진을 종종 볼 수 있으며 이들은 실제 이수현의 반려견인 듯하다.
[23]
같은 장철 사단 출신의 강대위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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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우 조현재와 부자지간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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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15초 쯤에 이수현(Lee Sau-Yin)의 이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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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황광량, 장요양, 하가구로 이 4명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영화로는 임영동 감독의 <감옥풍운>이 있다. <벽력선봉>에는 장요양을 제외한 3명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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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약을 먹고 쓰러지는 장면으로 30초 정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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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을 시작할 때 감독은 이수현에게 살을 빼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수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원래 약간 통통한 편이었던 이수현은 결국 역사상 가장 뚱뚱한 금사랑군이 되었다고(...) 이후 이수현은 고전극에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경찰 이미지가 너무 굳어진 것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33]
두 영화의 오토바이 신에서 이수현이 쓴 헬멧에는 본인의 회사 ‘만능영업’의 영어 이름 ‘MAGNUM'이 쓰여 있다. 회사 깨알 홍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