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새벽의 연화의 등장인물. 성우는 에가와 히사오2. 작중 행적
수원, 연화, 학 삼총사가 눈밭에서 놀다가 감기가 걸렸을 때 간병하러 온다. 위압감 넘치는 모습에 연화는 물론 학조차 압도당하지만 수원만큼은 그대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헌도 사납기 그지없는 모습과 달리 수원을 사랑하고 있어서 병 옮긴다는 말에 자기는 병따위에 지지 않는다며 수원에게 어머니가 걱정하니 병따위 극복하라고 말하고 사라진다.2.1. 과거
대신관은 신통력을 지녀서 첫눈에 연희가 비룡왕의 혈통이라는 걸 알아냈는데, 연희가 자신 몰래 신전에 온 걸 눈치챈 유헌은 무섭도록 일을 추궁한다. 유헌은 얌전히 연희를 데리고 가려고 했지만 일이 "왜 연희의 혈통을 숨겼느냐. 설마 비룡왕의 핏줄을 혼자 차지하려는 속셈이 아니냐"고 반박하자, 분노한 유헌은 동생인 일에게마저 주먹을 휘두른다. 신관들이 연희네 가족들을 찾아내자 격노한 유헌은 그대로 대신관을 필두로 모든 신관들을 탄압하게 된다. 이것이 초반부에 나왔던 유헌이 앞장서서 신관들을 탄압했던 이유. 하지만 연희네 가족은 대신관이 무슨 잘못을 했냐며 그는 그저 비룡왕의 후예들을 걱정한 것뿐인데[3], 그런 대신관이 산채로 화형당해 죽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한다. 연희의 모친은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죄책감에 목을 매달아 자살했고, 연희도 죄책감에 빠지지만 유헌을 사랑했기 때문에 차마 그에게 책임을 묻지 못했다.
3. 평가
...그래? 이제야 알겠어. 왜 유헌 백부님이 왕이 될 수 없었는지.
유헌에 대한 연화의 평가
유헌에 대한 연화의 평가
형님만은 왕으로 만들면 안된다고.
유헌에 대한 일의 평가
유헌에 대한 일의 평가
한 마디로 말해서 완벽한 애국자이며 자기 사람들에겐 최고의 인물이지만 너무 잔인하고 성급한 것이 문제였던 인물. 작중에서 독자들에게도 평가가 갈리지만 최소한 '왜 왕이 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이해 할 정도이다.
3.1. 정치적인 면
왕자였던 시절부터 나라를 위해서 발벗고 나서는 타입이어서 고국내에서 사랑을 받고 있었다. 대다수가 유헌이 차기 왕위계승자라고 의심치 않았고, 적어도 국민에게는 든든한 존재여서 몇몇 신관 탄압 같은 잔악한 행동에도 옹호받고 있었다. 일이 유헌 대신 왕위에 오르자 송 문덕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반가워하지 않았을 정도였다.유헌 사후 일이 다스린 고화국은 점점 쇠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은 수원이 모반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모반할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고, 평민들에게도 일은 무능하다고 비판받았다.
3.2. 독선적이고 잔혹하지만 유능하고 인정많은 정복군주
온화한 평화주의자인 동생 일과는 정반대로 호전적이고 성미가 급하다. 다만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아끼고 왕족치고는 평민을 대하는 태도가 너그러운 면이 있어서 학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단, 현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인물로는 대표적으로 징키츠칸을 들 수 있다. 실제로 당시 몽골 내 국민의 평가와 국외 침략당한 외국 나라에서 평가가 유헌과 몹시 유사하다.
