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A5726><colcolor=#fff> 오노 카츠오 大野克夫| Katsuo Oh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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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9년 9월 12일 ([age(1939-09-12)]세) |
일본 제국 교토부 교토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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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작곡가, 편곡가, 키보디스트, 음악 프로듀서 |
활동 | 1962년 ~ 현재 |
학력 | 교토 시립 호리카와 고등학교 (졸업) |
신체 | 165.8cm, O형 |
사용 악기 | 오르간, 키보드, 피아노, 시타르, 고토, 비브라폰, 스틸 기타 |
소속사 | GRACE |
소속 밴드 |
게리 이시구로와 산즈 오브 더 웨스트 (1958~1962) 더 스파이더스 (1962~1970) PYG (1971~1972) 이노우에 타카유키 밴드 (1971~1980) 오노 카츠오 밴드 (1980~현재)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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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작곡가, 편곡가, 키보디스트, 음악 프로듀서.2. 생애
2.1. 어린 시절 ~ PYG 시대
오노 카츠오:
피아노,
만돌린,
바이올린,
아코디언. 여러 가지 악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 있었는지 가족 중 누군가가 그것을 연주하고 있었다는 기억은 없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맞선은 샤쿠하치와 고금의 세션이었다고 하니, 음악에 둘러싸인 환경이긴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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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9월 12일,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으며, 부모님이 음악인[1]이었기 때문에
피아노,
만돌린,
바이올린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면서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졸업식 음악 '졸업생을 보내는 노래'를 작사, 작곡했으며, 고등학생 때는 밴드를 결성해서 현지의 재즈 콘테스트에 출전해 대학생 밴드를 누르고 우승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뮤지션 게리 이시구로에게 스카우트되었고, 프로 뮤지션으로 데뷔했다. 데뷔 이전에는 재즈 카페를 중심으로 스틸 기타 연주자로 활동했다.게리 이시구로가 이끄는 밴드 '게리 이시구로와 산즈 오브 더 웨스트'는 컨트리, 로커빌리 밴드였는데, 오노는 스틸 기타를 담당했다.[2] 오노는 인터뷰에서 게리 이시구로 밴드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스틸 기타가 갖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것이 가장 큰 계기'였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밴드에 합류하겠다고 약속했으며, 3학년 여름 방학 동안 밴드의 일을 도와주거나 게리의 집에 가서 레퍼토리를 연습했다. 졸업 후인 1958년부터 밴드에서 활동했다.
1962년 게리 이시구로 밴드를 탈퇴했으며, 같은 해 7월에 그룹 사운드(GS)계의 인기 밴드 '더 스파이더스[3]'에 정식 멤버로 합류했다. 더 스파이더스의 기획이나 작곡의 대부분은 기타리스트 카마야츠 히로시가 맡고 있었으며, 오노는 음악적 지주로서 오르간 연주, 편곡, 악보 만들기 등에서 공헌했다. 귀여운 외모와 뛰어난 연주력 덕분에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굉장히 많았으며, 드라마와 영화나 그라비아 잡지에 자주 등장했다. 당시 '천재 키보드 플레이어'라고 불리기도 했다. #
오노: 내가 스파이더스에 들어간 건 1962년. 1년 반 정도 기다리게 해버렸어요. 작곡은 "산즈 오브 더 웨스트" 때부터 했어요. 처음 레코드화된 것은 그 무렵 만들던 곡으로, 나중에 "비버스"의 데뷔곡이 된 "
初恋の丘"입니다. 스파이더스는 역할 분담이 명확하고, 나는 작곡도 하지만 어레인지하거나 악보를 쓰는 것이 중심이었어요. (중략) 나는 처음에는 스틸 기타였는데 좀 인기가 많아져서 야외 일이 많아지면서 튜닝할 시간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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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파이더스는 GS 열풍의 쇠퇴로 인해 1970년 해체했다. 이듬해 2월 오노는
사와다 켄지, 하기와라 켄이치, 키시베 잇토쿠 등과 함께 록 밴드 'PYG'를 결성했다. 이 밴드에서도
오르간을 연주했다. 다만, 결성한지 1년도 안돼서 해체했는데, 오노는
인터뷰에서 "PYG는 GS가 시들해지면서 와타나베 프로가 기획했는데, 멤버 각각의 일이 바빠져 1년 반 정도면 끝나버렸죠. 처음에 들어가 있던 손님도, 사와다 켄지와 하기와라 켄이치의 팬으로 양분해 가서, 서서히 오지 않게 되어 버렸어요. 프로덕션과는 별개로 우리는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앨범을 1장과 2장 세트 라이브판과 싱글 3장은 냈지만 불발로 끝나서 해체하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했다.2.2. 작곡가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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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향해 외쳐라 메인 테마 | 사와다 켄지 - 勝手にしやがれ |
