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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20-1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동불상의 모습
보물 제220-2호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서불상의 모습
1. 개요
榮州 北枝里 石造如來坐像. 현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의 사찰인 부석사(浮石寺)에 안치되어 있는 9세기 경 통일신라시대의 석조 불상 2점. 현재 2점 모두 부석사(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에 소재 중이며, 동불상이 대한민국 보물 제220-1호, 서불상이 대한민국 보물 제220-2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2. 내용
중앙에 있는 불상은 보물 제1636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이다.
동불상 크기 103㎝, 대좌 높이 102cm.
서불상 크기 99.5㎝, 대좌 높이 105cm.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의 자인당(慈忍堂)에 안치되어 있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석조 불상 2점으로, 원래는 부석사 동쪽 산 너머 약 1.5km 지점의 동방사지(東方寺址)에 있었던 것인데 조선시대에 그 절이 폐사되자 부석사로 옮겨온 것이다. 누각 앞 쌍탑 옆에 있는 자그마한 비석에는 당시 동방사의 석불 2점과 쌍탑을 부석사의 자인당으로 옮긴 경위가 상세히 적혀 있다.
불상의 양식을 볼 때 2점 모두 동일한 조각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중앙의 영주 부석사 석조석가여래좌상(榮州 浮石寺 石造釋迦如來坐像, 보물 제1636호)의 좌우에 배치되어 삼존불(三尊佛) 형태를 이루고 있다. 2구 모두 비로자나불이다.
보물 제220-1호 동불상의 경우 전형적인 지권인(智拳印)의 자세를 한 비로자나불로, 상대적으로 서불상에 비해 신체의 양감이 좀더 풍부하며 세부 묘사도 부드럽고 유려한 편이다. 특히 파손된 부분이 선연히 보이는 서불상의 광배와 달리 동불상의 광배는 꼭지 부분과 왼쪽이 약간 절단되었지만 대체로 양호한 편이며, 두 줄의 양각선으로 두 신광을 구획하고, 가장자리에 좌우 각각 3구씩 6구의 화불(化佛)을 배열하였으며, 윗부분에는 삼존화불을 배치하여 좀 더 화려한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두광의 내부는 안에는 연꽃무늬, 밖에는 연잎무늬를 새겼고, 두광·신광 밖에는 불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보물 제220-2호 서불상의 경우 동불상과 같은 비로자나불로,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비스듬히 깨어진 광배를 붙여 세워 놓았다. 동불상에 비해 화려한 면은 적지만 좀 더 당당하며 불신의 선이 부드러운 편이다.
지금으로부터 1,2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석조 불상 2점으로, 신라시대 영주 지역의 석조공예술과 불교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에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 제220호로 지정되었으며, 2010년 8월 25일에 220-1호, 220-2호로 문화재 지정번호가 분할되었다.
3. 외부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영주북지리석조여래좌상
- 두산백과 :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 두산백과 :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220-1호)
- 두산백과 :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220-2호)
- 한국어 위키백과 :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동불상)
- 한국어 위키백과 :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서불상)
- 향토문화전자대전 :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 경북북부 :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
4. 보물 제220-1호
원래 부석사 동쪽 산 너머 절터에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서 양식상 동일한 조각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의 여래상은 얼굴이 타원형이며,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흔적이 있다. 두 손은 없어졌으나 두 팔이 가슴쪽으로 올라가 있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손모양을 취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당시 유행하던 얇게 빚은 듯한 촘촘한 평행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대좌(臺座)의 가운데 부분은 8각인데 각 면에는 공양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서쪽의 여래상은 동쪽의 여래상보다 좀 더 당당하며 불신의 선들도 부드러운 편이다.
이 불상들은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의 예로서 단아하면서 인간적인 형태, 평행의 옷주름선, 몸의 자세 등에서 당대 불교사상의 특징과 불상양식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동쪽의 여래상은 얼굴이 타원형이며,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흔적이 있다. 두 손은 없어졌으나 두 팔이 가슴쪽으로 올라가 있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손모양을 취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당시 유행하던 얇게 빚은 듯한 촘촘한 평행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대좌(臺座)의 가운데 부분은 8각인데 각 면에는 공양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서쪽의 여래상은 동쪽의 여래상보다 좀 더 당당하며 불신의 선들도 부드러운 편이다.
이 불상들은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의 예로서 단아하면서 인간적인 형태, 평행의 옷주름선, 몸의 자세 등에서 당대 불교사상의 특징과 불상양식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5. 보물 제220-2호
원래 부석사 동쪽 산 너머 절터에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으로서 양식상 동일한 조각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의 여래상은 얼굴이 타원형이며,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흔적이 있다. 두 손은 없어졌으나 두 팔이 가슴쪽으로 올라가 있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손모양을 취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당시 유행하던 얇게 빚은 듯한 촘촘한 평행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대좌(臺座)의 가운데 부분은 8각인데 각 면에는 공양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서쪽의 여래상은 동쪽의 여래상보다 좀 더 당당하며 불신의 선들도 부드러운 편이다.
이 불상들은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의 예로서 단아하면서 인간적인 형태, 평행의 옷주름선, 몸의 자세 등에서 당대 불교사상의 특징과 불상양식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동쪽의 여래상은 얼굴이 타원형이며,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흔적이 있다. 두 손은 없어졌으나 두 팔이 가슴쪽으로 올라가 있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쥔 손모양을 취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당시 유행하던 얇게 빚은 듯한 촘촘한 평행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대좌(臺座)의 가운데 부분은 8각인데 각 면에는 공양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서쪽의 여래상은 동쪽의 여래상보다 좀 더 당당하며 불신의 선들도 부드러운 편이다.
이 불상들은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의 예로서 단아하면서 인간적인 형태, 평행의 옷주름선, 몸의 자세 등에서 당대 불교사상의 특징과 불상양식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