사실 두 사건 모두 명분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진 나라 사건은 승리를 위해서, 신관 탄압건은 당시 신관들의 권력은 제3자였던 연희가 보기에도 왕권을 위협할 정도였다. 신관 탄압은 차기 왕으로서 미리 왕권을 확실하게 잡아두기 위한 조치였다. 적어도 아무런 대책없이 비룡왕 신앙에 매달리는 동생 일에 비해, 신에게 의지하고 않고 인간으로서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하는 등,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납득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그 해결과정에서 잔혹하고 독선적으로 행동하긴 했지만, 사실상 차기왕으로 거의 확실시 되던 당시의 유헌에게는 그 정도의 독선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유헌의 행동은 자국인 고화국의 백성들에게도 그렇게 나쁜 평가를 받지 않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군에게는 매우 관대하지만 적에게는 일절 자비없는 모습이었던 유헌은 나라 안에서는 아버지나 동생과는 비교할수도 없을만큼 큰 지지를 받았다. 고화국의 백성들 입장에서도 다른 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이, 본인들이 타국의 침략과 수탈을 당하지 않는게 더 중요했다. 그러한 위협들 속에서 자신들을 보호해준다고 생각한 유헌을 영웅으로 추앙하고, 그가 사망하고난 뒤에도 계속 지지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는 일의 통치가 유헌이 살아있을 적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일은 적국에게 약탈한 땅을 다시 돌려주어 자국의 자원을 줄게 만들고, 그 상황에서 각 부족에 대한 통제도 제대로 하지 못해 각 부족장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일구거나 백성을 수탈하는 등, 그들이 왕권에 도전할 군벌 세력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이에 당연히 왕권은 나날히 약해지고, 부족장들도 서로 합심하지 않았으며, 적국의 수탈이 갈수록 늘어나는 등, 고화국은 심하게 망가져 갔다.
만약 일의 통치가 더 이어졌다면 굳이 수원이 아니더라도 불의 부족이던 땅의 부족이던 먼저 쿠데타를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였다. 실제로 현 땅의 부족장 이 근태는 갓 즉위한 수원의 면전에다 일 왕이 계속 굴욕을 감내하며 고화국을 위험에 방치했다면 모반을 일으킨 건 자기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였고, 불의 부족장이였던 강 수진은 일 왕의 서거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반란을 일으켰다. 물론 근태는 수원의 진면목을 보고 그에게 진심으로 충성하게 되었으며, 수진은 그의 모반을 예상하고 준비를 해둔 수원과 중간에 합류한 연화 일행에게 처절하게 패배해 사망했지만.
유헌이 단순히 폭력적이거나 독선적인 사람만은 아니었다는 것은 일 왕이 즉위했을 당시를 보면 알수 있다. 당시 유헌의 세력은 일에게 왕위를 물려준 주남왕의 결정에 분개해 했지만, 당사자인 유헌은 오히려 그 결정에 승복하고 주변인들을 다독였다.
3.3. 하지만 군주가 아니다
그러나 유헌은 일이 왕이 되었음에도 자신의 처신을 바꾸지 않았다. 실제 역사에서 조선의 경우 양녕대군은 한때 세자였으나 세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는 비록 동생이더라도 존대를 하였다. (유헌이 존대를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게 아니라, 왕과 왕자 사이에는 그만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일이 왕위에 오른 이상 더이상 유헌은 독선적일 수는 없었고, 유헌의 모든 행동은 일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허나 유헌은 왕세자 시절 가진 세력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들은 일 왕이 아닌 유헌에게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었고, 그가 왕이 되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일 왕의 시대에는 유헌의 사병이었으며 당시의 가장 강대한 세력이었던 이들은 일 왕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유헌도 동생을 생각하며 자신의 측근들이 선을 넘지 않도록 막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돌려말하면 유헌의 생각이 변하는 즉시 그는 얼마든지 왕위를 찬탈할 수 있는 왕권의 최대 위협이 될 수 있었다는 소리다. 실제로 유헌의 세력을 그대로 물려받은 수원이 일 왕의 찬탈을 기도하자, 수원 이전에 유헌의 수하였던 그들은 매우 신속하고 깔끔하게 반란을 성공시켰다.