같은 해인 1971년, 이노우에 타카유키[4]를 리더로 하는 밴드 '이노우에 타카유키 밴드'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 밴드에서 오노는 다양한 TV 드라마와 영화 음악을 작곡했다.[5] 쇼와 시대의 국민적인 형사 드라마 ' 태양을 향해 외쳐라', 시청률 31.3%를 기록한 가족 드라마 '데라우치 칸타로 일가', 명작으로 꼽히는 인기 탐정 드라마 '상처 투성이의 천사', 시대극 '하쿠레구모', 영화 '불꽃의 초상' 등 197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의 음악을 작곡해 인기 작곡가 반열에 올랐다.
특히 '태양을 향해 외쳐라'의 OST는 지금까지도 오노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오노는 후일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해 "태양을 향해 외쳐라의 경우 먼저 대본이나 기획서를 읽고 그 이미지만으로 멜로디를 5곡 정도 만들었습니다. 그 후 화면을 보면서, 그 멜로디가 어느 장면에 맞는지 생각해 갔습니다. (중략) TV의 사운드트랙을 밴드의 소리로 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잘 OK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런 형태로 록 그룹이 드라마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스튜디오 뮤지션들의 현악기나, 이른바 재즈 뮤지션들의 드라마틱한 사운드가 사용되었는데, 이 록 사운드는 '태양을 향해 외쳐라'에 정말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1975년부터는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 사와다 켄지의 전담 작곡가가 되었다.[6] 오노가 작곡한 사와다의 많은 노래들은 크게 히트했는데, ' 時の過ぎゆくままに(1975)'는 92만 장[7], ' 勝手にしやがれ(1977)'는 89만 장, 'サムライ(1978)'는 50만 장, 'LOVE (抱きしめたい) (1978)'는 48만 장, 'ダーリング (1978)'은 44만 장, 'カサブランカ・ダンディ(1979)'은 39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또한 작곡가로서 많은 상을 수상했는데, 일본 레코드 대상 대상, 일본 가요 대상 대상, 일본 유선 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명실상부 1970년대의 일본 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오노 카츠오: 당시 아쿠 유 씨와 함께
사와다 켄지의 일련의 히트곡을 다뤘습니다만, 이 무렵이 가장 바빴습니다. 작곡도 하고 백밴드로서 방송국이나 콘서트 무대도 같이 가야 합니다. 항상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얼마 안 되는 시간을 발견하고는 곡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 당시 TV에서는 다들 풀밴드로 부르는데 그(사와다)는 '그건 싫다'며 우리가 백밴드를 했어요. 밴드를 대동했던 가수는 그가 첫 번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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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사와다 켄지의 곡을 만들 때는, 먼저 그가 노래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TV 영상이죠. 어떤 음정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가 들려오는 거예요. '이 음이다!' 하면서 그런 데서 발상을 하죠. 예를 들어 '
勝手にしやがれ'는 그리 나른한 느낌이 아니라, 좀 강한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아쿠 씨와의 콤비는 거의 대부분 가사가 먼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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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3월, 폴리도르 레코드에서 첫 솔로 앨범 '
FREE WAYS'을 발표했다. 색소포니스트 무라오카 타케루, 드러머 다나카 키요시, 카즈하라 신 등이 세션 뮤지션으로 참여했다. 라틴풍의 미니멀한 프레이즈와 기타 커팅이 조화를 이루는
퓨전 재즈 앨범이다. 이 앨범 이후에도 커버 앨범 'Windward Hill', EP ''サミー・ボウ/美しい旅人に出会うため', 사운드트랙 앨범 'Sound Traffic'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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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레구모 OST | 명탐정 코난 메인 테마 |
1980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즈 밴드 '오노 카츠오 밴드'를 결성했다. 오노의 개인 밴드 '프리 웨이즈'에서 발전한 밴드이며, 그가 작곡하고 프로듀스한 아이돌 가수의 백밴드가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세션 기타리스트 하라다 스에아키가 이 밴드 소속이다. 당시 다양한 CM송을 제작했고, 카시와바라 요시에, 이토 유카리, 가리우도, 야쿠시마루 히로코 등 다양한 가수들에게 곡을 제공했다. 1982년에는 엔카 가수 이츠키 히로시와 배우 키노미 나나에게 居酒屋라는 곡을 줘서 크게 히트[8]하기도 했다.
