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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60석 · 18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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Österreichische Volkspartei | |
약칭 | ÖVP |
상징색 | 청록색[1], 검은색[2] |
영문명칭 | Austrian People's Party |
한글명칭 | 오스트리아 인민당 |
창당일 | 1945년 4월 17일 |
정치적 스펙트럼 | 중도우파 ~ 우익 |
이념 |
기독교 민주주의 자유보수주의 |
주소 |
오스트리아
빈 Lichtenfelsgasse 7 A-1010 |
유럽 정당 | 유럽 인민당(EPP) |
유럽의회 정당 | 유럽 인민당(EPP) |
정책연구소 | ÖVP 정치 아카데미 |
국제 조직 |
|
청년 조직 | 젊은 인민당(JVP) |
대표 | 카를 네하머 |
상원 의석 |
23석 / 61석
|
하원 의석 |
53석 / 183석
|
연방주의회 |
136석 / 440석
|
유럽의회 |
5석 / 20석
|
웹사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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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의 보수 정당, 약칭 ÖVP.현재 오스트리아의 여당이며, 원내 1당인 보수 정당으로, 일반적으로 독일의 기독교민주연합과 비슷한 성향을 띠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허나 오스트리아의 사회 분위기가 독일에 비하면 보수 색채가 강한 나라인 걸 감안하면 기민련보다 보수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2. 명칭 번역
ÖVP은 국내 언론, 서적 등에서는 '오스트리아 인민당'이라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오스트리아 국민당’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영문명으로는 일반적으로 Austrian People's Party로 번역된다.독일어 volk가 보통 영어로 people로 번역되며, people은 국가, 인종을 초월한 범인류를 뜻하기도 하고, 국가적 단위의 시민의 집합체를 뜻하기도 하여, 지역, 조직, 직장, 그룹, 소모임의 구성원을 뜻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용례로 사용된다. 따라서 번역시 문맥을 보아 해당 그룹의 성격과 그룹의 성격에 따라 인민, 국민, 시민, 구성원, 조직원 등으로 선택적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이 명칭의 번역에서 중요한 것은 해당 people이 구성하는 그룹이 어떤 범위에 있느냐에 있다.
독일어의 volk는 일반적으로 영어 people로 번역되지만, people에 비해 민족성이 강한 단어다. volk가 범인류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독일 민족, 국민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적, 지역적으로 보다 좁게 작은 향촌, 지역 사회를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적 용례에 있어서 관용적으로 독일 민족(독일 + 오스트리아)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당의 명칭의 경우 volk 앞에 Österreichische(Austrian)이라는 한정어를 두어 이 명칭이 전인류적 보편 시민으로서 인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국적의 사람들, 즉 오스트리아 국민을 뜻한다. 우리말에서 한 나라의 사람들을 지칭할 때 일반적으로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므로, ÖVP는 오스트리아 국민당으로 번역된다.
3. 역사
구 로고 |
제2차 세계 대전 말 기독사회당 인사들이 모여 당을 재건하여 1945년 4월 17일에 오스트리아 국민당(ÖVP)을 창당했다. 국민당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정치계에서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SPÖ)과 더불어 양당에 해당하는 위치를 유지해 왔다.
국민당은 1945년 총선에서 49.8%의 지지율을 얻어 의회에서 과반에 1석이 부족한 지지율을 얻었다. 이때 국민당은 과감하게 사회민주당(SPÖ) 및 군소정당을 포함한 범국가적 대연정을 구성했다.
이후 1950년대와 60년대 동안 국민당과 사민당(SPÖ)은 각각 40%대의 엇비슷한 지지율을 얻으며 66년까지 대연정을 지속하며 통해 국정을 운영했다. 국민당이 사민당보다 지지율이 조금 더 높은 경우가 많았기에 이 기간 동안 총리의 상당수는 국민당이 배출했다.
하지만 1966년 총선 때 국민당과 사민당이 갈라서면서 48.3%의 지지율을 얻은 국민당은 사민당을 배제하고 군소 정당들을 모아 연정을 구성했다.
하지만 1970년 이후 80년대초까지 사민당이 50% 내외의 지지율을 얻으며 집권하면서 국민당은 야당으로 머무르게 되었다.
1986년 이후 군소 정당이 부각되고 양당인 사민당, 국민당 모두 지지율이 감소하면서, 다시 사민당과 국민당의 대연정이 구성되었고, 양당의 대연정은 1999년까지 계속되었다. 이 대연정 기간 동안 주로 사민당의 지지율이 더 높았기 때문에 사민당에서 총리를 배출했지만, 국민당에서 9대, 10대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다. 냉전이 끝나기 전 국민당은 지지율이 40%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지만, 1990년 이후 국민당의 지지율은 계속 떨어져 30% 밑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1999년부터 사민당과 결별하고 당시 떠오르던 강경 보수 정당인 오스트리아 자유당(FPÖ)와 연정을 이루어 2006년까지 집권했다. 90년대 30% 밑까지 떨어졌던 국민당 지지율은 2000년대 이후 반등하여 40% 내외까지 다시 상승했다.
2006년 총선 이후 다시 사민당(SPÖ)과 대연정을 구성하여 2017년까지 이어졌는데, 총리는 주로 사민당에서 배출했다. 2008년부터 국민당 지지율은 다시 20%대로 떨어져 201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사민당 역시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면서 국민당, 사민당 모두 도긴개긴의 지지율을 보이며 양당의 지지율을 합쳐도 겨우 50%를 넘기는 정치적 위기 상황이 이어졌고, 대연정을 이루며 오월동주하는 양당의 정치적 유대(?)는 더욱 끈끈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 봄 사민당과의 불화로 마침내 대연정이 끊어졌다. 2017년 총선에서 국민당은 30%대를 넘어서는 지지율 반등을 이루며 사민당과 격차를 벌이며 제1당의 자리를 다시 되찾았다. 이후 제2당인 자유당(FPÖ)과 연정을 구성하여 당대표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최연소 지도자가 되었다.
하지만 2019년 연정 파트너인 자유당의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 부총리의 부패 스캔들이 파장을 일으키면서 결국 연정을 끊고 의회해산 및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총선 결과 2006년 이후 최고의 지지율을 얻으며 제1당을 차지하여 사민당과의 대연정, 자유당과의 우파 연정 대신 녹색당(GRÜNE)을 연정 파트너로 선택하고 2020년에 다시 집권하게 되었다.
2021년 10월 9일 당수 겸 총리였던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부패 혐의로 사임했고, 그가 후임으로 추천한 외무장관 알렉산더 샬렌베르크가 10월 11일 총리에 취임했다. 쿠르츠는 총리에서 사임했지만 당수직은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쿠르츠의 정계 은퇴 선언으로 당 대표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샬렌베르크도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쿠르츠의 측근 인사들이 줄줄히 사퇴했다는 점이다.
당 지도부는 긴급 회의를 열고, 쿠르츠 대표의 뒤를 이어 카를 네하머 내무장관을 후임 대표 겸 총리 후보자로 만장일치로 지명했다. #
4. 오스트리아 인민당 출신 대통령
- 제9대 쿠르트 발트하임 / 1986.7.8~1992.7.8.
- 제10대 토마스 클레스틸 / 1992.7.8.~200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