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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27 14:50:45

오가사와라 미츠오

오가사와라 미츠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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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前 축구선수
파일:오가사와라 은퇴.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오가사와라 미츠오
[ruby(小笠原, ruby=おがさわら)] [ruby(満男, ruby=みつお)] | Ogasawara Mitsuo
출생 1979년 4월 5일 ([age(1979-04-05)]세)
일본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73cm / 체중 72kg
직업 축구선수 (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주발 오른발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가시마 앤틀러스 (1998~2018)
메시나 펠로로 (2006~2007 / 임대)
국가대표 55경기 7골 ( 일본 / 2002~2010)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가시마 앤틀러스
2.1.1.1. 해외 이적설과 비하인드2.1.1.2. 메시나 펠로로 (임대)
2.1.2. 복귀 이후
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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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前 축구선수.

선수 시절 딱 한 번의 임대를 제외하고 무려 20년이나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뛴 준원클럽맨이다.[1] 또한 J리그 베스트 XI에 6번이나 포함되며 가시마 선수로는 최다 횟수를 기록했다. 그리고 소가하타 히토시에 이어 가시마 역대 최다 출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이와테현에서 태어난 오가사와라는 1995년에 오후나토 고등학교[2]에 입학했고 그동안 일본 유소년 대회에서 활약하며 '도호쿠의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1997년에 졸업한 후 1998년에 가시마 앤틀러스에 입단했다.

2.1.1. 가시마 앤틀러스

1998년에 가시마 앤틀러스에 입단했을 때 모토야마 마사시, 나카타 고지, 소가하타 히토시가 동기였다. 공교롭게도 고지, 히토시와는 한일 월드컵에 같이 뛰기도 했다. 그리고 4월 15일에 열린 감바 오사카전에서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2000년부터 주축으로 활약하며 J1리그, 천황배, J리그컵 그리고 후지필름 슈퍼컵을 우승하며 일본 최초의 도메스틱 트레블을 이뤄내는데 큰 기여를 했다. 리그에서 28경기 3골, 천황배에서 5경기 2골, 리그컵에서 5경기 4골을 기록하며 총합 38경기 9골을 기록하며 스타의 탄생을 예고했다. 특히 천황배 결승에서 시미즈 선수들이 자리를 막 잡고 있는 차에 감각적인 프리킥으로 득점을 만들어내며 팬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리그 베스트 XI에 들지는 못했다.
가시마의 극적인 우승을 확정짓는 오가사와라의 프리킥 골
2001년에는 등번호를 17번에서 8번으로 변경하며 확고한 주전 자리를 가질 것으로 예상했고 실제로도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5월에 가시와 레이솔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왼쪽 팔꿈치 골절을 당하며 3개월 동안 부상으로 빠지게 되었다. 8월에 복귀하고는 다시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팀은 2년 연속 J리그 챔피언십 진출을 이뤄냈다. 그리고 주빌로 이와타전에서 1차전 2:2, 2차전 0:0으로 연장 승부를 펼치게 되었고 연장 전반 10분에 프리킥으로 골든골을 기록하며 팀의 2년 연속 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리그에서 24경기 7골을 기록했었는데 그 중 1골이 우승의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 그리고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마침내 리그 베스트 XI에 포함되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5-6-3위를 기록하며 팀은 암흑기에 빠졌으나 오가사와라 개인의 활약은 매우 화려했기에 앞서 말 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총 5회 연속으로 J리그 베스트 XI에 들었다.
2.1.1.1. 해외 이적설과 비하인드
리그에서 매우 뛰어난 활약에 2005년 여름에 US 레체가 관심을 드러냈고, 오기사와라는 해외 진출을 열망했으나 구단 측이 막아서 사이가 틀어진 상황이었다. # 그리고 2006년 겨울 이적 시장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가 진짜로 협상의 의지를 드러냈고 가시마와 오기사와라도 이에 동의했고 잉글랜드로 날아와서 메디컬 테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메디컬 테스트도 순조롭게 통과하며 이대로 웨스트햄에 입단하나 했으나... 변수가 생기고 만다.

12일에 열린 최종 테스트였던 당시 웨스트햄의 감독인 앨런 파듀와의 면담에서 합의를 하지 못하며 결국 이적이 무산되고 만다. #

그리고 2006년 여름에도 이적설은 여전했으며 메시나 펠로로와 강한 링크가 떴고, 8월에 이적 오피셜이 떴다.
2.1.1.2. 메시나 펠로로 (임대)
2006년 8월에 입단해서 2007년 6월까지 메시나 펠로로에 임대로 합류했다. 직전 시즌 메시나는 17위에 승점 31점으로 16위 라치오와 단 1점 차이가 나면서 아쉽게 강등을 당할 처지였으나 칼초폴리가 터지면서 유벤투스가 강등, 메시나는 극적으로 잔류했다.

그리고 9월 20일에 열린 라이벌 레지나 칼초와의 경기에서 후반 8분에 교체 투입되며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그후 계속 벤치에만 있기 일쑤였고 결국 6경기 1골만 기록하며 최악의 부진에 빠지게 되었다. 심지어 팀도 꼴지로 강등당하며 해외 진출을 실패로 남게 되었다. 그래도 당시 수비로 유명했던 이탈리아에서 뛰게 되며 수비적인 부분에서 성장한 걸 다행이라고 인터뷰했다. #

2.1.2. 복귀 이후

파일:오가사와라 은퇴.jpg
복귀 후에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2009년에는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리그 MVP라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으며 클럽 최초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2018년에 은퇴를 확정지었다. #

2.2. 국가대표 경력

2002년에 국가대표 데뷔를 했으며 2006년 이후는 세대교체를 위해 뽑히지 않다가 2010년 2월에 다시 대표팀에 발탁되어 경기를 뛰기도 했다.

2006년 2월 16일에 핀란드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거의 하프라인에서 슈팅을 때리며 만들어낸 원더골을 아직도 일본 축구사 최고의 골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3. 플레이 스타일

2000년대 일본에서 중원에 화려한 선수들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당시 리그를 상징하던 플레이 메이커였다. 경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크랙 기질이 있으며 패스 센스도 뛰어났다. 슛 역시 정확하기로 유명해서 가시마의 세트피스를 담당하며 수 많은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프리킥 마스터였으며 중요한 상황에 프리킥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J리그에서 프리킥으로 13득점을 올렸다. 이는 역대 공동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키는 작지만 점프력이 좋아서 헤딩도 괜찮은 편이였으며 한편 볼탈취도 상당히 잘했고[3] 승부욕이 뛰어났다고 한다.

4. 여담



[1]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딱 한 번 2년 간 슈투트가르트에 임대를 갔었던 필립 람이 있다. [2] 사사키 로키가 있었던 학교기도 하다. [3] 그래서 당시 '인간 청소기'라고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