장르의 폭을 넓혀서, 1996년부터는 애니메이션 ' 명탐정 코난'의 음악을 담당하고 있다. 코난은 일본의 대표적인 국민 애니메이션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작품의 인기 덕분에 오노는 젊은 세대들에게 '명탐정 코난 작곡가'로 유명하다. 그가 작곡한 ' 명탐정 코난 메인 테마'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유명한 곡이다. 국내 인터뷰에서 코난에 대해 "제 라이프 워크입니다. 계속 코난은 나이를 먹지 않잖아요. 보는 사람을 점점 자라는데, 세대가 바뀌어도 언제나 이어져 나가는 것, 이게 이상적인 것이지요. 앞으로도 코난의 음악을 소중히 하며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노: (명탐정 코난은) 아이들 프로그램이어서, 애니메이션이어서, 그리고 코난이 귀여워서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미 머릿속에서 '
신시사이저' 소리가 들려왔어요. 하지만 신시사이저만으로는 부족해요... 결국, 미래의 아이들에게 '이게 바로 라이브 사운드다', '이게 바로 라이브 기타의 소리다', '이게 손으로 연주한 음악의 느낌이다'라고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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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지금까지 작곡한 노래의 데모 테이프를 수록한 편집 앨범 '
환상의 멜로디(幻のメロディ)'를 발표했다. 많은 수록곡들이 타 아티스트에게 제공한 노래들이다. 수록된 음원은 음반 제작 과정에서 관계자들만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오노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당시의 데모 테이프를 그대로 마스터링하여 CD로 정리하였다. 이 앨범은 반응이 좋아서 시리즈로 발표했고, 2008년 7월에 5탄까지 발표했다.2023년 12월 7일, 오랜 세월에 걸쳐 교토부 교토시의 문화향상에 지대한 공로를 끼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인 '교토시 문화공로자'를 표창받았다. #
3. 참여 작품
3.1. 드라마
<rowcolor=#fff> 방영년도 | 방송사 | 작품명 | 비고 |
1969년~1970년 |
젋은 연인들 (若い恋人た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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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1986년 |
태양을 향해 외쳐라 (太陽にほえ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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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1975년 |
상처투성이의 천사 (傷だらけの天使) |
이노우에 타카유키와 공동 음악 감독 | |
1974년 |
데라우치 칸타로 일가 (寺内貫太郎一家) |
이노우에 타카유키와 공동 음악 감독 | |
1975년 |
악마 같은 저 녀석 (悪魔のようなあいつ) |
이노우에 타카유키와 공동 음악 감독 | |
1976년 |
사쿠라노우타 (さくらの唄) |
보부 사쿠마와 공동 음악 감독 | |
1977년~1978년 |
마츠리 바야시가 들린다 (祭ばやしが聞こえ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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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하쿠레구모 (浮浪雲) |
이시하라 프로판 | |
1980년~1981년 |
지금 방과후 (ただいま放課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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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
전격전대 체인지맨 (電撃戦隊 チェンジマン) |
오프닝, 엔딩 주제가 담당 | |
1987년 |
후지코 후지오의 꿈 카메라 (藤子不二雄の夢カメ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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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
카미야 켄지로 포물대기 (神谷玄次郎捕物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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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 (閨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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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형사 (ザ・刑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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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2023년 |
종착역 시리즈 (終着駅シリー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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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
여무숙인・반신의 감색 (女無宿人・半身のお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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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本当にあった怖い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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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
오성전대 다이레인저 (五星戦隊 ダイレンジャー) |
오프닝, 엔딩 주제가 담당 | |
1995년 |
