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1948년 발표된 트로트 가수 박재홍의 가요.작사 반야월[1] / 작곡 김교성.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고갯길인 박달재의 전설[2]을 배경으로 한 향토적이고도 구슬픈 가사와 그에 걸맞은 호소력 있는 멜로디를 통해 당시 대중들의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노래를 듣고 자란 많은 5070 세대들의 18번이 되었으며, 가요무대 20주년에서 제일 많이 선곡된 노래 1위를 당당하게 차지했다. 총 107번.[3]
이후 박재홍은 계속 음악 활동을 하다가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유정천리를 발표하여 또 다시 히트를 쳤다.
정준하가 무한도전에서 박명수와 말다툼을 하던 중, 박명수가 본인의 아버지가 ' 군산의 몽키스패너'였다고 하자 정준하가 이에 질세라 이 노래의 제목에 착안해 자기 아버지는 '울고 넘는 염천교'였다고 드립을 쳤다(...). #
참고로 가사에는 천등산 박달재로 되어 있으나 박달재는 천등산을 넘는 고개가 아니다. 천등산 북동쪽에 있는 시랑산과 주론산 능선을 넘어가며, 천등산을 넘는 것은 그 보다 서쪽에 있는 다릿재다.
여담으로 이 곡의 작사가 반야월이 가사 1절에 나오는 물항라의 의미에 대해 상당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는 가요무대에서 물항라는 옅게 물들인 비단이라고 밝힌바가 있다. 해방 직후에 박달재를 넘게 되었는데 마침 그 날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박달재를 지나다 성황당 하나를 발견했는데 거기서 젊은 부부가 부둥켜 않고서 이별하듯이 울음을 터트리며 통곡하기에 그 모습을 보고 떠올랐다고.
2. 가사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넘는 눈물고개
돌뿌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
도라지 꽃이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본다 산울림만 외롭구나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넘는 눈물고개
돌뿌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
도라지 꽃이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본다 산울림만 외롭구나
3. 박달재의 전설
노래에 얽힌 박달과 금봉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박달이라는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박달재 아래 마을에서 금봉이란 처녀와 만나게 되었다. 둘은 첫눈에 반하여 며칠을 즐거이 보냈으나 박달은 결국 과거 때문에 떠나야 했고, 장원급제하여 당당히 맞이하러 오겠노라 약조를 하였다. 금봉은 여행길에 먹을 수 있도록 도토리묵을 만들어 주고 몇 년을 기도하며 기다렸으나 결국 박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유인즉, 박달은 한양에 무사히 당도하긴 하였으나 머릿속이 금봉에 대한 일로 가득차 있었던 터라, 과거 시험까지 며칠의 나날을 금봉을 생각하며 시만 짓다가 낙방하고 만 것이었다. 금봉을 만나러 갈 낯이 없다고 생각한 박달은 한양에서 몇 년을 무위도식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금봉을 만나러 돌아갔는데, 마을에 도착하니 장례식이 한창이었다. 알고 보니 기다림에 지쳐 식음을 전폐한 금봉이 겨우 사흘 전에 죽어 버린 것. 이에 박달은 엎드려 통곡하고 박달재를 오르다가 금봉의 환상을 보고 쫓아갔으나 금봉을 잡으려는 순간 그녀는 온데간데 없고 박달은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상당히 안쓰러우면서도 조금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인데, 이 전설은 노래가 나온 후에 생긴 것이다. 반야월 선생이 노래를 지을 때 모티브로 삼은 것은 1946년 당시 공연을 위해 충주에서 제천으로 가던 중 길가에서 만난 젊은 부부의 이야기로, 남편이 서울로 돈을 벌러 가는데 그 이별을 슬퍼하며 울던 부부를 생각하며 노래를 지은 것이다. 다만 부부의 이름을 몰랐기에
이광수의 소설 "그 여자의 일생"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을 따 금봉이라는 이름을 넣은 것. 다만 완전히 노래에 의해서만 창작된 이야기는 아니며 기존에 존재했던 박달재를 매개로 한 양반과 평민 처녀의 사랑이라는 정형적인 설화가 노래의 창작 이후 디테일하게 다듬어진 것이라는 게 가능성이 높다.4. 기타
박달재 정상의 휴게소에는 이 노래가 온종일 울려퍼지고 있다. 한 곡을 내내 반복재생하는 건 아니고 여러 가수가 부른 판본을 모아 재생하는 방식. 덧붙여 이 휴게소에는 아주 크고 아름다운 남근상[4]과 가슴을 노출한 여인상 등이 있어 보수적인 관광객들을 민망하게 하고 있다.막무가내 중창단 13회에서 유상무가 노래 첫부분을 부르다 걸려서 박달재 입구로 갔는데,처음에는 입구에서 우는 척하고 끝내려 했으나,김병만이 나타나 안 울면서 넘으려 했다며 극기훈련에 가까운 괴롭힘으로 기어이 울면서 박달재를 넘었다.
[1]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을 부른 가수 진방남의 예명이다.(여담으로 진방남이라는 이름도 예명이며, 본명은 "박창오"이다.) 작사한 노래로는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고개",
김태희의 "
소양강 처녀",
오기택의 "아빠의 청춘" 등이 있다.
[2]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이 전설을 토대로 노래가 나온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래를 바탕으로 야담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확한 내용은 아래 전설 문단 참조.
[3]
현재 1위 자리를 백난아의 찔레꽃에 넘겨주고 168번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두 곡은 작곡가가 같다.
[4]
박달재가 있는 시랑산은 원래 음기가 많은 산이라 이런 남근상을 만들어 두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