유헌 자신도 왕위만 노리지 않았을 뿐이지 일의 의지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더 중요시 했고 그에 따라 움직였다. 그 행동에 쓰인 것이 바로 자신의 사병이었다. 왕위를 물려받을게 확실시 되었던 왕세자였을 때도 유헌의 태도와 활동은 아슬아슬했는데, 일이 즉위해 왕이 될 수 없는데도 그 태도를 유지하는 건 결코 용인될 수 없었다. 유헌은 신관들이 왕권을 약화시키는 것을 반대하여 그들을 몰락시켰는데, 이젠 그 스스로가 동생의 왕권을 위협하는 군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라를 위한답시고 카시를 죽인 일은 끝내 유헌마저 죽게 만들었다. 왕이 왕비에게 휘둘릴 것을 걱정했다든지 어땠는지 간에 엄연히 왕의 부인이자 왕비였던 카시를 시해한 일은 어떤 점에서도 변명이 불가능한 실책이었다. 유헌은 정치적으로는 왕비를 독단적으로 시해하는 반역이라고 해도 할 말 없는 중죄를 저질렀고, 인륜적으로는 자신의 제수이자 조카의 어머니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른 것이다.[7]
물론 유헌의 입장에서 카시는 먼저 나온 진나라의 고비 신관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인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신을 믿지 않는 첫째와 신을 믿는 둘째, 그리고 둘째를 이용하려는 신관 세력이 3자의 시선으로 보면 지나치게 똑같다.
설령 카시에게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는 하나 유헌의 눈에는 비룡왕이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왕을 속이려는 신관 세력으로만 보여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때는 사룡의 힘조차 드러나지 않아 더욱 신관 세력이 말하는 비룡왕의 이야기가 헛소리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고비 신관이 타오 공주를 이용해 코우렌을 적대한 것과 사실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유헌이 카시를 처리한 방식은 그가 저질렀던 실수들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동생 일과 직접 카시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보다는 혼자 멋대로 판단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사용하며 독선적으로 행동했고, 지속적으로 카시를 견제하면서 운신의 폭을 줄인다는 온건한 방식 대신 왕비 시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사용하였다.[8]
유헌은 자신이 왕권을 위협했던 대신관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 것을 완전히 망각했고 이전의 처신을 고치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독선을 멈추지 않은 결과 유헌은 소중히 여겼던 동생에게 살해당하는, 비참하지만 자업자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최후를 맞이했다. 또한 이로 인해 아내 연희도 고통과 후회 속에 죽게 만들었고 아들 수원의 인생까지 꼬이고 말았다.
하다못해 카시를 죽이지만 않았어도 일이 유헌을 살해하는 골육상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이 유헌을 살해하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대사로 인해, 유헌을 죽인 이유가 비룡왕의 신앙에 미쳤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절대 아니다. 일의 비룡왕 타령은 매번 자신과 형을 비교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형제로서 아끼긴 하지만, 강압적으로 휘두르려는 유헌에 대한 반감과 질투심을 드러내기 위한 핑계에 가까웠다. 연희와 결혼하기 전의 유헌에게 했던 폭언도 그토록 원했던 비룡왕과 가까운 존재인 연희가, 하필이면 유헌에게 나타났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폭발해서 했던 실언이였다. 유헌을 죽였을 때 마지막으로 했던 말 역시 본심이 아니었고, 그를 죽인 이유는 비룡왕의 신앙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토록 폭력을 싫어하던 일이 자기 손으로 직접 형을 살해한 이유는 단하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만큼 진심으로 사랑했던 아내 카시를 죽인 분노와 원한 때문이였다.
신관 탄압 사건 이후 일이 카시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거리를 두게 되면서 형제간의 사이는 파국 직전까지 갔지만, 유헌의 아내 연희의 노력 덕분에 어느 정도 호전될 기미를 보였고 유헌과 일의 태도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일은 다시 유헌의 조언을 받아들이며 그를 신뢰하기 시작했고 유헌 역시 왕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동생의 옆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두 사람은 예전의 우애를 회복하고 있던 중이였다. 이 상태가 지속되었다면 완전히 화해한 유헌-일 형제가 서로 협동하며, 고화국을 더욱 부강하게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9] 하지만 유헌은 이러한 일의 신뢰에 카시의 암살이라는 최악의 배신으로 되돌려줬다.