흔들리는 마음 (揺れる想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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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
어서오세요 (いらっしゃ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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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
토야마의 킨상vs여자 쥐 (遠山の金さんVS女ねず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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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
킨상vs여자 쥐 (金さんVS女ねず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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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
이별 가게 (別れさせ屋) |
3.2. 영화
<rowcolor=#fff> 개봉년도 | 작품명 | 비고 |
1974년 |
불꽃의 초상화 (炎の肖像) |
이노우에 타카유키와 공동 음악 감독 |
1976년 |
피터슨의 새 (ピーターソンの鳥) |
이노우에 타카유키, 오노 마스미와 공동 음악 감독 |
파리의 애수 (パリの哀愁) |
미야가와 야스시와 공동 음악 감독 | |
1980년 |
안개의 맨하탄 (霧のマンハッタン) |
오구라 케이, 오가사와라 히로시와 공동 음악 감독 |
1982년 |
물이 없는 수영장 (水のないプー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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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형사 (野獣刑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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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
나의 웨딩 (俺っちのウエディン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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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층의 모스키트 (十階のモスキー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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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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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
불순한 관계 (不純な関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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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
코믹 잡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コミック雑誌なんかいらな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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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
기무라 가문의 사람들 (木村家の人び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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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
물고기에서 다이옥신!! (魚からダイオキシ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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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한 관계 (エロティックな関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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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2021년 |
극장판 명탐정 코난 시리즈 (劇場版名探偵コナンシリーズ) |
1기부터 24기까지 담당[9] |
3.3. 애니메이션
<rowcolor=#fff> 방영년도 | 작품명 | 비고 |
1996년~현재 |
명탐정 코난 (名探偵コナン) |
TVA |
1996년 |
페이크 (FAKE) |
OVA |
1998년 |
두 사람의 생활 (ふたり暮らし) |
TVA |
4. 수상
<rowcolor=#fff> 날짜 | 시상식명 | 수상 부문 | 작품 |
1977년 | |||
12월 31일 | 제19회 일본 레코드 대상 | 대상 | 사와다 켄지 - 勝手にしやがれ |
미상 | 제8회 일본 가요 대상 | ||
제10회 일본 유선 대상 | |||
1978년 | |||
12월 31일 | 제20회 일본 레코드 대상 | 금상 | 사와다 켄지 - LOVE (抱きしめたい) |
미상 | 제11회 일본 유선 대상 | 대상 | 사와다 켄지 - ダーリン |
1979년 | |||
12월 31일 | 제21회 일본 레코드 대상 | 금상 | 사와다 켄지 - カサブランカ・ダンディ |
2007년 | |||
미상 | JASRAC상 | 국제상 | 명탐정 코난 BGM (작곡) |
2012년 | |||
미상 | JASRAC상 | 30회 기념 특별 표창 은상 | 居酒屋 (작곡) |
2017년 | |||
미상 | JASRAC상 | 은상 | 명탐정 코난 BGM (작곡) |
2023년 | |||
12월 7일 | 교토시 주최 | 교토시 문화공로자 |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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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칭은 카츠오짱(克夫ちゃん). 취미는 음악 감상과
낚시. 굉장한 낚시광이며, 낚시 대회에서 6위로 입상하기도 했다.
