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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8 18:35:09

윌리엄 드 그레이스토크

이름 윌리엄 드 그레이스토크
William de Greystoke
출생 1321년 1월 6일
잉글랜드 왕국 링컨셔 그림소프 성
사망 1359년 7월 10일(향년 38세)
잉글랜드 왕국 더럼셔 브란스페스 성
아버지 랄프 드 그레이스토크
어머니 앨리스 오들리
부인 루시 드 루시, 조앤 피츠휴
자녀 랄프, 로버트, 윌리엄, 앨리스
직위 제2대 그레이스토크 남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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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에 프랑스, 스코틀랜드 전선에서 활동했다.

2. 생애

1321년 1월 6일, 잉글랜드 왕국 링컨셔 그림소프 성에서 초대 그레이스토크 남작 랄프 드 그레이스토크와 초대 오들리 남작 휴 오들리의 딸 앨리스 오들리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아버지 랄프는 컴벌랜드, 웨스터모어랜드, 노섬벌랜드, 더럼 및 요크셔 등지에 광범위한 영지를 소유했으며, 1322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와 제2대 레스터 백작 토머스 플랜태저넷간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에드워드 2세 편에 서서 버러브리지 전투에서 반란군을 물리치는 데 일조했으며, 노섬벌랜드의 밀트퍼드 성에서 길버트 미들턴을 반역 혐의로 체포했다. 그러나 1323년 7월 14일 게이츠헤드에서 23세의 나이로 돌연사햇는데, 세간에서는 그가 아침 식사 중에 미들턴의 원수를 갚으려는 자가 넣은 독극물을 섭취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2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작위와 영지를 계승한 윌리엄은 1342년 성년이 될 때까지 라비의 제2대 네빌 남작 랄프 네빌의 후견을 받았다. 랄프 네빌은 1327년 윌리엄의 어머니 앨리스 오들리와 결혼해 제3대 네빌 남작 존 네빌을 비롯한 6남 7녀를 낳았다. 윌리엄은 1348년 11월 20일부터 1357년 12월 15일까지 의회에 간헐적으로 참석했으며, 백년전쟁에 잉글랜드 편에 참전해 싸웠고 1346~1347년 1차 칼레 공방전에 참전했다. 이후 흑태자 에드워드 휘아에서 복무했고, 1351 ~ 1352년 그로스몬트의 헨리 튜튼 기사단에 참여해 고대 프로이센을 향햔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을 때 동행했다.

1350년대 초, 윌리엄은 베릭 성의 수비대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1355년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에서 군사 작전을 벌일 때 이에 참여하려고 왕의 허락을 받지 않고 베릭을 이탈했고, 스코틀랜드인들은 이 때를 틈타 1355년 11월 베릭을 공격해 베릭 마을을 점거하고 성을 포위했다가 1356년 1월 에드워드 3세가 반격하자 물러났다.( 베릭 공방전) 그는 이 일로 왕실에 사과하고 벌금을 납부했다. 1353년 10월 훗날 그레이스토크 성으로 일컬어지는 자신의 집을 지을 수 있는 왕실 허락을 받아냈으며, 그레이스토크 가문 영지에 속한 모르페스 성의 재건을 담당했다.

1350년대 후반에 네빌스 크로스 전투에서 포로가 된 뒤 오랫동안 런던 탑에 갇혀 있던 스코틀랜드 국왕 데이비드 2세의 석방을 위한 협상에 참여했다. 협상은 베릭 성에서 이뤄졌고, 1357년 10월 3일 데이비드 2세가 100,000 스코틀랜드 마르크의 몸값을 지불하는 대가로 풀려나는 것으로 종식되었다. 1359년 7월 10일 양아버지 랄프 네빌이 소유했던 브란스페스 성에서 사망했으며, 그레이스토크의 성앤드류 교회에 안장되었다.

3.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