유헌 입장에서는 아무리 나라를 위해서였고 동생을 슬프게 만들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고 해도,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친형에게 살해당했는데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이후 일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유헌만큼은 마지막까지 용서하지 못했고, 그의 아들이여서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조카인 수원에게까지 거리를 두는 인간불신에 시달렸다. 결국 일과 화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린 건 유헌이였다.
3.4. 주남왕의 책임
유헌과 일 형제의 아버지인 주남왕은 사망하기 직전에서야 유헌이 아닌 일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선택을 했고, 이 선택은 유력한 차기 왕이였던 유헌을 왕위에서 내침으로서 그를 따르던 세력이 불만을 가지는 최악의 수가 되었다. 주남왕이 상황을 최대한 좋게 해결하려 할 의지가 있었다면 아예 처음부터 유헌을 차기 왕으로 지명하든지,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일찍 일을 후계자로 선택해서 그의 입지를 키워줬어야 했다. 하다못해 일을 후계자로 선택하려면 그전에 유헌의 세력을 최대한 줄여놓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불만을 품은 유헌의 세력은 그대로 남게 되었고, 이는 왕으로 즉위한 일이 고화국 내에서 지지세력조차 없이 나라를 다스려야 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결국 유헌과 일과의 사이에서 감정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다가 카시의 죽음으로 폭발하면서, 고화국 왕실에서 2대에 걸친 골육상잔[10]이라는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1]
이 이야기를 들은 연화마저 안색이 새파래졌다.
[2]
그 때문에 진 나라의 코우렌 공주는 연화가 적국의 공주임에도 일 왕의 딸이기 때문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3]
실제로 대신관은 유헌이 느낀 것처럼 돌팔이가 아니라 정말 비룡왕의 핏줄을 알아볼 능력이 있었고, 더구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비룡왕의 핏줄에 대한 경의를 표하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연희의 가족들을 찾았던 것이었다.
[4]
연희의 일족은 자신들의 피에서 비룡왕이 재림할거라 믿었다. 그런데 정작 비룡왕의 현신은 전혀 상관없는 다른 혈통에서 나타났고, 결국 연희의 일족은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오히려 수명만 짧아지는 저주같은 병만 가지게 되었다.
[5]
유헌은 거짓말을 할 때 잠깐 침묵하는 버릇이 있다. 형제답게 그정도는 알 수 있다고 한다.
[6]
국내에서 일->영 불법번역으로 해당 화의 내용이 처음 알려졌다. 문제는 영어 번역에서 "ただの見習い巫女なら見逃してやった(평범한 견습 무녀라면 모른 척했다)"를 "She was just an apprentice shrine maiden, so I overlooked it(평범한 견습 무녀라서 모른 척했다)"로 오역했던 것. 유헌은 자기가 카시를 죽인 게 아니라고 억울함을 드러낸 것이 아니다. 카시를 죽인 것은 카시의 출신 때문이 아니고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수하였던 이들에게는 여전히 지지를 받고있다. 유헌이 카시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내로남불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
[8]
막말로 카시 살해의 진상이 밝혀진다면 유헌은 단번에 고화국의 영웅에서 왕비를 시해한 대역죄인으로 전락한다. 이런 대형 사고를 단지 국왕인 동생에게서 신관의 영향력을 없애겠다는 이유로 저질러 버린 셈.
[9]
예를 들면 유헌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영토를 넓혀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일은 적군에게 잔혹한 처분을 내리려는 유헌을 말리며 희생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말이다.
[10]
연화가 막지 못한다면 정말 끊임없는 집안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