오노 카츠오 "1986년, 15년 또는 16년 전, 저는 처음으로 마를린 참치 토너먼트에 참가해 500파운드(약 227kg)의 큰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물고기는 제 배만큼 두꺼웠어요. 그때 정말 재미있다고 느끼고 중독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에요. 정말 힘든 일이죠. (중략) 그래서 이제야 낚시의 매력을 이해하게 됐어요. 음악이 항상 제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 '무'의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물고기와 대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자미를 낚을 때는 어떻게든 먹이를 주려고 해요. 시행착오를 통해 그 낚시에만 몰두하는 시간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
- 자신에게 음악의 기본을 가르쳐 준 것은 초등학교 1, 2학년의 담임이었던 음악 선생님을 꼽았다. #
- 사와다 켄지에 대해서 "그는 보컬로서는 일품인 악기군요. (제가) 아직 스파이더스 때부터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강한지 부러워했죠. 일본극 웨스턴 카니발 같은 경우는 계속해서 일주일이나 있습니다만, 스파이더스의 마사아키(사카이 마사아키) 같은 경우는 3일째 정도에 목이 쉬어져 버립니다. 그런데 그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그 강함이란…엄청난 것이 있었지요"라고 말했다. #
- 사운드트랙에 대해서는 "사운드트랙은 기본적으로 멜로디 중심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작곡 작업은 노래와 비슷합니다. 악기로 연주하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떠오른 멜로디를 종이에 적고 악보로 작성합니다. 악기가 있으면 본인이 좋아하는 코드의 범위 안에서만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멜로디만으로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악보로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
- 명탐정 코난에 대해서는 "코난 같은 경우는 첫 번째 그림 콘티입니다. 그 두꺼운 그림 콘티를 보면서 어디에 어떤 음악을 넣을까 생각하면서 대략 50~60곡 정도 만듭니다. 보통 이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비교적 빈틈없이 넣는 거예요. 효과음적인 곡은 어렵네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제일 고생이 많네요"라고 말했다. #
- 더 스파이더스의 멤버 카마야츠 히로시는 오노 카츠오에 대해 "한마디로 천재예요. 한 번 들은 곡은 바로 악보에 쓸 수 있고, 어떤 악기도 잘 연주합니다. 라이브뿐만 아니라 스튜디오 워크도 만전입니다. 이런 다채로운 뮤지션, 일본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
- 인터뷰에서 기자가 "미래에 대한 꿈과 열망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는데, 오노는 "저는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않아요.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고 항상 자유롭고 싶습니다. 결정을 내리면 제약을 받게 되고 좋은 것을 볼 수 없게 되거든요... 그래서 하나의 일이 끝나면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멍한 상태에 있어요... 언젠가는 그런 멍한 상태에서 만든 작업이 아닌 음악으로 CD를 발매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일을 마치고 하와이에서 낚시를 하는 것이 기다려집니다"라고 대답했다.
- 2008년 명탐정 코난: 베이커가의 망령 국내 개봉 당시,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
- 2021년 1월, 오노 카츠오가 작곡한 명탐정 코난 극장판 사운드트랙이 음원 서비스에서 공개되었다. 오노는 "명탐정 코난의 악곡이 일거에 전달되게 되었습니다. 명탐정 코난의 세계를 음악으로 만끽하세요!"라고 코멘트를 남겼다. # 또한 2003년부터 발표한 '환상의 멜로디 시리즈'도 음원 서비스에 공개했다.
6. 외부 링크
[1]
아버지는
샤쿠하치 연주자였고, 어머니는
고금 연주자였다.
[2]
당시 이 스틸 기타 소리는 굉장히 유행해서 하와이안 뮤직이나 컨트리 음악에서는 필수적인 악기였다.
[3]
'재키 요시카와와 블루 코메츠'와 함께 일본 GS의 기초를 쌓아올린 밴드다.
[4]
일본의 기타리스트. 더 스파이더스의 멤버였다.
[5]
이노우에 히로유키 밴드는
사와다 켄지의 백 밴드나, 하기와라 켄이치가 출연하는 작품의 많은 음악을 담당했다.
[6]
작사는 쇼와 시대의 명작사가 아쿠 유(阿久悠)가 담당했다.
[7]
사와다 켄지 커리어 최고 판매량이다.
[8]
이 노래는 가라오케에서 대박을 터트렸으며,
JASRAC가 발표한
헤이세이 시대 저작권 사용료 분배액 톱 100에서 2위에 랭크했다.
[9]
24기 이후에도 오노가 작곡한
메인 테마는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엔딩 크레딧에 그의 이름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