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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13:13:04

외즈귀르 외젤

<colbgcolor=#E30613><colcolor=#fff> 튀르키예 제8대 공화인민당 대표
외즈귀르 외젤
Özgür Özel
파일:Özgür Özel profile.jpg
출생 1974년 9월 21일 ([age(1974-09-21)]세)
튀르키예 마니사 주 마니사 셰흐자델레르 구
국적
[[튀르키예|]][[틀:국기|]][[틀:국기|]]
현직 제8대 공화인민당 대표
서명
파일:외즈귀르 외젤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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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30613><colcolor=#fff> 부모 아버지 탈랏 외젤(Talat Özel)
어머니 슈크란 외젤(Şükran Özel)
배우자 디뎀 외젤(Didem Özel)[1]
자녀 1녀 이펙 외젤(İpek Özel)
학력 에게 대학교 ( 약학 / 학사)
종교 이슬람 ( 수니파)
소속 정당
[[공화인민당|]]
경력 대국민의회 의원 (2011~현직)
공화인민당 원내부대표 (2015~2023)
공화인민당 대표 (2023~현직)
}}}}}}}}}
1. 개요2. 생애
2.1. 정치 입문 이전2.2. 정치 입문 이후2.3. 2023년 공화인민당 전당대회 이후
3. 여담4. 선거 이력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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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İşimiz Gücümüz Türkiye TVC_Özgür Özel.gif
튀르키예 약사 출신 정치인으로, 2011년 부터 마니사지역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2023년 11월 5일, 38차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선거에서 승리하여,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의 대표를 맡고 있다.

2. 생애

2.1. 정치 입문 이전

1999년 부터 개인 약사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마니사 약사협회에서 사무총장과 회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튀르키예 약사협회에서 재무 담당업무와,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후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활동을 수행하였다. 국회의원 기간 동안, 보건, 가족, 노동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2.2. 정치 입문 이후

2009년 지방선거에서 공화인민당 후보로 마니사 시장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2011년 총선거에서 마니사 지역 국회의원 당선되었다. 2014년에 다시 지방선거에서 마니사 시장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또 다시 낙선되었다. 2015년 이후에는 마니사 지역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2023년까지 연속 4번 당선되었다.

이렇게 원내 활동을 이어가던 도중 2014년 5월 13일 외젤의 지역구가 있는 마니사에서 소마 탄광 폭발 사고가 일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국민적 주목을 받게 되며 명성을 높였다. 당시 에르도안은 사고에 대해 “사고는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는 신의 섭리”라고 일축한 뒤, “이 나라의 총리인 나에게 야유하면 너는 맞는다”고 말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샀고 반정부 시위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외젤이 사고 발생 두달 전 의회에 소마 탄광과 인근 지역 탄광들에 대한 안전 점검 및 사고 조사를 진행하자는 안건을 발의했다가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에 의해 거부당한 사실이 밝혀졌고, 외젤은 사건 직후 정부가 사고 징후를 무시한 결과, 광부들이 목숨을 안전 비용으로 지불하게 됐다고 에르도안을 성토하는 연설을 남기면서 정치인으로서 체급을 높인다. #

이때의 활약 덕분에 1년 뒤 공화인민당 원내부대표로 임명되면서 당 요직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2.3. 2023년 공화인민당 전당대회 이후

2023년 9월 14일, 13년째 대표직을 지키고 있는 케말 클르츠다로을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이에 대해 공화인민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고 정의한 뒤 훌륭하고 지식이 풍부한 사회민주주의자에게만 대표직을 넘겨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외젤을 비롯해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시장 등 1년전 대선 패배 이후 변화를 주장하는 당내 정치인들에 대한 견제로 평가받았는데 외젤은 클르츠다로을루의 주장에 대해 자신의 다른 정치적 라이벌들을 음해하기 위한 시도라도 규정하고 당 내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당의 지도자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신임 당대표를 위한 전당대회가 두 후보간의 감정싸움이 되면서 점점 격해졌는데,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지난 대선 과정에게 자신에게 뒤에서 단검을 꽂으려던 배신자가 있었다면서도, 그런 배신자의 존재에도 자신을 단결을 위해 대선을 치렀다고 주장했다. 외젤은 그 단검을 대체 누가 가져온것이냐고 반문한 뒤 필요한 건 변화라고 일갈했다.

외젤은 반격으로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2023년 대선 당시 민족 연합(Millet İttifakı)을 구성하는데 너무 치중하면서 36개의 의석을 다른 야당들에게 양보해준 꼴이 된 것을 비판했다. 이렇게 의석을 양보받은 야당들이 대선 직후 민족연합을 탈퇴한 뒤 직·간접적으로 오히려 에르도안과 가까워지면서 사기를 당했다는 인식이 공화인민당 내에 팽배한 상황인데, 이를 꼬집은 것.

결국 11월 5일, 전당대회에서 결선투표 끝에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812 vs 536으로 꺾고 승리해 당의 신임 대표가 되었다.

당대표 취임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주요 선거인 2024년 튀르키예 지방선거에서는 35년만에 공화인민당이 전국 득표율 1위를 차지하고 30개 광역시 시장 선거 중 14곳[2]에서 승리하는 등 오랜만에 공화인민당 입장에서 정말 만족할만한 승리를 거두면서 당대표로서의 행보는 일단 순조롭게 출발했다.

클르츠다로을루가 대표로 있던 지난 13년 동안의 선거 패배 원인을 우익 야당과의 연합으로 인한 당의 선명성 약화, 세속주의 아젠다에 치우친 태도로 규정했다. 이후 에크렘 이마모을루 시장이 모스크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계속해서 언론에 노출시키고 팔레스타인에 연대 메시지를 보내는 등 사회·문화·종교적으로는 우클릭을, 5월 1일 노동절 시위에 동참하여 연설을 하고 노동·복지정책을 강화하는 등 정치·경제적으로는 좌클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선거연합에 부정적인 태도와는 별개로 지방선거 이후 민족주의운동당 인사들과 자주 접촉하고 있다. 어느 때는 기자 및 양당 인사들의 출입조차 금지한 채 외젤 대표와 민족주의운동당의 바흐첼리 대표의 일대일 비밀 회담도 진행했는데, 2028년 대선에서 민족주의운동당이 공화인민당을 지지하도록 협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있다.

3. 여담

4.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9 마니사 민선 광역시장 선거 마니사 21.376 (13.04%) 낙선 (3위)
2011 제24대 튀르키예 대국민의회 선거 249,482 (28.77%) 당선 (비례 3번) 초선
2014 마니사 민선 광역시장 선거 161,659 (18.28%) 낙선 (3위)
2015 제25대 튀르키예 대국민의회선거 262,927 (28.95%) 당선 (비례 1번) 재선
2015 제26대 튀르키예 대국민의회 선거 270,096 (29.36%) 당선 (비례 1번) 3선
2018 제27대 튀르키예 대국민의회선거 252,578 (26.34%) 당선 (비례 1번) 4선
2023 제28대 튀르키예 대국민의회 선거 300,648 (29.43%) 당선 (비례 1번) 5선

5. 둘러보기


[1] 1998년 결혼 [2] 특히 최대도시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 제3도시 이즈미르, 제5도시 안탈리아를 모두 사수하고 도리어 제4도시 부르사를 정의개발당에게서 탈환하는 등 주요 5대 도시를 모두 석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